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비정기 휴일.
오늘은 파도바를 떠나 베네치아로 이동을 해야 하는 날인데, 일기예보상 하루 종일 비가 온다고 했다.
나도 여행을 오기 전 어쩐지 우비가 계속 눈에 띈다 했지만 안 챙겼고, 부모님도 원래는 여행 때마다 우비를 여러 개씩 챙기는데 이번엔 웬일로 안 챙겼다. 그렇다고 이 많은 짐을 끌고 우산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니 할 수 없이 비를 맞으며 이동을 하기로 했다.
혼자 여행할 때는 비를 맞아도 아무렇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비를 맞고 다니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는데, 해외에서는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니 오히려 비 맞는 걸 좋아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애가 있으니 날씨 하나도 큰 걱정거리가 된다.
한 달을 넘게 여행을 하다 보면 비가 오는 날이 있는 게 당연한 건데, 하필 그게 이동하는 날이라니. 속상한 맘에 얄궂은 날씨 탓을 하게 된다.
파도바역까지 이동할 때는 비가 많이 오지 않았고, 베네치아에 도착해서는 호스트의 배려 덕분에 일찍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다행히 우려했던 것만큼 비를 많이 맞지도, 이동이 고되지도 않았다.
짐을 풀자마자 그동안 묵혀두었던 빨래를 돌렸다. 근데 날씨가 이래서야 빨래가 잘 마를지 모르겠다.
숙소에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전자렌지가 있어서 반가웠다. 전자렌지용 스팀팩에 젖병, 쪽쪽이 등 아이의 물건들을 소독했다. 내가 아무리 위생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해도 한 번씩 이렇게 해주면 개운하고 뿌듯하다.
잠깐 장을 보러 나갔다오긴 했지만 비가 온 덕분에 아이를 제외한 그 누구도 더 이상은 나갈 생각을 못 했다. 정말 간만에 쉴 수 있었다.
장기여행 중엔 적절한 쉼도 필요한데, 마침 딱 쉬기 좋은 타이밍이었다. 이동 중엔 골칫덩이 같던 비가 숙소에 도착하니 고맙기까지 했다.
내일 일정은 어떻게 될까.
비 오는 날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건 버겁지만, 그렇다고 베네치아 일정을 허투루 쓰긴 아쉽다. 오늘은 덕분에 잘 쉬었으니, 내일은 그치기를 바라며 하루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