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랑 이탈리아/스위스 여행 6.

6. 아기 업고 계단 414개.

by 모루

원래는 오늘 대성당 내부를 둘러 볼 계획이었다.


근데 오늘은 일요일. 일요일은 미사 때문에 그런지 대성당 입장이 불가했다. 좀 미리 알아보고 예약도 하고 올걸, 이번 여행은 유난히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몇해 전 엄마와 스페인에 갔을 때는 아무 것도 알아보지 않고 무작정 부딪혀도 정작 볼 건 다 봤었는데, 이탈리아는 만만치가 않네.

그런데 뭐, 까짓거 오늘 안 되면 내일 가면 되지! 그게 무계획 여행의 매력 아니겠어.



대성당과 달리 조토의 종탑은 오늘도 입장이 가능해서, 어젯밤 미리 조토패스를 예매했었다.


해가 어슷어슷 지는걸 보기 위해 제일 마지막 타임으로 예약했지만, 그때까지도 해가 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종탑 위에서 피렌체의 전경을 구경한 후, 미켈란젤로 언덕에 가 일몰을 구경하기로 했다. 이렇게 하루 일정 뚝딱 완성!



아이가 시차 때문에 피곤한지 오늘은 낮잠을 네 번이나 잤다. 나도 오늘은 계단 414개나 되는 조토의 탑을 아이를 업고 올라가야 했으므로, 아이가 잘때마다 기절하듯 같이 자서 체력을 보충했다.



예약 시간이 다가 올 때즈음 집을 나섰다.

“엄마, 피렌체는 T본 스테이크가 유명하대.”

생각 없이 던진 한 마디에 점심 메뉴는 스테이크로 결정. 밥을 먹고 시간이 남아 커피도 마셨다.



​ 샤케라또를 시켰는데 아빠가 마음에 들어해서 아빠에게 양보했다.



이제 대망의 종탑 입장 시간이었다.

입구에 유모차를 맡겨놓을 곳도 있어서, 아기띠를 맨 등은 무겁지만 마음만은 가볍게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계단은 총 414개.

여지껏 여행을 다니며 그보다 더 많은 계단을 숱하게 만났었기 때문일까, 지레 겁을 먹었던 것보다는 할 만했다. 특히 조토의 종탑은 중간중간 쉴만한 장소가 나오기 때문에 생각보다 아이를 업고 계단을 오르는 게 어렵지 않았다.


다만, 계단을 오르며 아기의 무게가 더해지기 때문에 무릎이 아픈건 감안을 해야 한다.



역시나 듣던대로 철창 때문에 탁 트인 뷰는 볼 수 없었지만, 높은 곳에 올라오니 기분이 상쾌하고 좋았다. 아이와 함께여서 더 뜻 깊고 뿌듯했다.




사진을 찍고 놀다보니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우리는 서둘러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향했다.


원래는 미켈란젤로 언덕까지 버스를 타고 갈 예정이었으나 버스를 타도 30분, 걸어도 30분이었다. 만장일치로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미켈란젤로 언덕에 도착하자마자 나의 시선을 빼앗은 풍경. 유럽의 전경을 흠뻑 느낄 수 있는 빨간 지붕과, 내가 사랑하는 노을이었다. 가슴이 먹먹해질만큼 황홀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우리는 언덕에 도착하자마자 빠르게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마치 “관광 명소의 실체” 라며 인터넷에 올라오는 사진을 연상케 할 정도의 수많은 인파와 마주쳤기 때문이다. 사람에 채여 유모차도 버거울 정도였다.



아쉬운 마음을 알아챘는지, 길에서 만난 비눗방울이 달래주었다. 아이는 한참을 비눗방울을 바라보며 좋아했다.



​ 트램을 타러가는 길, 나의 발길이 닿는 모든 곳이 몽환적일만큼 아름다운 피렌체. 그런 피렌체의 마지막 밤이었다.



로마 2박 3일만 짧을 줄 알았는데, 어느 도시든 4박 5일도 정말 택도 없이 짧게 느껴진다. 무엇이든 다 보고싶어하는 아빠 때문에 내 여행 인생 중 가장 빡빡한 여행을 하고 있는데도 왜 다 즐기지 못한 것처럼 아쉬울까.


다음번에 이탈리아에 오게 된다면 한 도시당 최소 일주일씩은 머물고싶다. 그리고 아무것도 안 하고 한 자리에 오래 오래 앉아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