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랑 이탈리아/스위스 여행 5.

5. 피사는 의외로 볼만했다.

by 모루


피사에 갈지 말지 고민하는 나에게, 아빠가 한마디 던졌다.


“이탈리아에 왔으면, 그것도 피렌체까지 왔으면. 피사는 그래도 보고 가야지!”


이 먼 곳까지 와서, 늘 엄마와 나의 놀멍 쉬멍 스타일로 여행을 할 수는 없었다. 관광을 좋아하는 아빠의 의견도 수렴을 할 때가 되었다. 오늘은 피사 당일치기를 다녀오기로 했다.



역에서 커피를 마시고 가기 위해 일부러 한 시간 후에 출발하는 기차를 끊었다.


이탈리아에서의 첫 티라미수.

돌도 안 된 아이에게 케이크를 조금 나눠주었다. 엄마 욕심에 여기까지 따라왔는데, 너도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지.



입은 건 유럽 신사처럼 멋지게 차려입고, 기차에서는 생떼를 부리는 나의 아이.

왜 공교롭게도 늘 아이의 낮잠 시간에 기차를 타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자리가 없어서 부모님은 2층에 앉고 나랑 아이만 따로 앉았는데, 아이가 또 기차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울어서 혼자 어쩔 도리도 없이 당황스러웠다.

잠투정도 잠투정인데, 강아지 유모차에 탄 강아지를 못 만지게 하는 것도 서러웠나 보다. 그렇게 한참을 땡깡을 부리다가 겨우겨우 잠들었다. 그게 전화위복이었을까, 여전히 시차 적응 중인 모양인지 엄청 오래 잤다.



덕분에 우리는 피자집에 가서 피자랑 스파게티랑 스테이크랑 술을 한잔씩 시켜 먹고 즐거워했다. 얼마나 신났냐면 평생 몇 없는 아빠의 웃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 정도였다. (그래도 함께 여행을 다니며 아빠의 웃는 사진을 많이 모아서 참 뿌듯했다.)

만족스럽게 평화로운 식사를 마치고 피사를 찾아갔는데, 생각보다 많이 기울어져 있어서 놀랐다!


오기 전까지는 사실 조금 냉소적이었다. 기울어져봐야 어차피 한낱 건물인걸, 뭐 하러 굳이 시간까지 내서 보러 가나 싶었다. 그런데 막상 가서 내 두 눈으로 보니 정말 신기했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기울어지도록 무너지지 않았을까? 결국 나도 다른 사람들이 갖는 의문과 똑같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성당 내부 관람은 무료지만 티켓이 있어야 해서 티켓오피스에 가서 표를 끊었다. 입장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대략 한 시간쯤 남아서,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때운 후에야 들어갈 수 있었다.


성당이 어땠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걸 보면, 역시 성당 관람은 나에게 썩 와닿는 여행 방식은 아닌가 보다.



성당 구경을 마친 후 아빠와 착시현상을 이용해 사진을 찍고 놀았다. 언제나 근엄하고 틀에 박힌 것만 같던 아빠가 이런 사진을 좋아한다니. 아빠의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는 날이었다.


아빠의 의외의 모습이 또 있었는데, 기념품을 매우 사고 싶어 했다. 피사가 그려진 컵 같은 것들을. 여행 내내 이고 지고 다니기도 무겁고, 유리라 깨지기도 쉽다며 겨우 설득했다.


아마도 볼 때마다 기억하고 싶었던 거겠지. 그 마음, 이해는 된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수많은 나라들을 여행하며 사 모았던 기념품들이 지금은 다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걸 생각해 보면… 말려야 할 것 같았다. 하하.



관광을 좋아하고, 여행지에 가면 모든 걸 다 해 보고 싶어 하는 아빠는 피사의 사탑에도 역시, 올라가 보고 싶어 했다. 그런데 일단 가격이 생각보다 비쌌다. 그게 아니더라도 유모차를 끌고 올라갈 수는 없는 데다, 오늘 피사, 내일 조토의 종탑 일정은 무리일 것 같아 포기했다.



생각보다 오랫동안 피사를 구경하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 피사는 기대 이상으로 볼만했고, 마치 작은 피렌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건축물에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와보지 않았으면 이렇게 재미있는 곳이라는 걸 영영 몰랐겠지.


와 보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