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지.
나는, 나만 잘하면 될 줄 알았어.
꾸준하게 운동하고, 인스턴트 음식을 멀리하고, 단백질과 채소로 구성된 식단을 잘 챙겨 먹기만 하면, ‘나‘만 그것들을 지킨다면 금방 다이어트에 성공할 줄 알았어.
간과했어. 나에겐 개구쟁이 아들이 있다는 것을.
유독 엄마껌딱지인 네 덕분에 네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시간에만 나는 헬스장에 갈 수 있었고, 주말과 공휴일은 따로운동하러 나간다는 생각은 아예 할 수 없었지.
네 낮잠 시간에 나갈 순 있겠지만, 네 몸속 바이오리듬은 잠을 자는 동안에도 귀신같이 옆에 엄마가 없다는 걸 알아채고는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떠서 아빠를 괴롭히잖아.
그래. 물론 너와 같이 놀이터에서 뛰어다니고, 키즈카페에서 입 안이 바싹 마르게 놀아도 땀 흐르는 건 마찬가지야. 하지만, 노동과 운동은 한 끗 차이란다. 그리고 육아는 절대 운동이 될 수 없어. 육아는 노동의 범주에 속하는 행동이야.
그게 아니라면 내가 너를 키우면서 아직도 살을 빼지 못할 이유가 없잖니?
네가 밤 잠에 깊이 들고나면 엄마는 슬금슬금 도둑걸음으로 움직여서 홈트레이닝을 해. 아무리 힘들어도 고통이 섞인 소리는 절대 나오지 않더라. 혹시라도 네가 번쩍하고 눈을 뜰까 봐 그게 더 무서워서 말이야.
엄마가 처음에 인바디를 했을 때, 내 몸속에서 빠져나가야 할 체지방은 무려 13kg이나 되었어. 그 정도가 빠져야 나는 비만에서 벗어나 정상 몸무게에 속하게 되더라고. 13kg이면 바로 지금 네 체중이야. 내 몸에서 너 만큼의 지방 덩어리를 연소시켜야 엄마는 다이어트의 늪에서 해방되는 거란다. 그걸 알고 나서 가끔 너를 보면 언제 이만큼의 몸무게를 줄이나 아득할 때도 있어.
근데 그 생각은 잠깐이고, 나를 쳐다보며 네가 해살하게 웃어줄 때는 말이야. 내 몸에서 나온 애가 이렇게 씩씩하고 건강하게 컸다니. 감격스러워서 흐뭇하단다. 아무렴 뭐, 체지방이야 빼면 되지. 앞으로 너를 꼭 안을 때마다 엄마는 내가 빼야 할 몸무게를 실감 나게 느끼면서 매번 다이어트 성공의 의지를 불태울 거야.
먹고 싶은 대로 다 먹고 운동만 열심히 하면 건강한 돼지가 된다는 격언이 있어. 다이어트의 꽃은 바로 식단이거든.
엄마는 운동을 시작한 그날 바로 닭가슴살과 사과를 냉장고에 채워 넣었어. 아침에 공복 운동을 끝내고 오면, 아침식사를 닭가슴살과 사과 반쪽으로 먹고, 점심은 일반식으로, 저녁은 또 닭가슴살을 먹으며 식단을 병행한 제대로 된 다이어트를 하려고 했단 말이야.
방심했지. 엄마는 지금까지 네가 먹다 남긴 밥을 저녁식사로 채우고 있었다는 걸 까먹었어.
내가 그렇게 밥을 많이 주는 편이 아닌데도, 넌 꼭 한 두 숟갈 정도는 남기고 그만! 을 외치는 바람에 남은 밥과 반찬은 항상 엄마의 몫이었지. 그래도 탄단지 영양소를 고려하여 최대한 영양가 있게 챙겨주는데 엄마의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반찬이 버려지는 건 또 아깝잖니. 나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말이야. 그래서 네가 남긴 저녁밥을 나는 항상 쿨하게 내 입으로 버렸어. 그래서 살을 못 뺀 거 같기도 해. 그 밥은 마치 애피타이저처럼 감질나게 배부르지도 않아서 먹고 나면 항상 더 많이 먹게 돼버리거든.
운동을 시작했음에도, 또 저녁을 네가 남긴 밥으로 먹으려니 그러고 싶지가 않더라. 그래서 나는 그날부터 네가 저녁을 먹을 때 옆에서 닭가슴살을 먹었어. 일부러 배를 먼저 채운담에 네가 밥을 남기면 그것만 더 먹고 다른 쓸데없는 걸로 더 배 채우지 않으려고.
근데 내가 닭가슴살 먹는 걸 유심히 보던 너는 “엄마 나도”하더니 다 뺏어먹을 줄이야. 그래도 단백질이라 몸에 좋으니까 주긴 했다만 엄마는 좀 서러운 마음에 네가 남긴 미역국을 꿀꺽꿀꺽 삼켰어.
그렇게 내 다이어트 식단을 뺏어먹고서는 이번에는 네 간식을 내 입에 넣어주면 어떡하니? 나는 진짜 독한 맘먹고 간식존은 일부러 쳐다도 안 보고 있었단 말이야.
아빠와 네가 도란도란 간식타임을 가질 수 있도록 양보도 했고. 그런데 아들, 엄마가 불쌍해 보였니…? 평소 같았으면 그냥 네 입으로 다 들어갈 고래밥과 꼬깔콘을 왜 내 입에 꾸역꾸역 넣어주는 거야? 그렇게 괜찮다고 너 먹으라고 말을 해도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입에 넣어주면 엄마가 안 먹을 수가 없잖아. 아무래도 너는 호랑이띠가 아니라 청개구리띠인가 봐.
엄마는 ‘나’만 잘하면 다이어트에 금방 성공할 줄 알았어. 마지막 다이어트 시도가 결혼 전이라 그때의 내 생활패턴을 그대로 차용한 거야. 크나큰 실수였지.
9/1일에 다이어트를 시작한 이후로 엄마는 아직 4kg밖에 빼지 못했어. 아직 10kg은 더 빼야 헬스장에 들이부은 돈이 안 아까울 것 같아.
그래서, 마지노선을 정했어. 2024년 12월 31일에 체중계위 59.9kg의 숫자를 보고야 말겠다고.
시도 때도 없이 나를 방해하는 네가 가끔은 서운하기도 하지만, 뭐. 괜찮아. 시련 없는 성공이 어디 있겠어.
너는 내 다이어트의 가장 큰 훼방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원동력이 되는 존재란다.
너와 네 동생 곁을 오래오래 건강하게 지켜주기 위해 엄마 먼저 건강한 몸이 되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어.
다이어트를 시작한 이유가 물론 예쁜 몸매를 원하는 것도 있지만, 살이 찌면서 몸 안과 밖에서 건강이 무너지고 있는 신호를 느끼면서 다시 큰 결심을 하게 된 거야.
오늘도 어린이집 차량에 타서 손을 흔들며 너랑 인사하고 엄마는 헬스장에 다녀왔어.
네가 어린이집에서 열심히 뛰어노는 시간에 나도 헬스장에서 열심히 땀을 뺄게.
엄마, 살 좀 빼고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