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여행의 시작은 결제부터.
엄마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내가 아니라 우리 엄마, 즉 아이의 할머니 말이다.
나는 8월 즈음 복직을 앞두고 있는데, 그러면 더 이상의 장기 자유여행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나 보다. 혹여나 둘째가 생겨 휴직을 한다 해도 애 둘을 데리고는 힘들 테니.
하여 엄마는 빚을 내서라도 8월 전에 꼭 여행을 가겠다는 의지이다. 7-8월은 유럽이나 동남아, 어디를 가든 더울 듯하고 6월엔 남편 생일, 아이의 돌이 끼어있어 가려면 당장 다음 달에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당장 비행기표를 끊어버렸다.
압니다.
또 돌 전 아이를 데리고 해외여행이라니,
내 욕심인 거.
근데 정말 이번이 아니면 엄마도, 나도, 이탈리아와 스위스는 힘들 것 같았다. 나는 돈과 아기 동반이 문제였고 엄마는 언어가 발목을 잡았다.
이번이 아니면 나는 아기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유럽은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 커서 간다 해도 이탈리아나 스위스는 물가가 비싸서 차마 엄두가 안 날 테고.
스위스에 가는 게 국민학생 때부터 꿈이던 엄마는 평생 꿈을 이루지 못하든가, 엄마 취향에 맞지 않는 패키지여행을 가서 제대로 즐기지도 못한 채 얼레벌레 꿈을 이루겠지.
자, 그래서 이제 표를 끊었는데 당장 여행은 코 앞이고, 특히 긴 비행이 퍽이나 걱정된다.
치앙마이는 6시간 비행이어서 그래도 서서 안고 달랠만했는데, 이번에는 열 시간이 훌쩍 넘는 비행이다. 그래도 저가항공이 아닌 대한항공이고, 다리를 뻗을 수 있는 맨 앞자리니 좀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기요람도 미리 신청해 놓았다.
또 다른 문제는, 지역 이동이었다. 치앙마이의 경우 한 달 살기라 베이스캠프가 내내 바뀌지 않았었으나 이번에는 평균 3-4박 단위로 이동을 해야 했다. 비교적 비싼 돈을 내고 오랜 시간을 들여 가는 만큼 한 군데에만 있기가 아쉬워 여행이 아닌 관광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이와 짐을 끌고 이리저리 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팔이 뻐근해지는 느낌이다.
아이는 적응이 빠르고 외부활동을 즐기는 데다 잘 아프지 않은 편이라 큰 걱정은 없지만 사람 일은 어찌 될지 모르고, 돌 전 아이라면 더더욱 그렇기 때문에 컨디션이나 건강 걱정도 안 할 수가 없다.
하지만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잖아요?
아, 네, 일단 부딪혀봅시다.
가자, 해보자.
바람 솔솔 부는 알프스 잔디밭에 맨발로 서있노라면 너도 기분이 좋겠지 안 좋고 배기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