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웃음소리 Dec 23. 2022

나를 살린 엄마의 김치전

보통 심각한 게 아니었다.


게워낼 것이 더는 없어 시큼한 위액까지 게워 내는 날이 반복되고 있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해 일어날 기력조차 없어 가만히 누워만 있는 건 난생처음 겪는 일이었다. 병원에 가서 링거를 맞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도, 이완기 혈압이 50대 초반을 찍은 것도 처음이었다. 2015년, 나의 두 번째 입덧은 그렇게나 혹독하게 나를 찾아왔다.


잊고 살았을 뿐 기억을 되살려 보면 첫아이를 가졌을 때도 입덧이 심하긴 했다. 회사에 다니며 입덧을 견뎌내는 것은 여간 힘든 이 아니었다. 갑작스레 섬세해져 나를 당황하게 만든 둔했던 나의 후각은, 콧구멍을 굳이 세차게 벌렁이지 않고도 싱그러운 향기는 걸러내고 능글맞은 향기들은 기똥차게 맡아내곤 했다.


전날 과음한 동료와 대화를 할때나 누군가 내 옆을 쌩하고 지나간 후 묘하게 텁텁한 향기들이 내 코를 파고들 때도 견디기 힘들기는 했으나, 점심시간 이후 그들의 입에서 새어 나오는 진한 향기를 맡아내는 것이 당시 나에게는 가장 힘든 일이었다.


식당 밥은 다행히 잘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들이 나에게 다가올 때면 나는 잔뜩 긴장해야만 했다. [점심+믹스커피+담배] 3종세트를 성실하게 해치우고 양치질은 쿨하게 건너뛴 채, 누런 이를 드러내고는 세상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농담을 하러 다가오는 그들 말이다. 아니요. 오지 마세요. 제발요. 입냄새 난다구요. 그들의 입에서 앞다퉈 탈출한 눅진한 향기들이 내 코를 향해 슬로우하게 돌진할 때면, 입안 가득 불쑥 신물이 올라와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간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뛰쳐나가면서도 솔직히 말할 수가 없었다. 입냄새 나니까 입을 좀 닫아 달라고는.


사진출처 : Pixabay


그런 숱한 고비들도 잘 넘겨낸 내가 아니었던가. 책임감 하나는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나는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리를 건네고 싶지 않아 그렇게 힘든 입덧을 정신력으로 버텨내었나 보다.


남에게 폐 끼칠 일이 없어 정신력이 약해져서였을까. 첫째에게 폐를 끼치는 것은 괜찮다고 여겼던 걸까. 둘째를 자마자 나를 다시 찾아온 입덧은 1호 태풍보다 더 큰 태풍으로 변해 있었다. 주방에서 남편이 냉장고 문만 열어도 속이 메슥거렸다. 냉장고보다 거실과 좀 더 가까이 위치한 밥통 뚜껑이 열릴때면 나는 괴력을 발휘해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가곤 했다. 집이 넓어서 주방이 거실에서 좀 멀었다면 괜찮았으려나. 입덧은 무던하던 나를 예민보스로 변신시켰다.


밥도 국도 반찬도 그 어느 것도 넘기질 못했다. 중학교2학년 이후 처음 보는 인생 최저 몸무게를 찍을 때도 기뻐할 기력이 없었다. 남편이 출근한 시간, 힘을 내어 택시를 타고 친정으로 향했다. 나의 힘듦을 아픈 엄마에게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았지만, 엄마밖에 없었다. 힘들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은.


엄마를 만나러 갔을 때는 집 나갔던 정신력이 반갑게도 잠시 돌아왔다. 치매가 찾아와 힘든 시간을 보내는 중인 어르신들에게도 선물처럼 잠시 주어지는 괜찮은 시간들이, 엄마를 만나러 가는 날엔 나에게도 찾아와 주었다. 거짓말처럼 눕지 않아도 되었고, 대화도 가능했다. 임신 초기 내내 앙칼지게 변신해 나를 힘들게 한 새침했던 나의 식도는 엄마가 해 주는 음식들은 꿀꺽 삼켜 토닥토닥 위로 내려보내 주었다.


엄마는 도대체 뭐가 먹고 싶느냐고 누구처럼 눈치 없이 묻지 않았다. 두루뭉술하게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고는 센스를 발휘해 그날그날 메뉴를 달리했다. 가장 감사한 음식은 단연 김치전이었다. 기름 팍팍 들이부어 튀기듯 바삭하게 구워낸 김치전.


원래 엄마가 즐겨 해 주던 김치전에서 호두와 두부가 추가되었다. 어떻게라도 몸에 좋은 것을 먹이려는 엄마의 사랑에 감동했던 것일까. 새침했던 나의 식도는 호두와 두부까지 거르지 않고 기꺼이 꿀꺽 삼켜내어 주었다. "와 진짜 맛있겠다 이거 좀 먹어봐라"  평소와 달리 크게 오버하며 바람을 잡아주었던 엄마 덕분에, 김치전이 식탁에 오르기도 전에 내 입 속 침샘들은 그간 꽉 잠갔던 문을 활짝 열어뒀다. 촉촉한 침들이 김치전을 반가이 맞이했다. 나는 김치전을 한 두 판씩 거뜬히 해 치웠고, 낙엽마냥 바싹 말라 단내 나던 내 입속도 이내 풍성해졌다. 그렇게 엄마의 김치전은 거세게 몰아치던 나의 입덧을 잠잠하게 달래주었다.








문득 엄마의 김치전이 그리울 때가 있다. 엄마가 그리운 건지 엄마의 김치전이 그리운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럴 땐 집에서 김치전을 구워본다. 아쉽게도  2% 부족한 나의 김치전을 가족들에게 선사한다. 마지막 김치전까지 열심히 구워낸 후 젓가락을 챙겨들고 식탁에 앉는다. 내가 먹을 김치전은 이미 그들의 입속으로 모두 사라지고 없다. 마지막 김치전에도 호기롭게 손을 뻗치는 철없는 그들을 그냥 내버려둔다. 어릴적 나와 똑 닮아서 말이다.


김치전을 구으며 엄마가 그리워 광대까지 산책 나왔던 눈물이 쏙 들어간다. 


이럴땐 눈치도 없고 철도 없는 시커먼 삼총사가 곁에 있어 다행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