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 첫 출석날
너도 살면서 점점 느끼겠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처음’이란 기억에 오래오래 남는 법이란다.
첫사랑, 첫 경험, 첫 이별 등등 모든 처음은 낯설게 느껴져서 그런지 시간이 아무리 오래 흘러도 그때의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아. 너를 낳고 나서 나도 그때 느꼈던 모든 처음들이 깊이 각인되어 있어. 우렁차게 울면서 처음으로 내 품에 안긴 날, 첫 배냇짓 웃음, 처음으로 엄마가 갈아준 똥 기저귀, 첫걸음마, 어린이집 첫 등원들이 말이야.
엄마가 되고 나서 느낀 모든 첫 경험들은 앞으로 내가 죽는 날까지 절대 잊지 못할 거야.
그리고 얼마 전, 나의 ‘처음‘ 리스트에 새로운 항목이 추가되었어. 바로 헬스장 첫 번째 출석이야.
무려 12개월의 회원권을 일시불로 끊었다고 말했었잖아. 바로 그다음 날부터 엄마는 네가 어린이집에 가자마자 운동복으로 갈아입었어. 사실 이것도 할 말이 좀 있는데, 전에 엄마가 다이어트를 흉내 내려고 사 모았던 레깅스와 운동복들은 대충 흐린 눈으로 봐도 안 맞을 것 같았어. 레깅스는 허벅지가 아니라 팔뚝에 끼우면 딱 핏이 나오겠더라. 다시 한번 다이어트의 의지를 불태우면서 옷장을 뒤지다 나는 결국 네 아빠의 운동복 반바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어. 아빠의 반바지와 집에 대충 굴러다니던 검은 반팔티셔츠를 입고 엄마는 헬스장 첫 번째 출석을 했어. 입구 키오스크의 입장버튼을 누르니 ’반갑습니다.‘하고 팝업창이 떴어. ’네, 저도 반갑습니다.‘ 속으로 말하며 살짝 쭈뼛대며 문을 열었지.
거의 오전 여덟 시 반 정도였는데, 눈 앞에 보이는 장면에 엄마는 살짝 놀라고 말았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아침부터 운동을 하고 있었어. 이 동네는 별로 사람이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헬스장에 다 모여있었어.
엄마 또래의 3,40대 직장인들은 출근하는 시간이니까 거의 네 할머니, 할아버지 연배의 분들이 운동을 하고 계셨어. 평일 오전 헬스장의 풍경에 나는 컬처쇼크를 받았어. 그리고 짧은 생각이 스쳤어. ’아 이거 만만히 봐서는 안 되겠구나. 저렇게 나이 있으신 분들도 성실히 하는 게 운동인데, 어설프게 도전했다가는 매번 그랬던 것처럼 실패하겠구나.‘ 하고 말이야. 여기 계신 분들의 일상에 운동이 당연하게 스며든 것처럼 나도 운동을 반갑게 여기지 말고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성실히 해 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했어.
반갑다는 마음은 평소에 자주 마주치지 않는 기분이잖아? 명절에 만나는 친인척이나, 경조사 때 동창을 만났을 때 느끼는 반가운 기분보다 항상 그랬듯이, 언제나, 당연하게 매일 마주치는 기분을 운동할 때 느끼고 싶어. 헬스장 첫째 날이었지만, 꽤나 많은 감정이 오락가락했단다.
첫째 날이니 엄마는 소위 빡세게(?) 운동하지 않으려고 마음먹었어. 시간과 강도를 고려해서 선별한 유튜브 재생목록의 리스트를 따라서 초보자를 위한 근력, 유산소 운동을 재생했지. 덤벨운동이야 솔직히 13kg이 나가는 너를 매일같이 안고 다니니 할 만했거든? 근데 ’초보자를 위한 인터벌 유산소 30분‘은 절대 나를 위한 운동이 아니었어. 화면 속의 선생님은 9km/h에도 밝은 웃음으로 가볍게 달리는데 엄마는 좀비에 쫓기는 사람처럼 숨을 헐떡거리며 안간힘을 쓰면서 달렸어. 질질 끌려갔단 말이야. 그래도 건너뛰기는 안 했어. 첫날부터 건너뛰기해버리면 꾸준히 건너뛰어버릴 것 같았거든.
사실 나는 러닝머신 운동이 처음이라 이 정도로 숨 가쁘고 심장이 빨리 뛸 줄은 몰랐어. 그런데 이상하게 비교가 되더라. 아직 엄마가 네 동생 낳을 때의 고통을 몸으로 기억해서인지, 산고의 고통하고 비교하면서 할 수 있다고 나를 스스로 응원하면서 달렸어. 그런데 말이야. 오랜만에 운동으로 땀을 흠뻑 흘리고 나니까, 너무 개운했어. 아침까지는 백일도 안 된 네 동생의 수유 때문에 새벽에 두어 번 깨느라 살짝 피곤했는데, 온몸이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리면서 달리고 나니까 푹 자고 일어난 것처럼 정신이 맑아지더라고. 러닝머신 위에서 꿀 잠잔 것 같았어. 그리고 내일부터 이 기분을 다시 만나기 위해 당연하게 출석을 하려고 해.
내일 아침에 너를 노란색 어린이집 차량에 태워 보내고 나서 엄마는 당연하게 운동하고 올게.
그럼 언젠간 살이 쏙 빠져있겠지?
첫 러닝은 너무 어려워. 하지만 어려웠던 만큼 뿌듯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