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지금 여기보다 그 어디엔가로.
아이는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도 울지 않고 잘 견뎌주었다. 밤 비행기라 그런지 아이가 잠이 들어 아이를 안은채 앉아있는 게 불편하긴 했지만, 나는 못 자도 아이는 자니 오히려 다행이었다.
여행이 끝났어도 우리의 일상은 변함이 없었다. 나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장을 봐야 했다. 매일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다가 한국에 돌아와 대형마트에 가니 그야말로 현실로 돌아왔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여전히 아이와 나는 남편이 출근하면 단 둘이 지지고 볶았다. 여전히 밖을 좋아하는 아이와 함께 나는 공원을 걸었고, 한국에 돌아온 아이는 여전히 밥을 먹지 않았으며, 여전히 나는 자지 않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밤새 안고 흔들어야만 했다.
여전히 나는 아이와 단 둘만의 시간이 버거웠고,
여전히 나는 미숙하디 미숙한 초보 엄마였다.
여전히 친정에 가면 나는 엄마와 육아 문제로 인해 티격태격했고, 엄마와 함께 있을 때면 여전히 나는 “엄마”가 아닌 영락없이 철없는 우리 엄마 딸내미였다.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한들 생사고락을 함께 한 것도 아닌데 뭐 그리 대단한게 변했을 리가 없었다. 우리는 단지, 거기 그 자리, 그대로였다.
변한 것이라고는 이가 두 개밖에 없던 아이에게 이 네 개가 더 생겨 총 여섯 개가 된 것뿐이었다.
그러나 나의 저 깊은 마음 한 구석에서는 스멀스멀 희망이 자라나고 있었다. 아이가 최소 초등학생이 될 때까지, 향후 십여 년간은 생각지도 못할 것만 같던 해외여행이, 이제 적어도 돈과 시간이 있다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이제 알고 있었다.
그걸 깨달은 것만으로도,
나는 꽤 단단히 일상을 살아낼 수 있었다.
한 편, 나의 엄마는 해외 생활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다. 엄마는 원래도 바디랭귀지 1급 자격증 보유자라 영어를 잘 못 해도 웬만한 의사소통은 제법 잘 해내는 분이었다. 영어를 모르는 현지인들과는 오히려 나보다 엄마가 소통을 더 잘하기도 했다.
그런 엄마가 택시 어플과 구글맵을 보는 방법까지 알았으니, ‘해외 살기, 막상 해보니 별거 아니네?’ 하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엄마의 마음에도 꿈이 생긴 듯했다. 조만간 내가 없이도 아빠와 함께 세상을 누비겠다는.
나이를 서른 중반이나 먹은 출가외인이면서도 엄마에게 나의 쓸모가 없어진다는 사실이 마음 한편을 조금 허전하게 했지만 나이를 육십 중반이나 먹고도 늘 새로운 곳에 가는 것,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설레하는 엄마가 참 멋졌다. 나는 늘 엄마가 나의 엄마인 게 자랑스러워.
크게 숨 쉬며, 돌아봄 없이
내가 가두었던 내 자유를 찾아
하늘과 호수, 들판을 달려
파도가 흰 구름을 품는 곳으로.
지금 여기보다 그 어디엔가로.
하림-여기보다 어딘가에
자, 그리고 이제 엄마(내가 아닌, 나의 엄마.)의 발등에는 불이 떨어졌다.
엄마와 아빠, 단 둘만의 자유여행은 아직 조금 후의 이야기. 엄마는 내가 복직하기 전에 어디로든 또 떠나고 싶으신 모양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치앙마이에 다녀온 지 한 달 만에 다시 비행기표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