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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cing with Pen Jan 06. 2025

글쓰기, 소외되지 않는 노동

여전히 어렵다. 글을 쓴다는 것은.


30년이 넘는 세월의 대부분 내 직업은 글쓰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대학원생, 서원생, 고시생, 교육생.


생생한 문장으로 내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 욕망은 늘 해방구를 찾아헤맸다.


공무원이 되어 글쓰기가 아니라 문서작성이 직업이 된 후로 특히 그랬다.


개조식에서 벗어나 문장을 서술형 어미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서술에 대한 갈증이 계속되는 가운데 술로 대신 목을 축이던 어느 날,


친구로부터 인스타 계정을 하나 추천받았다.


대학교 후배가 글을 쓰는 계정이라고 했다.


<솔직한 수요일>.


매주 수요일 일상의 마음을 담백한 문장으로 조각한 글이 올라왔다.


일주일 가운데 가장 지치기 쉬운 수요일을 솔직함으로 적셔보자는 취지가 참 좋았다.



오늘 인천에서 북페어가 있었다.


독립출판 작가들이 직접 만든 책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브레인 섹스(brain sex) 파트너 중 한 명인 닥터정과 함께 다녀왔다.


우리는 평소 인문학과 과학을 크로스오버하는 대화의 애무를 즐기던 사이였다.


입버릇처럼 오럴(oral)을 넘어 텍스트(text)로 희열을 확장하자며 서로를 응원해왔다.



참가팀 가운데 <솔직한 수요일>도 있었다.


아이돌 가수 팬미팅에 처음 온 수줍은 남고생처럼 인사를 건넸다.


두 분의 작가가 다정함으로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손수 바인딩한 글모음 2권과 솔직 저금통을 구매했다.


작은 책이었지만 여기저기 긁혀서 쓰라린 마음을 위로해주는 문구가 가득했다.


내 자신에게 주는 정말 좋은 선물이었다.



북페어에서 만난 작가들은 그들의 작품뿐만이 아니라 태도로도 멋진 예술을 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지를 잊고 지냈다.


지난 몇 달간 노동 속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동료들의 애환만 들어왔기에 더욱 그랬다.



사실 나 또한 무의미한 노동이라는 수렁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국가행정이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것만 같은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칼 맑스가 말하는 ‘노동으로부터의 소외’가 이런 것일까?


공산주의 이론은 비현실적인 가정과 초현실적인 목표로 비인간적인 체제를 만들어냈지만,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으로부터의 소외를 지적한 맑스의 통찰은 천재적이다.


그리고 유물론, 자본의 착취, 프롤레타리아 독재 등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인간적이며 자본주의에 대한 가장 날카로운 비판이다.



자본주의의 사상적 기초를 닦은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국가의 부가 어디에서 창출되는지를 연구했다.


스미스는 분업(division of labor)이 부를 창출한다고 주장한다.


분업을 통해 각자 잘하는 일을 특화하면, 전문성이 쌓여서 한정된 자원을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더욱 많은 재화가 생산된다.


시장은 분업의 결과물 즉, 상품을 교환하는 장이지 그 자체가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새로운 부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업은 노동으로부터의 소외를 가져온다.


노동자는 생산 과정의 일부만을 담당하게 되면서 자신이 맡은 일이 전체의 어디에 속하는지를 모르게 된다.


중세 봉건사회의 농부가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곡식을 수확하면서 생산의 모든 과정을 경험하는 것과는 달리,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프롤레타리아는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무언가의 부품을 만들기 위해 나사를 조일 뿐이다.


그리고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에서 묘사하듯이 종국에는 그가 부품이 된다.



<솔직한 수요일>의 작가는 책을 만드는 과정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유해주었다.


글 쓰고, 인쇄하고, 바인딩하고, 포장하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소외되지 않은 노동을 간접체험했다.


그 과정을 지켜보고 결과물을 직접 만져볼 수 있어서 큰 행운이었다.



역시 어렵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이 글을 쓰면서도 새삼 다시 느꼈다.


그러나 글쓰기만큼 온전한 노동이 없기에 계속해보려고 한다. 끝.



P.S.


글을 마무리하는 지점에서 <솔직한 수요일> 1권에 소개된 문장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사실은 문체를 이기고, 솔직한 사실 고백은 가식적이고 수려한 사실의 나열을 이긴다.”


다시 내가 쓴 글을 읽어본다.


아직도 글이 가식적이고 수려한 사실의 나열에 머무르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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