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빡 머리를 민 엄마를 봤을 때,

예상외의 감정

by 정겨움

“오늘 머리 다 밀었어.”

첫 번째 항암약물치료 도중, 엄마에게 메시지가 왔다. 갑자기 가슴이 철렁해진다.

엄마가 유방암 판정을 받았을 때도 의연했고, 전이가 되지 않은 암이라는 말에 행복했었는데, 기어이 내 감정의 문을 톡 건드는 순간이 온 것이다.


머리카락이 없는 엄마를 보게 되는 순간은 한 번도 상상한 적이 없었어서 엄마와 병원을 가기 위해서 집에 들어섰을 때는 가슴이 두근두근하기까지 했다. 내가 울면 엄마까지 슬퍼질 텐데, 하는 생각도 들면서 너무 그동안 내가 의연하게 굴어서 ‘우리 딸이 정말 어른이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서운했다는 엄마의 푸념을 한 번에 잠재울 수 있게 목놓아 울어버려야 하나 하는 이성적인 생각도 들었다.


두상의 선이 그대로 드러난 민머리의 엄마를 보고 순간 울컥, 했지만..

“엄마, 두상이 진짜 이쁘다”하는 진심 어린 말이 툭 나왔다. “엄마 머리 잘라준 미용실 원장님도 그렇게 말하더라?” 엄마는 한 술 더 뜬다. 그 말에 둘이 같이 낄낄 거리며 웃다 보니 눈물이 쏙 들어갔다. “역시.. 예쁜 사람은 뭘 해도 예쁜가 봐” 나는 인생의 진리를 다시금 깨달은 양 말했다. 엄마는 눈을 흘겨보지만, 좋아하는 눈치다.


엄마는 항암치료를 시작할 때부터 머리 빠지는 것에 대해서 걱정을 했던 터라 예쁜 가발을 내가 사주겠다고 했었다. “겨움아, 인모 가발은 100만 원이 넘는데.”라고 해서 “엄마한테 그 정도도 못 쓸까봐”라고 말하고 속으로 3개월 할부를 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내 베프 름름이가 뇌종양으로 수술을 했을 때 머리를 짧게 자르고 썼던 가발이 불편하다고 말했던 기억도 나서, 가발을 사기만 하고 제대로 쓰지도 못하면 어쩌나 생각도 들었다. 엄마랑 병원 안에 있었던 가발 집에 들렀다. 둘 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엄마는 비쌀 거라는 , 나는 가발을 쓰면 어색해 보일 거라는 생각) 들어가서 하나 써 보고 나서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치료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해 줄 때와 비슷한 기술의 혁신을 느꼈다. 요새 가발은 정말 가볍고 자연스럽구나, 새삼 놀라면서 엄마에게 이것도 써보고, 저 것도 써보라고 주문했다. 그중에는 엄마가 즐겨하던 헤어스타일도 있어서 앞머리만 조금 다듬으면 엄마 머리 그 자체였다. 모자를 쓰는 사람들 위한 ‘모자 가발’도 있었는데, 위에 부분은 모발이 없고 밑에 부분만 있는 대신 가격이 저렴했다. 모자를 즐겨 쓰는 엄마에게는 너무 딱! 인 가발이었는데 평소에 엄마가 하지 않는 어깨 길이의 생머리 가발을 쓰니 이건 거의 대학생 같은 외모로 보였다. 철없는 우리는 거기서 의외로 예쁘고, 가볍고, 가격도 생각보다 저렴했던 가발 쇼핑에 신이 났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통 가발과 모자 가발을 함께 구매하고 인증샷까지 찍었다.


어제오늘 엄마 식사를 챙겨 드리느라 엄마 집에서 자고 식사를 하면서 엄마의 민머리를 가장 오랫동안 보았다.

핸드폰을 보고 있는 엄마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문득, 굉장히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엄마.. 이집트 파라오 여왕 같아.”

엄마는 또 말도 안 되는 소리 한다면서 눈을 흘긴다. 그래도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게 싫은 눈치는 아니다.


엄마가 머리를 빡빡 밀었다.

머리를 밀어도 예쁘다.

앞으로 남은 치료와 수술이 너무 독하지 않아서 엄마의 예쁨을 계속 지켜줬으면 좋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다른 질량과 속도로 흘러가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