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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스 Dec 30. 2023

포대기와 돌담길(6)

우리 같이 키우고 있잖아요.

복직 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잠깐이나마 비로소 한숨 돌릴 정도의 여유가 생겼을 때, 바로 간 곳은 도서관 이었다. 나는 육아법이나, 교육법에 관한 책에는 흥미가 없다. 아이를 이렇게 키워야 잘 키웁니다. 책육아란 이렇고, 하브루타 교육이란 이렇습니다. 지금의 나는 관심이 없다. 내가 오로지 관심 있는 것은 ‘글을 쓰는 엄마들’이었다.

미혼이었을 때의 나는 내 시간을 방해받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지금의 나는 내가 내 시간을 제일 방해하고 있다. 주로 글을 쓰는 것보단 대부분 읽는 사람이었기에, 나는 ‘육아’에 대해서 엄마들이 어떻게 견뎌내고 있는지, 이 고난과 또한 견줄 수 없는 보람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너무 읽고 싶었다. 도서관에 있는 대부분의 ‘육아’를 써내려간 엄마들의 기록을 보면서 나는 또한 내 생각과 이들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결국 엄마로, 부모로 사는 삶이란 나를 지워내야 하는 것이며, 정작 내가 내 시간을 제일 많이 방해하면서도 억울하지 않은 것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이 일에 온전한 가치와 성취를 느끼기 때문이란 것을 깨달았다. 

또한 ‘엄마’라는 역할을 부여받은 많은 작가들이 지금은 아이들에게 쓰임(use)이 있어야 존재의 가치를 느끼지만 원래는 쓰면서(write) 대단한 일을 해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앞으로도 내가 육아를 하며 까먹지 말아야 한다고 느꼈다.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엄마가 되기 전엔 모른다. 엄마의 무수한 밤이 얼마나 알알이 걱정이었는지.” 아이를 키워낸 엄마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엄마들의 밤이 셀 수 없는 걱정들로 수놓아졌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멀리서 보면 다 비슷했지만, 가까이서 보면 똑같은 걱정들이 없었다. 그리고 비슷한 감정이어도 적어낸 문장과 단어 하나도 같지 않았다. 

사실 조리원에서 아이를 낳고나서는 밥을 편하게 먹어 본 적이 드물었다. 거의 마시듯이 해치우곤 하는데, ‘엄마들의’ 책들은 꼭꼭 씹어 읽었다. 천천히 문장과 눈 맞추며, 박자를 따라서 엄마들이 성토하듯 쓴 각자의 이야기를 문장 밑에 깔린 한숨 소리를 느껴가며 읽었다. 


내가 읽은 책들의 작가들이 육아를 한 시점, 책의 출판시점은 다 달랐지만, 나는 당연히 그들과 내 ‘육아’를 함께 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육아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매우 건조하고 메마른 육아를 했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 


어떤 책에서 읽은 ‘엄마로 산다는 건, 천국을 등에 업고 지옥 불을 건너는 것이다’란 문장은 열이 펄펄 끓는 아이를 등에 업고 해열제가 잘 들기를 바라며 뜬 눈으로 새벽을 보냈을 때 맴돌았고, ‘내 몸, 내 삶은 내 아이의 삶을 이루는 풍경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개체가 아니다. 나는 하나의 세상이다.’라는 문장은 첫 걸음을 떼고 나에게 아장아장 걸어오는 아기를 보며 되새겼다. ‘내가 죽어도 나를 닮은 한 사람이 죽지 않는다는 것은’이란 시 구절은 나와 똑같은 표정으로 웃음을 짓는 아이를 보며 문득 울컥 떠올랐다.

‘글로 배웠다’는 말은 요즘은 별로 실용적이지 않거나, 잘 못 배웠다는 비유로 쓰인다. 

나에겐 ‘글로 배운 육아’가 제일 효율적이었으며, 농도가 짙은 배움이었다. 


그래서 나도 이제 쓰는 엄마가 되려고 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나만의 ‘육아’를 ‘글’로 써내려가며, 누군가 이 글을 읽게 될 때, 그들의 육아에 함께 하고 싶다. 육아퇴근을 외치며 오늘도 아이를 재워놓고 펜을 들고,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는 엄마들에게 제주바다의 파도와 같은 박수를 보내고 싶다. 


지금도 나는 누군가와 육아를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한꺼번에 같이. 또는 서로 더불어 육아를 하는 곳곳의 엄마들에게 우리 지금 잘 하고 있다고, 지금처럼만 하면 된다고. 아이들은 금방 큰다고. 내가 다른 이들의 글과 함께했고, 지금도 함께하는 육아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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