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생각보다 뭐 있던 밀라노.
밀라노에서 1박을 하고 스위스로 넘어가기로 했다.
밀라노 하면 대도시, 패션의 도시라는 느낌이 강해서 원래는 들를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베네치아에서 곧바로 스위스로 가기에는 아이가 너무 힘들어할 것 같아 울며 겨자 먹기로 1박을 끼워 넣었다.
이왕 들른 김에 구경은 해야 할 것 같아서, 찾아보니 마침 엄청 큰 대성당도 있어서, 부랴부랴 두오모 리프트 패스트 트랙권을 예매했다.
아아, 피렌체에서 오른 414개의 계단이 떠올랐다. 그런데 여기는 리프트가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반드시 리프트를 타고 가야지.
밀라노에서 주어진 시간이 하루밖에 없어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베네치아를 떠났다.
오전에 도착한 우리는 짐을 둘 곳이 없어 헤매다 숙소 근처 아무 데서나 밥을 사 먹었다. 구글 평점이 높아 기대가 컸는데, 냉동피자를 비싸게 받는 데다 맛도 없어서 기분이 완전히 상해버렸다.
게다가 엄마랑 간 마트에서는 경호원 같은 사람들이 인종차별인지 뭔지 조롱을 했다. 여러모로 첫인상이 안 좋고 힘든 밀라노였다.
체크인 시간이 되어 숙소에 짐을 풀고, 기분 나빠하면 뭐 해. 힘을 내서 밖으로 나왔다. 체크인을 하고 나니 두오모 예약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아서, 사실은 기분 나빠할 새도 없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금방 갈 수 있었지만, 어차피 오늘 하루뿐이니 가는 길에 밀라노의 풍경을 눈에 담고 싶었다. 두오모까지 30-40분 정도 걸어가기로 했다. 현대적인 건물들이 높이 솟은 풍경이 낯설었다.
다소 마음이 상했던 출발과는 달리 공원이 나오면서부터 기분이 조금씩 나아졌다.
공원에서 무슨 행사를 했는지 다들 저마다 꽃 화분을 들고 나오는데, 그 모습이 왠지 따듯하고 정겨웠다.
그렇게 지도를 따라가다 보니 도착한 갤러리아 백화점. 여기서부터는 사람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많아 서로 떨어지지 않게 주의해야 했다.
조심조심 서로를 신경 쓰며 아치 문을 지나자, 밀라노 두오모가 나타났다. 패스트 트랙권임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이 많아 바로 입장을 할 수는 없었다.
줄을 서는 중에 블로그를 찾아봤더니 올라갈 때는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지만, 내려올 때는 계단으로 내려와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아니, 그럼 유모차는 어떡해?
다급한 마음에 직원에게 물어보니 접어서 가지고 가라고 했다.
응? 뭐라고?
아기는 11킬로, 유모차는 6킬로인데?
입구에 유모차를 맡기고 가는 건 안 되겠냐 물으니 단호하게 안된단다. 하는 수 없이 유모차는 접고, 아이는 아기띠를 한 채 리프트를 탔다.
멋있는데요, 네, 너무 멋있는데요…
난 분명 리프트로 올라오려 했는데 왜 계속 계단이 있는 거죠?
알고 보니 리프트로 올라갈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었고, 꼭대기까지는 계단으로 가야 했다. 대충 알아본 대가를 이렇게 또 치르네.
그래도 확실히 멋있긴 했다.
뾰족뾰족 솟아오른 첨탑과 조각상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있었으니, 현재 이탈리아는 여행 성수기라는 것. 내려가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다. 그래서 우리는 꼭대기의 전경을 즐기기보다 줄을 서는 것을 택했다.
내가 아이를 안고 아빠가 유모차를 들고 내려왔는데, 힘은 들지만 어영부영 내려오니 내려와 졌다.
내려와 보니 피렌체 종탑과는 달리, 밀라노는 바로 성당과 연결되어있었다. 안 그래도 위에서 본 첨탑이 너무 멋져서 성당 구경도 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잘 됐다.
엄마는 밀라노 두오모의 기둥이나,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것들이 스페인의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떠올린다고 했다. 듣고 보니 같은 양식인가 싶기도 했는데, 미술에도 건축에도 문외한이라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그래도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훨씬 더 온화하고 밝은 느낌이어서 좋았다. 하지만 밀라노 두오모도 그만의 매력이 있어서, 안 왔으면 후회할 뻔했다.
아빠의 니즈에 맞추기 위해 유명한 것들이란 것들은 꽤나 돌아보고 있다. 나와 엄마는 그런 여행을 선호하지 않아서 버거울 때도 많지만, 또 때로는 와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곳도 많다.
피사도, 파도바도, 밀라노 두오모도. 어떻게 보면 아빠 아님 못 봤을 곳들이니 고맙기도 하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얼마 안 남은 이탈리아 일정이 아쉽기라도 한 걸까? 웬일인지 우리는 또 걸어가기로 했다.
오는 길에 본 그 공원에 들어가려 했으나 행사 때문에 입장권이 없으면 못 들어가는 것 같았다. 공원에 가는 건 포기하고 공원 옆 비스트로에서 술을 한잔씩 했다.
그런데 여기, 친절하고 가격도 양심적인 데다 안주까지 준다. 이탈리아 첫날 맥주 한 병에 7유로를 주고 먹은 우리는 거의 반의 반 값에 감자칩과 땅콩 안주까지 주는 이 집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작은 것에 금세 기분이 좋아져 집까지 또 신나게 걸어갔다.
안 자겠다고 버티는 아이를 겨우 재우고 나도 잠을 청했다. 내일은 엄마의 오랜 꿈이었던 스위스로 떠나는 날이다. 기차를 몇 번이고 갈아타야 해서 마음이 조금 불안하지만, 내일이면 아이의 아빠를 만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