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육아의 밸런스
나에겐 현재 진행형인 육아를 튼튼하게 받쳐주는 네 다리가 있다.
이것들 중 어느 것 하나라도 빠진다면 내 육아일상이 무너져버리고 말 것이다.
첫 번째 다리는 ‘엄마’이다. 여기서 ‘엄마’는 보통명사이다.
진통의 고통 속에서도 ‘세상 모든 엄마들이 이 고통을 견뎠어’하고 버틸 수 있었다.
아이가 아파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앞, 옆 병실들에서 아이와 씨름하고 있던 보호자인 ‘엄마들’이었다. 병원에서 산책이라도 나가면 머리도 제대로 만지지 못한 ‘엄마들’이 아이를 안고서 지친 모습으로 돌아다녔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서로 무언의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퇴근 후 부랴부랴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가면 어린이집 대문 앞에서 다른 ‘일하는 엄마들’을 만난다. 그분들은 후다닥 달려와서 아이를 안고 또 후다닥 차를 타고 사라진다. 마치 나처럼. 퇴근길에 교통신호가 걸릴 때마다 또한 차 안에서 안절부절 하고 있을 ‘엄마들’을 나는 항상 떠올린다.
내 육아가 특별할 것 없듯이, 보통 ‘엄마들’의 육아도 결국은 비슷할 거란 생각에 나는 동질감을 느끼고 또 존경심을 보낸다.
두 번째 다리는 믹스커피이다. 아이는 전 날 늦게 자든, 일찍 자든 항상 다음 날 새벽 여섯시 전후로 일어났다. 아침부터 에너지가 넘치는 아들 덕분에 나는 비몽사몽 정신을 차리기 위해 눈 뜨자마자 믹스커피로 내 몸을 깨운다. 그 때마다 믹스커피는 몸에 안 좋다고 남편이 뭐라고 하지만, 이것마저 먹지 못하면 정말 못 버틸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모유수유를 할 때는 꾸역꾸역 참았다. 느낌이라도 내려고 디카페인 믹스커피를 사다 마셨고, 단유를 결정하고 나서부터는 맥주를 먹을 수 있다는 기쁨보다 이제 믹스커피를 마음 놓고 먹을 수 있겠다는 해방감이 더 컸다. 그 작은 한 컵에 든 짭짤하고 달달하고 또 씁쓸하기도 한 오묘한 싸구려 커피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 그 어떤 일류 바리스타가 내려준 커피보다 나에게 더 큰 에너지를 충전해 주었다.
세 번째 다리는 로켓배송이다. 결혼을 하면서 들어온 지금 집은 시내보다는 변두리에 위치하고 있다. 집 앞에 도로가 생긴 지 이제 석 달 쯤 되었다고 하면, 짐작하시겠는가. 처음에는 출산 준비물을 불러야 하는데 과연 이곳까지 로켓배송이 올까 걱정했었는데, 그 걱정이 무색하게 주문 후 이틀이면 집 앞까지 늦지 않고 꼬박꼬박 도착하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집 앞길이 비포장도로였을 때도 기사님은 트럭을 비틀비틀 운전해 오셔서는 집 앞에 가지런히 두고 항상 배송완료 사진도 남겨주셨다. 집 근처 큰 마트로 가려면 적어도 30분은 차를 타고 나가야하는 거리였기에 나는 거의 모든 것을 로켓배송으로 마련했다. 미리 준비한다고 했는데, 덜컥 아이의 분유가 떨어져간다던지, 젖병의 젖꼭지가 찢어져 새 걸로 교체해야 한다던지, 아이가 갑자기 집에 있던 장난감은 더 이상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던지 등의 돌발 상황에 로켓배송은 한 줄기 빛처럼 너무나도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도 일주일에 두어 번은 로켓배송을 부른다. 이제 로켓배송 없이는 살림을 꾸릴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마지막 다리는 일기장이다. 원래도 기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매해 일기장을 종류별로 사서 일상을 기록해 오고 있다. 출산 한 날부터 아이가 돌이 될 때까지 한 권의 두꺼운 일기장에 그날그날 있었던 사소한 이벤트부터 힘들었던 기억까지 기록을 해놓았다. 지금도 가끔 그때의 일기를 들춰보며 ‘맞아, 이랬었지’, ‘맞아. 이 날은 너무 힘들었어’, ‘이 날은 아이가 나에게 너무 감동을 준 날이었네’하고 그 때의 기억을 되짚어본다. 요즘은 휴대폰 어플로, 또 SNS에 아이의 성장과정을 효율적으로 잘 기록할 수 있지만, 나는 손글씨의 힘을 믿는 사람이다. 유독 바쁘고 정신없었던 날은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엉망이고, 어느 날은 몇 군데에 눈물방울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심지어 어느 날은 일기를 쓰다가 문장을 채 끝마치지 못한 날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의 감정과, 기분과, 리듬이 내 손을 타고 하루하루 적혀진 그 기록들은 어느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을 만큼 생동감이 넘치는 흔적이다. 육아의 일상 속 아이를 재워놓고, 수유등에 의지해 하루를 마무리하며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쓴 일기는 나의 고해성사이기도하고, 아이에게 보내는 사랑의 속삭임이기도 하며, 또 내가 나를 쓰다듬어주는 위로의 메아리이기도 하다.
지금도 이 네 다리는 나의 육아를 받쳐주고 있다. 아침에 출근하면 믹스커피로 정신을 깨우고, ‘아 맞다, 기저귀 불러야하는데’하고 클릭 몇 번으로 로켓배송을 부른다. 퇴근 후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가면 문 앞에서 마주친 ‘엄마들’과 눈웃음으로 인사를 나누고, 아이를 재우고 육아퇴근의 마무리는 일기를 쓰는 것으로 정리한다. 이 네 다리들로 이루어진 나의 육아 균형은 앞으로도 나를 든든하게 지지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