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무계획 여행이 남긴 것.
야호, 아침 산책을 가는 도중 재래시장을 발견했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든 엄마의 최애 관광은 재래시장이다. 한껏 들뜬 마음으로 시장 구경에 나섰다.
오후에 김밥을 말기 위해 당근을 두세 개 정도만 사려했는데, 졸지에 영업에 말려 토마토까지 구매해버렸다. 시장 상인은 계속 “Dolce? Dolce? (달지? 달지?)“ 하며 토마토를 권했고, 덤도 넣어주었다.
어느 곳이나 사람 사는 형태는 다 비슷하다. 파도바는 관광객과 상인들이 모인 게 아니라 진짜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도시라서 자꾸만 마음이 갔다.
시장 구경을 끝내고 시장 뷰를 바라보며 이탈리아에서의 첫 카푸치노를 마셨다. 나는 원래 아메리카노 파인데 무슨 심경의 변화였는지. 그런데, 오, 생각보다 괜찮네? 역시 본 고장인가.
몽글몽글한 카푸치노의 거품 덕분인지, 여행을 하며 쌓였던 예민한 감정들이 몽글몽글하게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오전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오늘의 점심 메뉴는 대망의 김밥. 엄마는 김밥을 좋아해서, 해외에 나가도 늘 한 번 이상은 김밥을 싼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시금치를 구하지 못해 아스파라거스를 넣고 쌌는데, 이게 또 참 별미였다. 물컹 아삭. 씹는 식감도 재미있고.
스위스에 가면 김밥을 싸서 팔아야 하나,
엄마와 농담을 주고받았다.
점심을 든든히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파도바에 큰 대학이 있어서 그런지, 아님 원래 미술이 유명한 도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림을 많이 팔고 있었다. 미술 공방인지 화랑인지 같은 게 곳곳에 있었다.
물론 로마나 피렌체 같은데도 그림을 팔긴 했으나, 그런 관광용 그림과는 또 다른 느낌이어서 인상적이었다.
이리저리 걷다가 웬 성당 앞에 도착했다. 아마도 성 안토니오 성당인 듯싶었다. 성당 문이 열려있길래 다 같이 들어가 보았다.
그저 그런 동네의 소박한 성당을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큰 규모에 놀랐다. 알고 보니 성 안토니오 성당은 유럽에서도 꽤 큰 축의 성당이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볼만한 성당을 발견해 이득을 본 기분이었다. 게다가 무료라니! 가벼운 발걸음으로 식물원으로 떠났다.
식물원에 도착했는데, 입장료가 있었다. 무려 인당 10유로. 혼자면 10유로인데 다 같이 들어가려면 30유로, 한화로 거의 4만 원 돈이 넘는다.
워낙 규모가 작다 하기도 하고, 밖에서 얼핏 봐도 그 정도의 가치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아서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엄마가 오랫동안 꽃집을 했기에 엄마랑 나는 여행을 다니며 내내 “저 꽃 좀 봐!” 하며 꽃구경을 하곤 한다. 그래서 식물원에 가 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스위스에서 들꽃이나 많이 보길 기대해야겠다.
우리는 그 편이 소소하게 더 좋기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또 작은 성당을 발견했다. 이번에야말로 정말 작은 동네 성당이었다. 규모가 크지 않은 성당인데도 수수하지만 정교한 그림들이나 화려하고 커다란 조각들이 있어, 옛 이탈리아의 강대함을 엿볼 수 있었다.
아이와 부모님을 집에 두고 나 혼자 카페 페드로끼로 향했다.
나 혼자 나온 이유는,
이 민트 커피가 궁금했기 때문.
부모님은 정서상(?) 민트 커피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아서 나 혼자 나왔다. 나 역시 궁금해서 도전해 봤을 뿐, 두 번 즐길 것 같은 맛은 아니었다. 그래도 얼마 만에 혼자 카페에 앉아있는 건지. 그저 홀로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애엄마가 여유를 즐기면 얼마나 즐길 수 있을까. 잠시 카페에 머물다 나와 돌아갔다. 내 아이가 있는 곳으로.
내일이면 짧은 파도바 여행을 마치고 또다시 이동을 해야 한다.
여행을 마친 지금, 누군가 우리에게 이탈리아에서 어디가 가장 좋았냐고 묻는다면 아마 셋 다 고민하지 않고 파도바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만큼 파도바는 인상적이었고,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의외의 선택이 만들어 준 잔잔한, 그러나 오래도록 기억될 선물같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