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랑 이탈리아/스위스 여행 2.

2. 긴긴 하루.

by 모루


아침부터 엄마, 아빠의 바티칸 투어가 있는 날이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대충 라면을 끓여 먹고 부모님을 투어 장소까지 데려다주었다.


나는 왜 로마 일정을 2박 3일로 짠 걸까… 시차가 없었거나, 하다못해 오전에 도착하는 비행기였더라면 그나마 나았을 것 같다. 한밤중에 도착해 시차적응도 못 한 채 다음 날 아침 7시에 모여야 하는 투어는 모두에게 굉장한 부담이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매번 해외 생활 중 유럽 여행을 했기 때문에 시차적응에 무지했던 것 같다. 나의 무지로 인해 모두를 힘들게 한 것 같아 미안했다. 그러나 후회는 일단 접어두고, 부모님을 모셔다 드려야 했다.



나도 이왕 로마까지 온 김에 바티칸 투어는 해볼까 싶었지만 대부분의 투어는 만 4세 미만의 참여가 불가능했다. 아이 동반이 가능한 투어를 찾아볼까 고민하다가, 내 욕심 같아 이내 접었다.


나중에 투어를 마치고 돌아온 부모님께 어땠냐 물어보니 사람이 너무 많아 바티칸의 그 웅장함을 느낄 새도 없이 파도처럼 사람들에게 떠밀려 다녀야 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나와 아이는 안 간 게 다행이었다.



간단히 장을 보고 커피를 사 마셨는데, 에스프레소로는 성에 차지 않아 숙소에 있던 모카포트로 커피를 한가득 내렸다.


로마에서 우아하게 커피 한 잔의 여유…는 무슨.


아이가 잘 놀다가도 갑자기 떼를 쓰고 악을 지르는 통에 종일 스트레스받고 귀가 아팠다. ​마침 부모님의 투어가 끝났단 소식에 차라리 아이를 들춰업고 밖으로 나갔다. 콧바람이라도 쐬면 나을 거 같아서.



들어갔던 입구 그대로 나오는 게 아닌 데다, 나를 제외하고는 로밍도 안 되어있어서 어렵게 부모님을 만났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아빠가 유로 개념이 없으니까 웬 가판대에서 맥주 한 병과 아이스크림(젤라또도 아닌) 한 개를 2만 5천 원이 넘게 주고 샀단다. 엄마는 유럽 물가가 아무리 비싸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따져봐야 한다고 화를 냈다. 아빠는 아이스크림 하나 산 게 그럴 일이냐며 서운해했다. -결국 사기를 당한 게 맞았다.-


아직 시차적응도 못했는데 바쁘게 일정을 소화하려니 두 분 다 예민해진 듯해서 괜히 나까지 마음이 불편했다. 만나면 아이가 떼를 많이 써서 힘들었다고 징징거리고 싶었는데, 그만뒀다.


그래도 다들 숙소에 들어와 삼겹살을 구워 먹으니 한국인은 밥심이라 그런지 마음이 좀 말랑해졌다.


그래서 의기투합하여 힘차게 동네 산책을 하러 나갔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포로 로마노였다.


로마 관광지는 다 고만고만해서 숙소 기준 도보로 한 시간 이내면 대부분 갈 수 있었다. 그래서 걷는 김에 차라리 관광을 하자! 하는 마음으로 포로 로마노까지 간 것이었다.


도심 한 복판에 나 홀로 자리를 지키고 선 유적지가 너무 신비롭고 아름다워서, 나 혼자였더라면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염없이 바라보며 앉아있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기 엄마.

아이의 사진을 열심히 찍어댔다.


숙소에 들어가려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도…” 하면서 또 트래비 분수까지 걸어갔다. 이번에는 사기를 당하지 않고 꼼꼼히 환율을 따져 본 후 사이좋게 젤라또를 나눠 먹었다.


부모님과 아이의 컨디션을 고려하여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본의 아니게 이틀 치 여행을 한 것 같은 꽉 찬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