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잘 지내세요?
후배 하나가 사내 메신저로 오랜만에 안부를 물어왔다.
그러고 보니 올해 들어 연락은 처음인가,
반가운 마음도 잠시.
어딘가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언니?
얘가 나를 언니라고 불렀었나?
그녀는,
나 역시 철 모르는 신입이었던 그 옛날에
첫 발령지에서 만나
서툰 사회초년생 시절을 함께 보낸
나의 첫 동성 직장 후배다.
당시 우리는 기대 같지 않은 직장 생활이 유발하는
애환과 어려움을 서로 나누며
퍽 가깝게 지냈었다.
그 후 몇 번의 인사이동과
각자의 결혼, 육아휴직 등으로 인해
사이는 자연스레 멀어져 갔지만
이따금씩 연락해 근황을 나누고,
옛 기억을 소환하고,
쉬이 늙어감을 서러워하고는 했다.
그런 그녀의 나에 대한 호칭은
내가 기억하는 한 언제나
'계장님' 그 이후엔 '대리님'이었다.
여자 직원들끼리 '언니'라 부르며
스스럼없이 지내는 일이 그리 드문 환경은 아니었지만,
붙임성 있는 성격과는 별개로
그녀는 직장에서 '언니'라는 말을 잘 사용하지 않았다.
별 의미를 멋대로 담지 않기 위해
애써 대화의 내용에만 집중해보려 해도
익숙지 않은 '언니'라는 단어가
자꾸 눈에 걸려 신경이 쓰인다.
똑같이 대리이던 시절까지는 괜찮았으나,
나보다 먼저 과장이 된 지금
'대리님~' 하고 부르는 것이
어쩐지 하대를 하는 것만 같아
마음이 불편했을까?
그래서 고민 끝에 잘 쓰지 않던 호칭까지 써가며
나에게 말을 건 걸까?
손가락으로는 연신 ㅋㅋㅋ를 치며 생각한다.
'그냥 원래대로 해도 돼~라고 할까?
나는 Fucking Fine 하니까,
신경 쓰지 말고 부르던 대로 부르라고.'
하지만 그런 나의 말이
애써 고안해 낸 배려를
무안하게 만드는 걸지도 모른단 생각에,
일단 가만히 있어 본다.
쿨한 척하는 걸로 보일까 봐,
그것도 싫고.
그런데,
나는 정말 괜찮단 말이다.
십여 년 만에 부르는 말을 바꿔가며
배려받아야 할 정도로
예민하지가 않단 말이다.
아 글쎄, 정말이라니까요?
대학 졸업반 시절에
행시를 준비하던 선배 언니 하나가
절대로! 절대로! 합격해야 한다고
힘주어 이야기하곤 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사람은 최대한 실패해선 안된다고.
.......아니, 사람이 실패할 수도 있지!
당시에도,
그 이후 오랫동안도,
이해할 수 없던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이제 어느 부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이 실패를 하면,
그를 둘러싼 주변의 시선과 반응은
본인의 극복 여부와는
완전히 별개의 것이 되어 그에게 따라붙는다.
본인의 의지와는 별 상관없이
주변을 불편케 하고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기도 한다.
정말로 괜찮음을 증명할 길이 없다.
내가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분명히 내가 일으켰을
그녀의 주저함과 곤란함이 떠올라
때때로, 잠시
마음이 가라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