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랑 이탈리아/스위스 여행 1.

1. Hello, stranger.

by 모루


13시간의 비행 끝에 로마에 도착했다.


우려와 달리 아이가 울지 않아 제법 평화롭긴 했는데, 도대체 왜 안 자니…


출발하기 직전에 잠든 아이는 이륙한 지 약 한 시간 정도 후에 일어났다. ​그리고 거의 자지 않았다. 남은 12시간의 비행 중, 한 30분 겨우 잤나 보다.

오죽하면 화장실 가는 승객들이 오며 가며 얘 아직도 안 자냐고 놀랄 정도였다. 우리 아기, 신기한 게 너무 많았나?


그래도 아기요람을 신청한 게 신의 한 수였다. 곧 돌을 앞둔 남자아이답게 금세 아기요람에 있는 것을 답답해하며 내내 사부작거렸지만, 없는 것보다는 훨씬 편했다.



잠은 안 잤을지언정 울지 않고 잘 가 준 덕분에 엄마와 나는 한결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함께 비행기를 탔던 분들도 내리면서 아기가 어떻게 이렇게 울지도 않고 늠름하게 잘 가냐며 칭찬을 해주셨다.

나도 아이가 오늘만큼만 해준다면 앞으로 열두 번도 더 비행기를 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관광객들이 주로 묵는 테르미니 역 근방이 아닌 바티칸 근처에 숙소를 잡아서, 숙소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야 했다. 심지어 갈아타기까지 해야 했다.


늦은 시간이라 밖은 이미 캄캄하고, 언어는 낯설고, 아이 동반에, 짐까지 한가득. 그런데다 비행기에서 아이가 안 잔 덕에 어른들까지 덩달아 잠을 못 자서 다들 여행의 설렘보다는 지친 기색이 더 역력했다.


​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탈리아는 계단이 많고 엘리베이터가 잘 되어있지 않아 유모차와 캐리어를 끌고 다니기가 불편했다.


아뿔싸. 어렵게 도착 한 숙소 근처 역에도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아이, 유모차, 캐리어 여러 개(심지어 쌀, 장, 김치 등 식재료와 밥솥까지 들어있어 매우 무거운!)를 어떻게 옮겨야 할지 거의 두뇌싸움을 해야 했다.


나는 아이가 탄 유모차와 함께 역 안에 남고, 아빠는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몇 번이나 오르내렸다. 엄마는 밖에서 아빠가 옮긴 짐을 차례차례 받아 들며, 혹 여나 누가 훔쳐가지는 않을지 곁에서 지키고 있었다. 마지막에는 모두가 합세해 유모차를 가마처럼 번쩍 들고 계단을 올라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우습기도 한데, 그때 당시에는 매우 심각했다. 너무 힘들고 막막해 전혀 웃음이 나지 않았다.



드디어 숙소에 도착을 했는데, 시작이 좋지 않았다.


분명 여행을 오기 전부터 나는 부모님께 누누이 얘기를 했었다. 여행 준비기간이 짧다 보니 이미 좋고 저렴한 숙소는 다 나갔고, 그래서 이탈리아 숙소들은 조금 불편할 수도 있다고.


그런데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이 하나밖에 없냐고 물어보는 아빠랑 오자마자 거의 싸울 뻔했다. 아빠는 그냥 생각 없이 물어본 거였을 텐데 나도 피곤하니 예민해서, 참 별 것도 아닌데 그랬다.



아무튼 잘 도착했다.

아이가 울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선전한 거니.


맥주 한 병으로 모두가 하루의 짜증과 고달픔을 마무리했다. 내일부터는 여행의 설렘이 시작되길 바라며.


Hello, stranger.
You look so dark and tired.
(안녕, 낯선 사람.
많이 지치고 힘들어 보여.)

신치림-출발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