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의 시간은 세상과 달라도 한참 달라!
띵동~
내 손에 있는 종이는 297번, 앞에는 아직 21명의 사람이 대기하고 있다.
대학병원의 접수처엔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사람들이 생긴다. 꾸부정한 허리에 핑크 꽃이 화려한 모자를 쓰고 오신 할머니부터 머리를 빡빡 밀고 한 쪽 손목에는 링겔주사를 맞고 엄마와 함께 손을 꼬옥 잡고 있는 아이까지, 다양한 사연을 갖고 있는 환자와 환자의 가족들로 모여있는 이 공간.
은행에서 이 정도의 대기가 있었다면 짜증이 났겠지만, 병원은 희안하게 그런 감정이 들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어느부분 공통의 압박감과 슬픔 속에 있다는 동지애(?)같은 느낌 때문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나보다는 더 심각하고 절망적일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대인배같은 감정이 샘솟는 것일까, 전혀 모르겠는 아리쏭한 감정이지만 병원에 다녀 본 사람들은 알고 있다.
병원에서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검사를 받기 위해, 의사와 예약을 하기 위해, 수납을 하기 위해, 진료 청구서를 뽑기 위해,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기다려야 한다’. 병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모든 우선순위는 이 곳에서의 오늘 할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삶의 그 어떤 것도 우선순위를 차지 할 수 없다. 끝도 없는 기다림에 느긋해져야하고 의연해지게 되는 것이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보험 가입할 때나 들었던 ‘항암약물치료’를 엄마가 시작했다.
항암약물치료를 받는데 7시간 동안 누워서 약물을 몸에 넣는다고 한다. 종일 그렇게 약물을 넣고, 다음 날 다시 병원에 와서 면역주사를 맞는다.
엄마의 모든 시간은 ‘유방암’이라는 병과의 싸움을 위해서 모두 바쳐지고 있다.
“빨리 겨울이 와서 시간이 후다닥 지나갔으면 좋겠어.“
앞으로 4번의 항암 약물치료가 더 남았고, 수술을 한 후에도 항암 치료를 2-3번 더 해야 하는 엄마가 말한다,.
다가오는 계절들은 엄마에게는 항암 약물치료로 가장 힘들었던 해가 될 것이다.
갑자기 엄마가 유방암 2기 선고를 받고,
아빠는 염증 수치가 높아져서 요양원에서 요양병원으로 급하게 이동하고,
내 삶도 뭐가 이렇게 버겁다냐~ 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병원에서 접수증을 손에 꼭 쥐고, 접수 번호가 바뀌는 것만 하염없이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왜 나인가요? 왜 우리 엄마인가요? 왜 우리 아빠인가요?’라는 외침도 오만이라는 것을 깨닫는 요즘,
아빠 혼자 아프고, 엄마랑 동생이랑 셋이 있을 때는 괜찮았던 것 같은데
엄마까지 아프기 시작하니 나의 시간도 이전과의 다른 질량과 속도로 급격하게 바뀌었다.
이 멈칫멈칫하는 흐름이, 내 정신까지 쏘옥 바닥까지 끌고 가져가는 무거움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닐거라고 주문처럼 중얼거려본다.
그래, 괜찮다.
괜찮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