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다이어트 흑역사
아들아. 이 지구별에서 여자로 태어난 이상, 평생 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다이어트라는 걸 알고 있니?
남자로 태어난 너는 앞으로도 아마 잘 모를 거야. 다만 나중에 네 여자친구도 다이어트로 스트레스받을 확률이 크니까 지금부터 엄마의 말을 주의 깊게 새겨듣도록 해.
엄마가 어렸을 때부터 네 마산 할머니가 계속해주신 말씀이 있어. 되도록이면 결혼 전에 많은 남자를 만나보라고. 마산 할머니는 결혼 전에 연애 경험이 별로 없이 할아버지를 만나서 결혼했거든. 그래서 나에게 연애는 최대한 많이 해보라고 조언 아닌 조언을 해주셨었지.
다양한 타입과 여러 성격의 남자들을 만나봐야 어느 남자가 정말 좋은 남자인지, 평생을 함께 가도 좋은 남자인지 판단이 되는 법이거든. 그리고, 소위 나쁜 놈들도 만나봐야 다음부터는 미리 피해 갈 수 있다는 거야.
그럼 점에서 다이어트도 꽤 비슷한 점이 있어.
엄마의 엑스 남자 친구 아니 엑스 다이어트 경험들을 들려줄게.
사실 나는 살 뺄 거라고, 날씬해질 거라고 매일같이 말하면서도 정작 실행에 옮긴 적은 없었어.
별로 남자 만날 생각 없다며 소개팅을 차일피일 미루는 사람처럼 말이야.
그러던 어느 날, 사회초년생으로 성실하게 일만 하고 있을 때였어. 그거 아니? 복리의 마법은 금리에만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엉덩이에도 일어난단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일만 하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복리로 인해 늘어난 살 때문에 청바지가 맞지 않을 정도였어. 편하다고 입고 다니던 고무줄바지만이 나의 엉덩이를 감당할 수 있었지.
그때 나는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한의원 다이어트를 선택했어. 광고에 가스라이팅을 당한 대가였지. 다이어트에 대해 아무런 빅데이터가 없는 상황에서 이게 제일 빠르고 간단한 방법이라고 믿었던 거야. 주변에선 이건 나쁜 방법이라고 나를 말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 약값만 해도 백만 원이 훌쩍 넘는 금액에 사회초년생이 무슨 힘이 있었겠니. 애써 태연한 척하며 3개월 할부로 결제를 하고 나서 나의 두 손에 들린 것은 일단은 3일 치의 약이었어. 몸에 들어있던 노폐물과 찌꺼기들을 비워내는 시간이라며 3일 동안을 물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먹지 말고 하루 3번 탕약만 먹으라는 황당한 지시를 받고서 나는 이 약을 먹고 곧 빠질 살보다 다음 달에 빠져나갈 카드값을 떠올리며 울며 겨자 먹기로 약을 먹기 시작했어.
하루 반나절까지는 어찌어찌 견딜만했는데 이틀째 아침이 되자 물과 성분을 알 수 없는 탕약만 마신 내 몸은 힘이 하나도 없었어. 하지만 날씬해질 거라고 주변에 떵떵거려 놓았으니 원, 이를 악물고 정말로 3일 동안 아무것도 씹지 않고 물과 탕약만 마셨어. 그때 그 3일 동안 빠진 몸무게가 무려 5kg이야.
그리고 그 뒤에 한 달 정도를 닭가슴살과 고구마, 샐러드 위주의 식단과 식후에 먹는 탕약으로 버텼어. 꼭 살을 뺀다는 일념하나로. 운동은 하지 않았지. 왜냐면 갑자기 180도로 바꾼 식단에 운동할 힘이 하나도 없었거든.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두어 달쯤 뒤의 몸무게는 총 8kg이 빠졌어. 처음에 3일을 굶고 뺀 5kg에 3kg이 더 빠진 셈이야.
누구에게나 그렇듯 첫 연애는 서툴고 또 끝나고 나면 후회와 아픔에 잠겨버리듯이, 호기롭게 덤볐던 한의원 다이어트가 끝나자마자 나에게 찾아온 건 텅 빈 통장 잔고와 10kg이 넘는 요요현상이었어.
엄마가 만난 몇 안 되는 다이어트 중 최악의 다이어트 경험이라고 할 수 있지. 그 뒤로는 이제 이런 요행으로는 살을 뺄 수가 없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고, 절대로 약에 의존한 다이어트는 거들떠보지 않았어.
엄마는 이제 귀신보다 요요가 더 무서워.
그리고 엄마가 겪은 안 좋은 다이어트 경험은 바로 개인 피티야.
한의원 다이어트가 실패로 끝나고, 일 년 즘 지나고 나서 또 인생 최고의 몸무게를 갱신한 나는 이번에는 제대로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마음먹고 동네에 있던 개인 피티샵을 방문했어.
한의원 다이어트를 했다가 요요를 심하게 맞았다는 나의 넋두리에 선생님은 한숨을 푹 쉬면서 이제라도 제대로 잘 찾아왔다며 위로해 주셨지. 또 정신을 차리보니 이번에는 한의원 약값의 거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을 결제한 후였어. 3개월 할부의 늪에 또 스스로 걸어 들어간 거야.
주 3회에 한 시간씩 3개월 동안 엄마는 트레이너 선생님과 열심히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서 다이어트를 했어. 그런데 그때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지. 곧 결혼을 앞두고 있던 트레이너 선생님과 인생얘기를 하다 보니 한 시간이라는 피티 시간은 너무나도 짧았다는 것을. 그때까지만 해도 트레이너와의 수다는 곧 내 다이어트의 실패로 이어진다는 불변의 법칙을 몰랐던 나는 먼 미래에 하게 될 그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아서 한 세트가 끝나고 찾아올 휴식 시간을 계속 기다렸어.
트레이너 선생님은 잘못 없어. 최선을 다해서 나의 질문에 대답해 주셨고, 또 그분은 성실히 나의 운동을 도와주셨거든. 문제는 나에게 있었지. 하지만 선생님도 시간이 갈수록 달라지지 않는 나의 인바디 결과를 보면서 조급해지셨던 것 같아. 어느 날은 나에게 이제 개인피티가 없는 날에도 피티샵으로 와서 유산소운동을 하고 가라고 하셨었거든. 나는 몇 번은 가서 사이클을 타다가 점점 가는 횟수를 줄여갔지. 연말이라 개인운동보다 개인약속을 더 우선시해버렸던 거야.
결과는 또 처참했어. 살을 못 뺀 것은 아니었지만, 들인 금액과 시간에 비해서 너무나도 소박했거든. 선생님은 이제 피티는 끝이 났지만 꾸준히 샵에 나와서 운동을 해도 된다고 말씀하셨어. 선생님도 결과물에 실망하셨었나 봐. 나는 괜히 죄송스러운 마음에 또 알겠다고 마음에도 없는 대답을 하고는 민망해서 당분간 샵이 있던 건물 쪽으로는 발걸음도 향하지 않았어. 우연히 선생님을 마주치게 되면 쥐구멍에라도 숨어버릴 것 같았던 거지.
내가 원하던 이상형에 비해 노력을 게을리했던 대가는 바로 자존감의 하락으로 이어졌어. 그 뒤로 엄마는 각종 스트레스를 불닭볶음면과 떡볶이 등 자극적인 것들로만 해소했고, 건강한 방법으로는 나를 되찾으려고 하지 않았어. 원푸드 다이어트도 해봤고, 무작정 굶는 다이어트도 해봤고, 홈트레이닝도 몇 번 하다가 귀찮음에 다시 접었지.
나에게 맞는, 편하고 오래오래 할 수 있는 운동을 했었어야 했는데, 자극적이고 밀당만 계속하는 다이어트만 하다 보니 결국 혈당만 오르고 말았어.
그리고 세월이 흘러 흘러, 다시 엄마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내 인생의 마지막이었음 하는 다이어트를 결심하게 된 거야.
네 아빠와 결혼을 하면서 엄마의 인생에 더 이상 연애가 없듯, 앞으로는 다시 다이어트를 결심할 계기가 생기지 않도록 꾸준히 내 일상에 운동을 집어넣어서 요요를 안 만나고 싶어.
연애 경험은 많을수록 좋다는 말에는 어느 정도 동의해. 그래야 사람 보는 눈이 생기는 건 맞는 것 같아. 연애를 많이 해봤다는 것, 다이어트 경험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또한 실패를 많이 해왔다는 뜻이지. 이거 봐. 결국 엄마는 듬직하고 다정한 네 아빠를 만나 지금 우리 네 식구 행복하게 살고 있잖아.
나의 마지막 연애가 성공한 것처럼 이번엔 다이어트도 꼭 성공해 볼게.
엄마, 살 좀 빼고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