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랑 이탈리아/스위스 여행 7.

7. 어쩌다 마주친, 파도바.

by 모루


피렌체 마지막 날.


원래 계획은 오전에 체크아웃 후, 엄마는 카페에 앉아 아기를 보며 짐을 지키고 아빠랑 나는 둘이 피렌체 성당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마땅한 카페를 찾지 못해 맥도날드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근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아빠랑 나랑 그동안 서로 여행을 하며 켜켜이 쌓였던 감정이, 별것도 아닌 일로 터져버린 것이다.


나는 화가 나서, 그리고 그 와중에 아빠랑 같이 가면 상황이 더 악화 될 것 같아서, 그만 혼자서 성당을 보러 가버렸다. (변명을 하자면… 엄마가 혼자 가라길래 넙쭉 갔다.)



무료입장이라 그런지 줄이 꽤 길었다. 예약 시간보다 거의 30분은 일찍 도착했는데도 벌써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문이 열리자, 내 앞에 줄을 서있던 할아버지가 큰 소리로 환호를 질렀다. 옆에 있던 할머니는 부끄러워하시며 하지 말라고 말렸다. 만국 공통… 사람 사는 거 다 똑같구나 싶어서 왠지 웃음이 났다.



드디어 입장한 피렌체 대성당.


성당 돔에 그려진 그림이 제법 멋있기는 하였으나, 복잡한 심경 때문인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체감상 10분도 둘러보지 않고 나온 것 같다.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나 혼자 커피를 한잔 마시고 부모님과 아이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서 사과를 했다. 알고 보니 심지어 오늘은 어버이날이었다. 괜한 걸로 아빠와 다툰 게 내심 미안했다.


그래서 화해를 하고,

피렌체 역에서 화해의 젤라또를 먹었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습에
내 마음을 빼앗겨 버렸네.
송골매, 어쩌다 마주친 그대 中



친퀘테레 대신 파도바에 도착했다.

어쩌다 마주친, 파도바.

과연 우리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을지.

체크인 시간 전이라 갈 곳이 없어 설렁설렁 걷는데, 이거 뭐야. 가게들이 죄다 닫혀있었다. 파도바의 첫인상은 굉장히… 휑했다.


이리저리 헤매다 겨우 열린 샌드위치 집을 찾아 대충 끼니를 때웠다. 아침 햄버거, 점심 샌드위치라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그런데 체크인을 하고 기저귀를 사서 돌아오는 길에 시장을 발견했다! 신이 나서 고기와 술을 샀다.


계산해 주는 분이 내가 애를 안고 있는 걸 보더니 비닐봉지가 와인의 무게를 못 이길까 봐 와인 밑에 종이를 접어 받쳐주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정말이지 보기 드문 배려였다. 덕분에 기분 좋게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에서, 아이를 안고있는 아빠.


저녁을 먹고 소화시킬 겸, 동네 탐방을 나온 길. ​엄마가 나시에 반바지만 입고 나와서 아빠한테 걸칠 것 좀 갖다 달라 부탁했더니 눈치 없는 아빠가 하필 여름 조끼를 가져왔다.

그래서 엄마에게 내 가디건을 입으라고 주었다. 엄마는 긴 팔을 접지도 않은 채 팔랑거리며 거리를 휘젓고 다녔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너무 소녀 같고 귀여워서, 나는 이 날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거의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온 도시인데, 체크인 전의 실망감과는 달리 파도바는 참 좋았다.


문을 연 가게가 하나도 없던 아까와는 달리, 광장을 따라 바(Bar)나 레스토랑들이 즐비하게 웅성거렸다.

여느 유럽 도시들과는 다르게 길이 아주 넓고 잘 정비되어 있어 유모차를 끌고 다니기도 좋았다. 오랜만에 유모차와 씨름을 하지 않고 편하게 끌고 다니니 한창 예민했던 내 마음도 한층 넓어진 기분이었다.



가장 좋았던 건, 관광객들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사람들이 유난히 친절했다.


비록 내가 생각했던 아기자기한 소도시의 이미지는 아니었지만, 활발하고 생기 있는, 뭔가 젊은 느낌이 나는 동네였다.


내일의 파도바는 우리에게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나는 영화도 예고편을 보지 않고, 책도 소개글이나 줄거리를 읽지 않은 채 사전 정보 없이 보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일까. 아무 정보 없는 이 미지의 도시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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