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하지만 어설프게는 안 할 거야.
가끔 엄마는 상상을 해.
나중에 내가 학부모 참관수업을 가게 되는 날을 그려보거든.
그때의 나는 로우번으로 묶은 머리에 아이보리색 투피스를 입고 깔끔하게 다듬어진 네일 위에 작은 핸드백을 들고서 신경 쓴 듯 안 쓴 듯한 화장을 하고 교실 뒤에서 너의 새까만 뒤통수를 보면서 다소곳이 서있어.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뭔지 아니? 그때의 엄마는 바로 날씬하다는 거야.
각 잡힌 양쪽 팔의 소매는 하얀 학의 목덜미처럼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군살이 안 보이고, 투피스의 치마 아래로 보이는 종아리는 5센티 힐을 가볍게 받치고 있고, 투피스의 상의와 하의를 이어주는 허리라인은 너의 두 팔이 꽉 안으면 조막만 한 너의 두 손이 만날 정도로 얇아.
여기서 또 중요한 것은 뭔지 아니? 지금의 엄마는 그럴 수가 없다는 거야. 너와 네 동생을 낳고 엄마는 매일매일이 인생 최고의 몸무게를 기록하고 있거든.
그래서 학부모 참관수업 속 엄마는 상상 속의 유니콘 같은 존재이지.
너를 낳기 직전의 엄마는 80kg이었어. 그리고 네 동생이 생기자마자 나는 한 편으론 ‘아 당분간은 또 다이어트를 안 해도 되겠구나’하고 안심했었나 봐. 그리고 살이 또 엄청 쪘지. 나도 정말 놀랬어. 그래서 엄마는 오늘 드디어 헬스장에 등록을 하고 왔어. 인바디 기계로 내 몸을 낱낱이 파헤쳤지. 인바디 기계가 놀라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 것 같더라. 조금 민망했어. 오늘 몸무게는 71.6kg이었어. 분명히 어제는 70. 몇몇이었거든? 아마 어제저녁에 네 아빠랑 먹은 닭강정 때문인가 봐. 말해 뭐 해.
아무튼, 9월의 첫날이 시작되면서, 엄마는 정말 이 날을 기다리고 기다렸어. 왜냐하면 아빠의 육아휴직이 시작되면 하루에 몇 시간이라도 내 개인시간이 생길 수 있고, 난 이 시간을 다이어트에 온전히 쏟아붓기로 작정했거든. 아침에 네가 어린이집에 가고 난 뒤, 네 동생을 아빠에게 맡기고 엄마는 이제 헬스장에 가서 열심히 살을 버리고 올 거야.
웬만해선, 진짜로 운동하는데 돈을 쓰지 않는 나인데 오늘 헬스장에 가서 1년 치 회원등록을 무려 일시불로 끊고 왔단다. 이쯤 되면 엄마의 각오가 느껴지니?
살이 찌면서 조금씩 몸에 잔고장이 생기기 시작한 것을 누구보다도 절실히 느끼고 있어. 물론 출산의 영향도 있지만 엄마의 무릎과 허리와 발목과 뼈와 뼈를 잇는 모든 인대들이 나 살려주오.. 하고 두툼한 쇄골살을 잡고 흔드는 것 같아. 이건 네 동생을 낳으면서 생긴 부작용이 아니라, 무작정 늘어난 살이 엄마의 뼈를 심하게 괴롭히고 있다는 증거야.
자, 지금까지 엄마가 이렇게 살이 찐 이유가 바로 너와 네 동생 때문이라는 아주 그럴듯한 핑계를 들어줘서 고마워. 새근새근 자고 있는 너와 네 동생의 얼굴을 보면서 엄마는 각오를 배부르게 삼켰어.
너의 학부모 참관수업 때 꼭 이쁜 투피스를 입고 또각또각 가볍게 걸어서 너의 교실로 들어갈 그날을 엄마는 현실로 만들 거야. 다른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엄마 스스로가 나에게 당당해지는 그날을 그리는 거야.
본격적인 다이어트가 오랜만이라 어색하지만, 이번에는 어설프게는 안 할 거야.
두고 봐. 엄마, 살 좀 빼고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