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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웃음소리 Dec 30. 2022

엄마도 등급이 있나요?

급 : 높고 낮음이나 좋고 나쁨 따위의 차이를 여러 층으로 구분한 단계.






내신 등급, 대학 등급, 직장 등급, 직장 내 성과 등급, 신용 등급, 후기를 토대로 점수 매겨진 식당의 등급, 그리고 한우 등급까지. 세상은 많은 것을 등급으로 나누어 놓았다.


등급을 나누는 것이 탐탁지는 않지만, 아무런 등급이 없는 세상에서 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나도 어떤 결정을 해야 할 상황에서는 (나만의 기준으로 오랜 시간 지켜보고 알아낼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경우) 한눈에 보기 쉽게 수치화하여 구분 지어 놓은 이 '등급'이라는 것을 토대로 판단하고 평가하고 선택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는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엇을 보며 등급을 매기지 않았고, 누군가로부터 등급이 매겨졌던들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며 그저 해맑게 지냈으니 말이다.


노골적인 등급 나누기는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되었다. 수업시간에 습득한 지식을 얼마나 성실하게 이해하고 오랫동안 기억해내는지만을 평가하는 오지선다형 시험을 쳤다. 그 시험 결과를 토대로 반 안에서 내가 몇 등인지 간단명료하게 숫자로 통보받았다. 괜찮았다. 선생님은 성적표를 공개하지 않았고, 혼자서 나의 결과지를 들여다보며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반 나누기였다. 우리 학교는 전교생을 시험등수로 줄 세워 보충수업 반을 나누었다. 제일 잘하는 반 한 반, 두 번째로 잘하는 반 한 반, 그리고 나머지 여러 개 반들은 등급을 매기지 않고 그냥 뭉쳐 놓았다. 나의 성적은 한 반에 진득하니 있지 못하는 활발한 성격이었다.  등급의 반을 모두 경험했으니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의 속도대로 천천히 걸어갔으면 되었을 것을, 잘하는 그룹에 앉아 있고 싶어 암기과목 점수부터 올리며 애를 썼다. 나에게 별 관심도 없었을 선생님과 친구들의 시선을 잔뜩 의식하면서 말이다.


정규수업을 마치고 보충수업 반으로 이동할 때, 제일 잘하는 반 쪽으로 걸어가고 싶었다. HOT나 젝스키스 대신 3년 내내 좋아했던 국어 선생님을 그쪽 방향으로 걸어가면서 만나고 싶었다. 제일 잘하는 친구들과 발맞춰서, 나도 그들과 같은 등급인 척.


나는 그렇게 고개를 푹 숙인 채 바로 한 발자국 앞만 내다보며 지냈다. 수능도 아니고 바로 눈앞의 결과만을 보며 말이다. 


그렇게 매겨진 등급 안의 작은 세상에서 방황할 일은 별로 없었다. 정확한 피드백이 있었으니 말이다. 학교에서는 시험성적을 통해 내가 잘하고 있는지 여부를 정확하게 판단해 주었고, 직장에서는 상사가 나의 잘잘못을 냉철하게 따져내고 평가해 주었다. 서러울 때는 있었지만, 불안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서른이 넘을 때까지 등급이 나뉜 채 확실한 피드백을 받으며 사는 것에 순응했고 익숙해져 있었다.

                                                                         



사진출처 : pixabay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낳고 전업주부가 되면서는 갑자기 각종 평가에서 자유로워졌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재우고, 웃게 해 주고, 함께 놀아주고, 사랑을 주며 하루를 잘 보내면 그걸로 충분했으니 평가받을 일이 없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불안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자유로움은 그저 찰나에 불과했다. 아이들이 자라는 것이 찰나였던 것처럼 말이다. 아이가 커가면서 독서, 글쓰기, 영어, 사회성, 리더십, 자기 주도성, 수학, 예체능 등 아이가 잘 습득하여 살아가는 데에 불이익이 없도록 부모가 도와야 할 일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하지만 직장 상사처럼 나의 잘잘못을 냉철하게 평가하며 어떻게 할지를 알려주는 사람도, 오지선다형 시험문제처럼 확실한 정답도 없었다.


큰 아이가 2학년이 되었을 무렵부터 유튜브를 통해 교육 관련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나에게 도움을 주는 좋은 강의들이 많았고, 그때부터 설거지를 할 때 내 귀에는 무조건 이어폰이 꽂혀 있었다. 그때까지는 참 좋았다. 인스타라는 것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인스타를 알게 되면서부터 조금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SNS 속 남의 집 아이와 엄마를 너무나도 쉽게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작고 네모난 액정  끝도 없이 광활하게 넓은 세상 안에는 집안일, 회사일, 아이의 독서, 글쓰기, 영어, 수학, 미술, 악기, 스포츠, 각종 체험 등 모든 것을 완벽히 관리해 내면서 아이에게 온화하고 다정하기까지 한, 최고 등급인 것처럼 보이는 엄마들이 있었다. 그 엄마의 아이도 최고 등급처럼 보였다. 그래, 저렇게 하면 되겠다. 그런데 정답인 것처럼 보이는 것을 찾고 나니 더 불편했다. 아이가 새벽 공부를 하도록 잘 이끌고, 영어로 대화하고, 각종 큰 대회에 출전해 수상하는 기쁨도 알게 해 주는 부지런하고 발 빠르고 똑 부러지고 경제적 능력까지 갖춘 그런 최고등급의 엄마가,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최고등급의 엄마가 되지는 못할 것 같아서 말이다.


나는 최고 등급이 아니어도 정말 괜찮은데, 이런 나로 인해 내 아이도 시작부터 나와 같은 등급이 된다고 생각하니 그건 참, 안될 일이었다.


급기야 나는 엄마로서 나의 위치는 과연 어디쯤인지 등급을 매겨 놓은 결과지를 받아 보고 싶어졌다. 학교와 회사에서 늘 나에게 해 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결과지를 받아 보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여 조금씩 위로 올라가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평가 없이 자유로운 찰나가 좋았는데, 평가와 피드백이 확실했던 예전의 세상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어졌다. 그런 세상에 익숙해져서 자유가 오히려 불안했던가 보다.


나는 대충 몇 개의 기준을 만들어 내 점수를 매겨보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나를 평가한다고 생각하고 평가 기준을 세웠는데, 다시 보니 내 평가가 아니라 완벽히 아이에 대한 평가였다. 아이의 독서, 이의 글쓰기, 아이의 사회성, 아이의 자기 주도성, 아이의 영어 리딩 레벨, 아이의 단원평가 점수, 아이의 수학 감정, 아이의 운동능력 등. 정작 나에 대한 평가 기준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나를 평가해보고 싶었던건데. 나의 등급은 온전히 아이의 아웃풋에 따라 결정되는 것일까. 아니면 등급을 매겨보고 상처받기 싫어서 차라리 아이 뒤로 숨어버린 것일까. 성취감을 느낄곳을 찾지못해 아이를 통해 성취감을 느끼고 싶었던 걸까. 궁금했다. 엄마는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여 등급을 나눌 있는 건지. 나는 불안하고 싶지 않으니 예전처럼 확실히 등급을 알고 싶은데.






첫째가 곧 12살,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 된다. 아직 엄마의 등급을 나누는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제는 나의 등급을 매겨보려고 애쓰지 않는다. 교육 관련 영상을 차근차근 보며 내 아이의 상황에 빗대어 이해해 본다. 많이 달라질 미래에서 살아갈 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도 생각해 본다. 어쩌다 인스타의 스마트한 알고리즘이 나에게 1등급 엄마들을 또 소개해 주지만, 이제 불편하지 않다. 부러워하며 배울 점이 있는지를 찬찬히 살핀다. 정답도 피드백도 없는 육아가 여전히 불안하긴 하지만, 나와 내 아이의 속도를 믿어본다.


내 아이는 똑같은 기준으로 점수 매겨 줄을 세우고 등급을 나누는 세상보다는 개인의 고유한 능력과 생각을 존중받고 인정받는 세상에 살게 하고 싶다. 하지만 내 바람과는 달리 여전히 오지선다형 시험성적만을 기준으로 나누어놓은 작디작은 등급 세상 속에서 살아갈 수도 있을 테다.


등급 작은 세상 안에 살게 되더라도  아이는 곳을 알았으면 한다. 아이가 예전의 나를 닮아 눈앞의 결과에만 집착한다면, 단단하게 옆에 서서 곳을 내다볼 있게 빛을 밝혀주고 싶다. 인스타 속 대단한 엄마가 되어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내 능력 밖이니, 초 대형 등대 같은 엄마가 되자고 다짐해 본다. 







그런데 요즘 막막한 기분이 자꾸만 몰려온다. 며칠 동안 내 몸을 불살라 바싹 즐겨둬야 할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왜일까.


아이들이 방학을 한다. 게다가 겨울방학은 방과후교실도 없이 두 달이나 된단다. 휴. 큰일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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