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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에이 Oct 17. 2022

먼저 승진한 후배가 나를 이상하게 부른다.

언니!! 잘 지내세요?

후배 하나가 사내 메신저로 오랜만에 안부를 물어왔다.

 

그러고 보니 올해 들어 연락은 처음인가,

반가운 마음도  잠시.

 어딘가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언니?

얘가 나를 언니라고 불렀었나?




그녀는,

나 역시 철 모르는 신입이었던 그  옛날에

첫 발령지에서 만나

서툰 사회초년생 시절을 함께 보낸

나의 첫 동성 직장 후배다.

당시 우리는 기대 같지 않은 직장 생활이 유발하는

애환과 어려움을 서로 나누며

퍽 가깝게 지냈었다.


그 후 몇 번의 인사이동과

각자의 결혼, 육아휴직 등으로 인해

사이는 자연스레 멀어져 갔지만

이따금씩 연락해 근황을 나누고,

옛 기억을 소환하고,

 쉬이 늙어감을 서러워하고는 했다.




그런 그녀의 나에 대한 호칭은

내가 기억하는 한 언제나

'계장님' 그 이후엔 '대리님'이었다.


여자 직원들끼리 '언니'라 부르며

스스럼없이 지내는 일이 그리 드문 환경은 아니었지만,

붙임성 있는 성격과는 별개로

그녀는 직장에서 '언니'라는 말을 잘 사용하지 않았다.




별 의미를 멋대로 담지 않기 위해

애써 대화의 내용에만 집중해보려 해도

익숙지 않은  '언니'라는 단어가

자꾸 눈에 걸려 신경이 쓰인다.


 똑같이 대리이던 시절까지는 괜찮았으나,

나보다 먼저 과장이 된 지금

'대리님~' 하고 부르는 것이

어쩐지 하대를 하는 것만 같아

마음이 불편했을까?

그래서 고민 끝에 잘 쓰지 않던 호칭까지 써가며

나에게 말을 건 걸까?


손가락으로는 연신 ㅋㅋㅋ를 치며 생각한다.

'그냥 원래대로 해도 돼~라고 할까?

나는 Fucking Fine 하니까,

신경 쓰지 말고 부르던 대로 부르라고.'


하지만 그런 나의 말이

애써 고안해 낸 배려를

무안하게 만드는 걸지도 모른단 생각에,

일단 가만히 있어 본다.

쿨한 척하는 걸로 보일까 봐,

그것도 싫고.




그런데,

나는 정말 괜찮단 말이다.

십여 년 만에 부르는 말을 바꿔가며

배려받아야 할 정도로

예민하지가 않단 말이다.

아 글쎄, 정말이라니까요?


 대학 졸업반 시절에

행시를 준비하던 선배 언니 하나가

절대로! 절대로! 합격해야 한다고

힘주어 이야기하곤 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사람은 최대한 실패해선 안된다고.


.......아니, 사람이 실패할 수도 있지!

당시에도,

그 이후 오랫동안도,

이해할 수 없던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이제 어느 부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이 실패를 하면,

그를 둘러싼 주변의 시선과 반응은

본인의 극복 여부와는

완전히 별개의 것이 되어 그에게 따라붙는다.

본인의 의지와는 별 상관없이

주변을 불편케 하고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기도 한다.


정말로 괜찮음을 증명할 길이 없다.




 내가 의도한 는 아니지만

분명히 내가 일으켰을

그녀의 주저함과 곤란함이 떠올라

 때때로, 잠시

마음이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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