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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웃음소리 Mar 18. 2023

때가 왔다.

때가 왔다. 열둘 우리 큰아들에게 찐 성교육을 해야 할 때가.



'아빠 몸속의 정자가 힘차게 달리기를 해서 엄마 몸의 난자와 만나가지구우, 이렇게나 예쁜 우리 아들이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지' 하는 그런 성교육 말고, 진짜 성교육을 해야 할 때가 갑자기 닥쳐버렸다. 침대에 엎드려 잠자리 독서를 하다가 땀까지 흘리며 낑낑대기 시작한 우리 큰아들에게 말이다.








큰언니가 물려준 국민 학습 만화 why시리즈의 '사춘기와 성'편을 어린아이에게 공개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한 적이 있. '사춘기와 성' 책을 펴자마자 남녀의 행복한 시간을 다소 민망하게(당시 나는 성교육 책을 처음 접했다) 묘사한 페이지가 떡하니 펼쳐졌다. 아마도 우리 조카들은 그 페이지를 가장 열심히 공부했었나 보다. 친절하게 표현해 놓은 남녀의 그림 한 컷을 보고 화들짝 놀란 나는 결국 그 책을 숨기기로 결정했다. 아이가 모르는 곳에 책을 꽁꽁 숨겨 두었다.


큰아이가 2학년이 되었을 무렵, 손경이 선생님의 '아홉 살 성교육 사전'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몸 편 마음 편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내용이 가볍고 괜찮은 것 같았다. 얼른 주문해서 아이와 함께 읽었다. 아들에게 생리에 대해 설명하며, 엄마도 한 달에 한 번씩 5일 정도는 생리를 한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그럼 엄마 기저귀 같은 거 하고 다녀? " 하고 묻던 아이. 적잖이 놀란 듯 보였다.


큰아이가 3학년이 되었을 때였나. 슬기로운 초등생활 이성종 선생님이 유튜브에 올리셨던 '아들 성교육 편'을 보았다. 선생님의 훈훈한 아들이 나오는 2편은 아이와 함께 들으면 좋을 것 같아서 아들과 같이 한번 더 보았다. 또래의 형이 나오니 반가웠는지 아들은 초집중해서 영상을 보았다. 아빠와 아들이 함께 대화를 하는 성교육 영상은 나에겐 단비와도 같았다. 우리 남편은 무척이나 쑥스러워했으니 말이다. 영상이 큰 도움이 되었다.


성교육 유튜브를 보여주고는, 꽁꽁 숨겨두었던 why '사춘기와 성' 책을 꺼내 들었다. "아들, 이리 와봐. 이제는 아들이 이 책 읽을 때가 된 것 같아." 나는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라며 선심 쓰듯 아들에게 책을 건네었다. "나 그거 옛날에 다 봤는데?" 아들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언제?" 당황한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들에게 물었다. "몰라 학교에서 봤나? 옛날에 봤어." 당황한 나와는 달리 우리 큰아이는 매우 무덤덤했다. 이상하다. 분명 손경이 선생님 책 읽어줄 때 많이 놀라는 것 같았는데. 뭐야 그럼 다 알고 있었던 건가. 아들은 성교육 선행학습, 아니 현행학습을 자기 주도적으로 잘하고 있었나 보다.


큰아이가 4학년이 되었다. 큰아이가 어느 날 나를 큰 소리로 불렀다. "엄마, 나 음경에 음모 났어." 슬기로운 초등생활 성교육 유튜브를 보고 나서 아들과 존중 파티를 두 번(음모, 몽정) 하기로 약속해 두었는데, 아들이 음모가 났다며 신나는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정말 가느다란 털이 몇 가닥 보였다. 그날 우리는 피자파티를 했다.


큰아이는 지금 5학년이다. 올해 들어 아들은 영어영상을 볼 때 가끔씩 캡틴마블을 검색해 여전사들이 나오는 짧은 영상을 재생하고 있다. 아들이 봤던 영상을 아들 모르게 재생해 본다. 다행히 이상한 영상은 아니었지만, 여전사들은 뭔가 섹시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아들이 갑자기 그리스로마신화 만화책을 꺼내어 읽기 시작한다. 초등학교 1학년때 푹 빠져서 읽다가 그 이후에 펼친 적이 거의 없었는데 말이다. 만화책에는 옷을 많이 걸치지 않은 여신들이 가득하다. 아들은 책을 읽는다기 보다 만화를 감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여신들이 다소 시원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페이지에서는 책장이 도무지 넘어가지를 않았다. 그 페이지에 한참을 머물렀다. 그러고는 낑낑대는 일이 잦아졌다. 바로 내 옆에서 말이다.  


책꽂이에 꽂아도 꽂아도 그리스로마신화 '사랑과 질투' 편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자꾸만 책꽂이 밖으로 산책을 나와있었다.  그리스로마신화의 잦은 산책소식을 남편어게 전달하니 남편은 꿈뻑꿈뻑 말했다

"책을 숨겨야 하나." 

음. 내가 why책 숨겨봤는데 소용 없었어.


당황스러웠다. 나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우리 아들과 어떤 대화든 다 나눌 수 있다고 자신했는데. 내 옆에서 낑낑대는 아이를 보니 정말 말문이 턱 막혔다. 뭐라고 말해줘야 하지. 이 낑낑거림은 도대체 뭐지. 이것이 말로만 듣던 스스로를 위로하는 행위인 건가. 섣불리 언급하지 않고 모른 척해야겠다 생각했지만, 내 입은 벌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들 요즘 음경이 많이 궁금해?" "응. 왜.. 나쁜 거야?" " 아.. 아니 아니 너무 많이 만지면 세균이라도 들어갈까 봐." 무슨 말을 할지 준비하지 않았던 나는 아무 말이나 해 버렸다.


자기 위로는 보통 중학생이 되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왜 이렇게 빠른 거지. 낑낑거리는 것도 자기위로의 일종인건가. 잠자리 독서를 할 때도 앉아서 책을 보게 할 걸 그랬나. 혹시 어디서 이상한 뭘 본 건가. 스마트폰도 없는데. 영어동영상 유튜브 뭐 봤는지는 내가 다 확인하고 있는데. 집에 혼자 둔 적도 별로 없는데. 너무 빠르면 키 안 클 텐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스스로를 위로했는지. 언제부터 야동을 접했는지. 키는 언제 자라기 시작했는지 등등. 태어나서 담배를 한 번도 입에 물어본 적이 없는 진정한 FM 우리 남편은, 자기 위로를 하기 시작한 시점을 기억해 내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는 아니었던 것 같다는 애매한 말을 하면서 말이다.


도서관으로 출동했다. 와이미 성교육 책을 읽어보았다. 성교육 관련 영상도 찾아보았다. 내가 궁금한 건 11월생 5학년이 자기 위로를 시작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지, 벌써부터 음모가 났는데 너무 빠른 것은 아닌지, 키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지, 너무 빠른 게 맞다면 부모가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영상마다 얘기가 조금씩 달랐다. 잘 자라고 있는 거라고 말했지만, 시기에 대한 속 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 급기야 우리 아들은 해맑게 한 가지 소식을 더 전해 주었다. 음경 끝에 살짝 묻어 있는 마치 미음같아 보이는 그것이 몽정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변이 아닌건 확실하니 몽정이라 여겨졌다. 진짜 남자로 잘 자라고 있다는 신호이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조금 더 늦게 듣고 싶은 소식이었다. 아들과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야 했다. 늦추면 안 될 것 같았다. 남편에게 기대고 싶었지만 우리 삼식씨는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는지  "뭐라 말해야 하노"를 반복하며 눈만 끔뻑끔뻑 쑥스러워했다.


어떤 말을 해줄지 나름대로 정리를 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큰아이와 단 둘이 이야기를 했다. 지금까지의 성교육은 몸의 구조, 아이가 생기는 과정, 태어나는 과정에 집중된 것이었다면, 이번 대화는 많이 달랐다. 래서 어.떻.게. 그러니까 도대체 어떻게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지에 대한 질문이 주를 이루었다.


"그런데 정자가 엄마 몸에 어떻게 들어가? 그럼 정자가 들어가려면 속옷을 다 벗고 그런 거 하는 거야? 그럼 엄마랑 아빠도 그런 거 했어? 그럼 엄마랑 나랑 그런 거 해도 아이가 생길 수 있는 거야?" 등등등등등.


예상치 못했던 쎈 질문들이 마구 쏟아졌다. FM 선비 스타일 우리 아들도 이런 궁금증을 가지는구나. 놀랐지만 쿨한 척 대답했다. 한 편으론 거르지 않고 질문해 주어서 고맙기도 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 성인이 되더라도 사랑과 책임감이 전제된 하에 관계를 가져야 하는 이유, 야동의 진짜 목적, 야동을 소지하거나 전송 또는 재생하면 벌어지는 일, 와이미 성교육 유튜브를 들으며 알게 된 올바른 자기 위로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다. 아이는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나도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엄마와 아빠가 아들을 만났을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도 말해주었다.








내일 우리 가족은 파티를 하기로 했다. 지난번 "毛" 파티 때는 선명희 피자 두 판 삼만 원 남짓으로 간단히 잘 넘겼는데, 이번엔 아들이 뷔페에 가자고 했다. 진정한 남자로 잘 자라고 있는 것을 축하하는 파티이니 뷔페정도는 가 줘야지. 제주 뷔페를 검색했다. 매우 비싼 뷔페들이 주르륵 검색되었다. 아들과 다행히 잘 협의해서 빕스에 가기로 했다.


"그럼 우리 밥스에 가는 거야?"

" 그래 가자 밥스 아니고 빕스."


오늘 남편과 한 시간을 달려 대형 마트에 다녀왔다. 아들을 위한 드로즈를 사 왔다. 부쩍 자란 아들에게 어린이용 삼각팬티 대신 음경을 위한 공간이 작게나마 따로 마련된 드로즈가 필요할 것 같아서 말이다. 음경도 많이 자랐으니 방 하나 만들어 줘야지. 내일 아들에게 선물할 계획이다.


누군가는 호들갑스럽다며 눈살 찌푸릴, 하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행복할 파티. 내일이 아이에게 따스한 추억으로 남기를, 긍정적인 성인식을 가지는 데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요즘 부쩍 큰아들의 어린 시절 영상을 자주 들여다본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너무나도 많이 커 버려서 말이다. 몇 년 후엔 분명 또 오늘을 그리워하겠지. 지금을 많이 사랑해 주어야겠다.




아들.. 그런데 말이야..

이제 엄마 옆에서는 낑낑거리지 말아 줄래? 엄마가 도무지 적응이 안 되어서 말이야. 그리스로마신화 산책도 너무 자주는 말고 적당히만 시켜주고. 알았지?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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