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과 비빔국수
나의 할머니는 내가 임신사실을 알아차린지 1주일 뒤에 돌아가셨다.
회사에서 얼마 멀지않은 어느 한적한 시골에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두 분이서 잠깐 내려와계셨고, 나는 고모들과 엄마의 부탁으로 종종 퇴근길에 잠깐 들러 심부름을 하고, 병원에 모시고가기도 했었다.
한창 코로나가 극에 달해, 너도나도 조심하던 시기였다.
그 날은, 작은 고모의 부탁으로 회사에 연차를 내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모시고 처음으로 코로나 백신 접종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점점 나이를 드시면서 거동이 불편해지신 할머니는 집 밖으로는 잠깐의 산책도 힘에 부치는 상황이었고, 할아버지만 근처에 고사리를 끊으러 혹은 바람쐬러 다니시곤 하셨다.
이 넓은 제주 들판은 할머니에겐 고작 두 팔 벌린 너비의 창문 너머 밖엔 볼 수 없는 답답하고 좁은 공간에 불과했다. 그래서 유독 백신 접종을 다녀오던 그 날은 할머니의 표정이 밝았다. 작은 내 차 뒷자리에 두 분을 모시고 40분 거리의 보건소로 가서 우여곡절끝에 접종을 마친 후 봄의 꼬리가 보이고, 여름의 곁눈질이 시작되던 딱 적당한 날씨의 하늘을 보며 할머니는 집에 도착하는 길까지 연신 "아이고 좋다야, 아이고 좋아."하셨다.
별 감동없는 가만히 있는 그림인 줄 알았던 제주가, 생생하게 살아서 할머니 귓가에 "몰랐지요? 몰랐지요?" 하던 날이었다.
접종을 맞고나서는 혹시 열이 날 수 있으니, 어디 가지말고 되도록이면 곧장 집으로가서 휴식을 취하라는 안내를 내 속으로 너무나 곱씹었던 나머지 집으로 가는 길에 보이던 중국집을 그냥 지나쳤다.
할머니는 짜장면을 좋아했다.
다른 건 몰라도 할머니의 음식취향이 짜장면이라는 건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마 할머니도 그 날은 차 안에서 순식간에 지나가는 짜장면집을 알아차리셨을 것이다.
그리고 내심 아쉬워하셨을 것이다.
며칠 째 계속되던 소화불량으로 나는 밥 먹고가라는 할머니의 만류에도 그냥 집으로 돌아와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제주 짐을 정리하고 고모에게로 올라가셨고, 나는 임신을 알았다.
나는 할머니에게 짜장면을 사드리지 못했다.
할머니는 짜장면을 좋아했다.
내 뱃속의 생명을 품고, 장례식장에서 상복을 입고 앉아있으면서도, 내 주머니에는 혹시모를 미신으로 챙겨 넣은 소금과 팥이 한 줌씩 들어있었다. 한 번씩 호주머니에 손을 넣을 때마다 만져지는 오돌토돌한 촉감을 떠올리면 나는 아직도 그 느낌이 손톱 끝에 껴있는 듯 하다.
임신이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점점 갑자기 먹고싶은 음식들이 생겨났다. 나도 모르는 어떤 알듯말듯한 식감과 맛을 하루종일 떠올리며 뭘까, 나는 무엇이 먹고싶은 것일까 생각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할머니가 꿈에 나왔다.
새빨간 양념 초장과, 참기름이 좔좔묻어 윤기가 흐르는 너무나도 군침이 돌게 생긴 비빔국수를 한 냄비 가득 만드셔서는 맨 손으로 슥슥 비벼서 내 앞의 그릇에 계속계속 담아주셨다.
아기를 가졌을 때는 잘 먹어야된다는 말을 거듭 하시며.
맞다.
나는 비빔국수를 좋아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짜장면을 좋아했다.
결국 내가 사드리지 못한 짜장면과 계속계속 내 앞으로만 밀어주시던 비빔국수를 볼 때마다
나는 너무나도 허기지면서도 목구멍에 면발이 콱콱 막히는 느낌이 든다.
몇 년 뒤 지금 나는 둘째를 가졌고, 여전히 비빔국수가 먹고싶다.
아기를 가졌을 때는 잘 먹어야 된다고 하셨는데.
내 앞으로 산처럼 쌓아주시던 그 비빔국수는 이제 어딜가야 먹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