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랑 이탈리아/스위스 여행 11.

11. 알록달록 부라노.

by 모루


어젯밤부터 다시 비가 내렸다.

원래는 베네치아 24시간권을 끊어서 오전에 본섬을 돌아다니다 집에서 점심을 먹고 잠깐 휴식을 취한 후, 밤에 야경을 보러 다시 나갈 계획이었다. 오전에 비가 오면서 계획은 이미 무산. 과연 비는 그칠 것인가.


사실 오늘은 비가 와도 나갈 생각이기는 했으나, 오후 3시 이후에는 비가 그친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비는 생각보다 빨리 그쳤지만 시간이 애매했다. 집에서 점심을 먹고 좀 느긋하게 나가기로 했다.



​우기 때의 동남아 여행이 좋았던 건, 한창 비가 쏟아지다가도 잠시 보여주던 맑은 구름 때문이었다. 오늘도 비가 와서 그런지 하루 종일 구름이 뭉게뭉게 참 예뻤다.


근데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담배가게가 문을 닫았다. 그건 즉, 섬으로 들어가는 표를 살 수가 없다는 뜻이었다.

어라, 이건 내 계획에 없던 일인데?


안 그래도 어제 숙소 주인이 담배가게 쉬는 시간을 얘기해줬었는데, 까먹어 버렸다. 할 수 없이 메스트레역까지 걸어가서 티켓을 사야 했다.

역 가는 길에 다른 표 파는 곳이 있어 사려고 했지만 기계가 고장 나 거기서도 사지 못 했다. 그래도 주인 아주머니께서 버스카드 사용법을 친절하게 알려주셔서 기억에 남는 곳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표를 구매해 본섬에 들어왔는데, 비현실적일 만큼 웅장한 구름들이 우리의 여행을 응원해주고 있었다. 오늘 하루도 기대가 됐다.



무라노 섬에 도착했다.


유리가 유명한 곳이라 유리 공방 위주로 둘러보았다. 예전의 엄마는 이런 그릇들을 참 좋아했는데, 요즘은 이제 겨우 예순 넘은 양반이 자꾸 곧 갈 사람처럼 군다. 물건을 정리해야지 더 늘리면 안 된다며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는다.

치앙마이에서 산 그릇들을 아빠가 귀국 길에 다 깨 먹은 후로, 그릇의 그릇됨을 깨달은 걸까.


어영부영 무라노를 구경하는 새에 부라노 가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우리도 급히 줄을 섰다.


부라노 가는 배는 인산인해였다. 아이가 내내 징징이 모드라 아기띠를 하고 탔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서로 자리를 양보하려 했다. 요즘 한국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힘든 일이라 고맙고도 생경했다.



​ 알록달록. 건물들이 저마다 각각의 색을 뽐내는 부라노 섬에 도착했다.


근데 배에서부터도 그랬지만 도착하자마자 진짜 사람이 사람이..​. 나는 사람이 많은 곳을 힘들어하는 편이라, 누군가 5월에 이탈리아를 간다면 개인적으로는 말리고 싶다.



그래도 또 사람 없는 곳을 요리조리 잘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오래 머물지 않고 금세 집에 돌아가기로 했다. ​웬일로 아빠 쪽에서 먼저 돌아가자고 했다. 부라노는 영 젊은 애들이 좋아할 법한 동네인 거 같다고 한 걸 보니, 아빠 취향은 아니었나 보다.



아이는 낮잠을 자지 않고 버텼다. 졸려서 떼를 썼다. 그런데 나랑 엄마한테만 징징거리고 난생처음 보는 외국인들한테는 방긋방긋 웃으며 손도 잡아줬다. 뒤를 돌아 다시 엄마와 나를 보며 울었다. 1세 아이의 사회생활이란.



배를 타고 집에 가는 버스 정류장과 꽤 떨어진 곳에서 내렸다. 걸어가자니 제법 멀어서 다시 수상 버스를 타기로 했다. 아주 작은 수상 버스였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마을버스의 개념인지 바다를 건너는 게 아니라 고만고만하게 동네를 돌아다녔다. 아빠가 줄곧 타고 싶어 하던 유람선의 느낌이 나서 좋았다. 사람도 많이 없었다.


원래는 본섬에 도착해서 좀 더 돌아다닐 계획이었으나 곧 다시 비가 쏟아질 것 같은 구름이었다. 밖에 내놓은 빨래가 걱정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


다들 피곤한 눈치이기도 했다. 함께 여행한 시간만큼 피로도 쌓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