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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살 Mar 15. 2024

유학을? 농촌으로? 도대체 왜?

네, 전남농촌유학을 다녀왔습니다


1년동안 전라남도 곡성으로 '농촌유학'을 다녀왔다.



농촌으로 유학을 간다는 주변에 사실을 알렸을 때 반응은 크게 세 가지였다. 

칭송 혹은 의아, 그리고 쏟아지는 질문. 

유학을? 

농촌으로? 

거기서 뭐 하게? 대체 왜? 거기 뭐가 있어? 


농촌유학 떠난 나의 '용기'를 칭송하는 이유

우선은 덮어놓고 대단하다, 부럽다, 칭송을 보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가장 자주 꺼내 놓은 단어는 '용기'였다.


  "그런 결정을 하다니 용기가 대단하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용기가 없네",

"아이들을 위해 정말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렸구나" 등등.

농촌으로 유학을 가는 데에서 그들은 왜 '용기'를 발견했을까? 유학을 중도 포기하고 서울로 올라와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들에서 그 답을 찾았다. 


- 아이들 학원 다시 재정비하기

- 이전에 해 오던 운동들 (요가, 필라테스, 테니스) 재등록하기

- 독서 모임 다시 나가기

-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강의 수강하기


그렇다. 서울에는 널려 있지만, 시골에는 없는 많은 것들. 아이들의 학원, 나를 위한 교육의 장,  이전에 교류해 오던 사람들과의 편한 만남. 서울을 벗어나보니 알게 되었다. 농촌유학을 위해 내가 무엇을 포기하고 왔었는지. 이것들을 포기하고 농촌유학을 간다는 데서 사람들은 '용기'를 발견했나 보다. 아니면, 아마도 가장 큰 놀라움은 중학교 진학을 앞둔 아이를 데리고 사교육 하나 없는 곳으로 간다는 데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싶다. 한창 진도를 쭉쭉 빼놓아야 할 시기에 '자연에서 놀자'를 택한 데 대한 용기. 풍족한 교육의 기회를 마다하고, 작은 학교에서의 공교육만을 믿기로 결단한 용기 말이다.  


농촌을? 뭐 하러? 유별나구나

또는 아주 반대로 볼 것도, 할 것도, 배울 것도 없는 그곳을 왜 향하냐며 의아해하는 눈초리였다. 나 자신도 무엇을 위해 농촌유학을 택했는지 깊이 있게 물어보면 오래 답할 문장들은 없었다. 

그냥 

'좋은 기회잖아'. 

'아이들 실컷 놀아보라고' 

정도의 깊이로 답해왔던 것 같다. 


다짜고짜 전화를 해서 '너 우울증 걸릴 거야'라는 언니도 있었다. 당시에는 '뭐야' 하고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지만 지인 중에서는 내 성향을 가장 정확히 꿰뚫어 본 지적이기도 했다. 인스타그램을 뒤져 핫플레이스에 가서 사진 찍어 남기기나 좋아하고, 툭하면 브런치 먹으러 가고, 예쁜 카페에 가서 커피 마시고, 공연들 보고 미술관에 가서 핫한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으로 시간을 소비해 왔으니까. 농촌에서는 그런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결정하는 것이 일이었다.

대표적으로는 우리 엄마의 반응이었다. 아마도 가장 솔직하고 날 것의 반응이었을 게다.


"가끔 TV 보면 그렇게 가는 사람이 있더라. 너처럼 유별난 사람들"


유난스럽다는 반응을 보낸데도 할 말은 없었다. 나는 유별나고 싶었고, 아이들을 특별하고 유별나게 키우고 싶어 농촌으로 향한 게 맞았으니까 말이다. 나의 평생의 콤플렉스는 '평범'하다는 것이었다. 늘 특별한 사람들, 누구도 해내지 못하는 일을 거뜬히 해내고 성취를 자랑하는 사람들을 동경했다. 대개 그런 사람들은 무언가 큰 성취를 달성한 후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것들을 버리고 다시 새로운 길로 들어서고는 했는데. 나는 지금까지 별로 이뤄놓은 것은 없었기에 버릴 것도 없었다. 단지, '서울생활'이라는 안락함만이 갖고 있는 것이기에 그것을 버리고 험한 고생의 길로 들어서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매일 타고 다닌 스쿨버스


아이들 공부는 포기한 용기?

대개 유학(留學)은 외국에 머물면서 공부함을 뜻한다. 농촌유학에서의 유학은 이 유학이 아니라 유학(遊學)이라는 한자를 사용한다. 즉, 타향에서 공부함의 의미를 지닌 유학이다. 자국 내 다른 지방으로 가서 공부하는 것도 유학이지만 한자도 다르고 의미도 다르다. (고 네이버 한자 사전이 알려주었다) 해외 유학에서 유는 '머무를 류'留로 공부를 위해 다른 곳에서 '머무른다'에 중점을 둔 것이지만, 타지방에서 공부할 때의 유학은 '놀 유遊 자를 사용한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비록 '놀면서 공부한다'는 의미는 아니라, 공부하러 '이동'한다는 의미에서 택한 한자라지만 농촌유학은 공부보다는 '놀기'에 중점을 둔 선택인 건 맞는지도 모른다.


농촌유학을 오고 나서 몇 주까지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아이들에게 '이곳의 장점', '좋은 점'을 물었다. 여기까지 와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 의문이 들 때마다 그리했다. 지금까지 가장 인상 깊었던 답은

'여기 아이들은 스트레스 제로야', '천국이야'였다.


행복이라는 단어. 초등학생의 입으로 이곳은 행복과 가깝다는 말을 들었다. 서울은 아마도 그 반대말인 불행과 맞닿아 있는 것이겠지. 쉬는 시간이면 뛰어놀고 중간놀이시간도 있다고 했다. 너른 운동장에 모든 아이들이 한데 뛰어나와도 고작 36명. 모든 아이들이 어울려 그야말로 신나게 논다.


사방팔방을 둘러봐도 학원 하나 없는 곳이다. 피아노 하나 배우려고 해도 30분을 차를 끌고 가야 한다. 가만히 문 밖으로 와서 픽업해 주는 차에 올라타서 핸드폰이나 보다가 실려가서 학원으로 올라가서 앉아 있다가 다시 돌아오는 생활은 불가능했다. 여기에서 무언가 배우고자 한다면 부모가 차에 태우고 멀리까지 가서 배우는 동안 기다렸다가 다시 데리고 와야 했다. 그마저도 한정되어 있기에 아이들의 교육은 현재 학교에서의 것만으로 끝인 상황이다.

물론 학교에서는 가야금 도자기 숲체험 서예 등등 매일 2개의 방과후 교육 프로그램이 촘촘히 짜여있다. 결코 작은 학교에서 배움을 등한시 하고 있는 것은 아님을 알리며 (이 부분은 다시 추가로 정리해 봐야겠다)


이 농촌유학을 통해 아이들은 과연 무엇을 배웠을까?

학원에서의 공부, 끊임없는 사교육 대신 시골에서의 '놀이'를 택한 이 유학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그것은 사실 내가, 지금 답할 문제는 아니다.

배움의 주체도 '나'가 아니라 아이들이며

배움의 효과가 드러날 시기도 지금은 아닐테니.

아마도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나의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컸을 때 뒤를 돌아보면서 나에게 알려줄 수 있는 대답이 아닐까. 내가 왜 농촌유학을 택했는지? 


다만 그 상세한 내용, 그 때의 감정들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을 남겨본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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