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 다난했던 과거, 내 특별한 에너지의 원천이 되다!
찢어지게 가난함? 남들과는 많이도 달랐던 가정형편! 나의 성장과정을 설명하자면 거추장스럽고 복잡하다! 해서 사람들이 질문도 또 관심도 불편하기 짝이 없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앞섰고 설명도 앞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픈 어린 시절이 있다 나에겐! 내 인생 전반기 '마흔' 이전, 어린 시절 가정형편을 생각하면 부끄러움이 앞섰다! 그러던 내게 마흔이라는 묵직한 시간이 가져다준 무게 덕에 성숙함이 더해진 걸까? 아님 작지만 성공의 경험들이 쌓여 자존감이 바로 서서힐까? 내 인생 후반기 '마흔'을 너무 가자니, 복잡 다난했던 과거지사가 오히려 특별한 에너지의 원천이 되어주는 느낌으로 반전한다!
내 인생 딱 두 개로 나누면 ‘마흔 이전’과 ‘마흔 이후’로 나뉜다. ‘마흔 이전’ 구구절절하고 나만 가진 거추장스러운 사연들이 참 싫었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인생 퉁쳐서 ‘검정고시’라 자칭하고 다녔고 그러면 더 이상은 묻지 않으니 아주 깔끔하다며 좋아라 했다! ‘마흔 이후’ 유독 특별했던 나의 과거는 '열정 가득한 지금의 나'를 만든 특별한 에너지의 원천이 된다!
초등학교를 거쳐 중학교 1학년, 햇살이 깊이 들어오는 앞마당이 있는 아담한 우리 집을 좋아했다. 기와집 처마가 있어 봄이면 햇살은 물론 빗소리 바람소리가 가까웠고, 여름이면 빗물 받아 머리를 감곤 했다. 가을이 올라치면 낙엽으로 인형 만들어 소꿉놀이를 즐겼고, 겨울이면 깨끗한 고드름을 똑똑~ 따먹곤 했다. 안방 건넌방 작은방.. 방들은 마루로 연결되어 신발을 신지 않고도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쾌적한 공간들이 좋았다.
마루 앞에 마당을 사이에 두고 세수하는 곳에는 마중물만 넣으면 시원한 샘물이 콸콸 쏟아지는 오래된 펌프랑 붉은색 대야가 늘 우리를 맞았다. 이것들이 다 같이 햇살을 받을라치면 참으로 포근하다 몸도 마음도! 엄마 아버지 일하시느라 늦으셨고 3남 2녀에 늦둥이 막내로 태어난 나는 늘 할머니 차지였다. 할머니방은 내방이기도 했고, 몇 세대쯤 차이 났지만 다정했던 할머니랑 나랑은 서로 엄마 삼아 친구 삼아 놀곤 했다.
평화롭던 어느 날, 빚보증 잘못 서신 아버지가 연쇄적으로 빚더미에 앉는 사건, 아버지 인생에 반전이 일어난다. 이날로 가족들 인생 모두 구구절절 해진다. 구구절절 사연 끝에 야밤에 서울로 떠밀려 왔고 지하 방 한 칸에 여섯 식구 몽땅 들어앉게 된다. 졸지에 그렇게 시골 소녀는 도시로 올라왔고, 사춘기 없기로 한 중2를 맞게 된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말로만 듣던 서울깍쟁이들, 머리에 뿔이라도 달린 줄 알았더니 그것도 같은 종족이더라! 상상을 무지막지하게 했던 탓인지 생각보다 좋았고, 덕분에 서울 친구들과 함께 사춘기를 잘 넘기고 있었다. 아버지 빚잔치 탓? 아니 덕분! 에 내 인생은 이렇게 새롭게 태어나게 된다 '서울 똑순이'로
시골 고등학교에서 전교 회장을 놓치지 않던 큰 언니, 큰 딸로서 엉망진창이 된 집안을 대하면서 일찌감치 철이 든다. 공부로는 단연 상위권에 리더십까지 완벽하게 갖췄건만 대학은 언감생심 생각도 안 하게 된다. 회사 규모 따위를 보고 고르는 건 사치라는 듯, 빠르게 중소기업 선택했고 자발적으로 돈벌이로 뛰어든다. 맏딸로 태어난 이유만으로 언니는 가문의 영광이자 유일한 우리 집 대학생 둘째 아들 뒷바라지를 전담한다. 고등학생 시절 시골에서 짱 먹던 우리 언니는 그렇게 서울 악바리 다 되어가고, 시집도 마다하고 청춘 불살라 집안을 이끌기 시작한다.
할머니를 포함해서 여덟 가족이 단칸방처지니 졸지에 우리 집 가장이 된 언니는 이제 물불 안 가릴 판이다! 낮에 일하는 것도 부족해 구구절절 상경한 가족들 살린다고 퇴근 후 포장마차로 투잡을 시작한다. 언니의 투잡은 그렇게 가족 모두의 業이 된다. 가족들 모두가 떡볶이 순대 그리고 어묵 부대가 되고, 누구는 시장 보고, 누구는 재료 준비하고 또 누구는 리어카 당번이다. 똑순이 우리 언니 미리 상경해서 남동생 거두어 책임지는 동안 안 해본 게 없나 보다! 처음 해보는 솜씨가 아니다 분명! 일사천리다.
밤이면 피어오르는 꽃처럼 오렌지색 포장마차는 밤마다 그렇게, 늘 같은 자리애서 불을 피웠다 추우나 더우나! 온 가족이 돌아가며 뭐든 당번이 되고 뭐든 같이 했다. 그렇게 6개월쯤 지났나? 지하지만 방 두 칸에 작은 거실이 있는 방으로 옮기는 걸 보고 좋~다며 가족들 모여서 떡볶이 파티를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 평생 먹을 떡볶이는 그때 다 먹었지 싶은데 아직도 떡볶이를 좋아하는 걸 보면, 막내라고 당번 다 빠지고 먹기만 한 게 틀림없다!
고등학교 입학을 위해서 ‘연합고사’ 시험을 치러야 하는 시절이었다. 중3 연합고사 시험을 앞두고 가족회의 끝에 두어 달 독서실을 끊었다. 어린 마음에 어찌나 비싸고 감사하던지, 형편이 안 좋은데 과분하다는 생각을 했던듯하다. 화장실 가는 것도 아깝다며 피치 올렸더니 엉덩이 무거운 중학생 들어왔다며, 기특하다며, 독서실 실에 소문이 자자했었다. 덕분에 200점 만점에 185점으로 고등학교는 얼마든지 골라갈 수 있는 상황이 된다. 언니 오빠들 엄마 아버지 모두 희생하는 걸 옆에서 지켜봤던 나로서는 자연스럽다는 듯 여상을 선택한다 스스로! 마음은 개나 소나? 다 가는 대학. 나도 가고 싶었다! 그 마음 꿀꺽 삼키는 중3 어린 소녀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흐른다.
여자상업고등학교 3년, 적성 따윈 의미도 없는 채로 주산 부기 자격증을 따고 기계적인 일들 열심히 배운다. 그 당시 상고 상위 3개가 있었고, 우리 학교가 그중 하나였던 자부심은 있었으나 뭔가 아쉼음도 동시에 있었기에 마음 한구석에 묵직함이 늘 자리했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면 20살, 돌아보면 그때 내가 뭘 알아서 회사 가서 일을 했나 싶다! 19살 소녀는 그렇게 졸업도 전에 취업전선에 뛰어든다. 내가 기억하는 여상은 시키는 일에 불만 없이 할 줄 아는 업무보조를 생산해내는 걸 목표로 삼은 듯, 고만 고만한 교육을 시켰다. 자존하기에 부족한 지식에 출신의 제약까지 합해져 나의 자존감이 바로 세워질 틈 없이 그렇게, 나는 지원업무에 최적화된 존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기획된 이 구조안에 있을 때 나는 '채' 인지하지 못했었다. 밖에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던 어느 날, 분한 마음에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여상 3년, 시키는 것대로 고분고분 따를 줄 아는 고만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교육되어 왔고, 그 안에 내가 있었다는 사실에 분개했다. 지원업무 3년 차 자존감이 없었던 무색함이었는지, 아니면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분노가 찾아온 날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는 않는다. 그러게 나는 무엇에 홀린 듯 대입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다시 직장을 구해도 시원찮은 판에 한 번도 안 해 본, 넉 달도 채 안 남은 입시공부를 하겠다니 가족들 걱정이 대단하다. 가족 중 한 명이 '점'을 보고 왔다며 내 팔자에는 대학이 없다 했단다 점쟁이가. 헐 ㅠㅠ 뭐지? 어떤 놈의 점쟁이? 지가 뭔데 내 인생을 논해?..... 이 씨!
그러나 현실은 내가 들어도 그럴듯하다! 다만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뭔가가 올라오는 것을 찐~ 하게 느낄 뿐... ‘그래 너 점쟁이 그렇게만 살아,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한번 보자’ 그렇게 난생처음 시도하는 입시공부는 시작되었고, 날마다 배우는 재미에 밤새기를 밥 먹듯 하면서도 매 순간 짜릿하고 재미있었다! 공부가 그리 재밌고 감사하더니 3.5개월 후 나는 팔자에 없다는 대학에 합격한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렸다 ‘망할 놈의 점쟁이, 너 딱 거기 섯!’
'대졸'로 이력 세탁을 깨끗하게 마치고, 떳떳하게 대졸 출신 사원으로 다시 태어난다. 스스로 대견하고 기특한 것도 잠깐,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1997년 IMF가 터지면서 제일 먼저 내가 속한 서울사무소가 문을 닫기로 결정되었다는 통보를 받는다. 내 월급으로 여덟 가족 살림을 도와야 하는 형편이었기에 아찔했다 눈앞이 캄캄했다. 아르바이트는 줄곧 했지만 대학생이라고 공부며 취미며 설치고 다니던 동안, 든든하게 지원해줬던 가족들 얼굴이 하나둘 스쳐 지나간다.
IMF 당시 자연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는 사람이 자산이고, 제대로 된 교육만이 살길이라 하여, 범국민 금 팔기 운동에 준하는 교육운동이 일어난다. 정부 차원에서 노동부 ‘재취업 교육과정’ 정보통신부 ‘신규 취업 교육과정’등 다양한 교육이 생겨난다. 교육을 받는 동안 좀 더 편안하게 집중하라는 의미로 취업장려금까지 지원해준다.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공부에 집중해서 제대로 된 전업을 시도하라는 좋은 의도이다.
IMF로 인해서 여러 가지 상황은 안 좋지만 나는 참 좋았다!!! 덕분에 처음 해보는 공부를 맘껏 골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노동부 안내로 이런저런 커리큘럼을 대하자니 내 마음 한구석, 뭔가 뜨거운 것이 다시 꿈틀거린다. 나 '김성미' 이 땅에 왜 태어난 것일까? 나의 소명은 무엇일까? 새로운 뭔가, 나만 할 수 있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 이쯤 다다르니 머리와 가슴이 몹시 시끄럽다. 맘 내키는 세 개 과정을 동그라미 치고, 브로셔를 안고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