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랑 이탈리아/스위스 여행 19.

19. 산들의 여왕, 리기.

by 모루

아침에 눈을 떠보니 날씨가 괜찮은 듯 보였다.

리기 가기 좋은 날씨군.



루체른에서 비츠나우로 배를 타고 간 후, 리기클룸까지 기차를 타고 갔다. 산악열차답게 가파른 길을 순식간에 올라갔다.

산 정상에 도착하니 파노라마같은 장관이 한눈에 펼쳐졌다.


​리기 산 정상에는 아기와 함께 유모차를 끌고 온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이렇게 어린 아기일 때부터 자연과 함께 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게, 몸이 불편한 사람들도 산 정상에 오르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다는 게, 또다시 너무 부러워졌다.



​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그런가, 문득 배가 고파졌다.


뮈렌 이후 감자튀김에 제대로 꽂힌 우리는, 이번에도 감자튀김과 맥주를 시켜 먹었다. 아이도 어김없이 감자튀김 앞에서는 무장해제 웃음을 보여주었다.

애플사이더를 시켜놓고 보니 알콜프리라고 적혀있었다. 괜히 얘기했다가는 한 병 더 시키자고 할 것 같아서 부모님께는 비밀로 했다. 아빠는 공기가 좋아서 그런지 술이 안 취한다며 신기해했다. 아빠 미안. 사실 그거 무알콜이었어.


먹거리를 다 먹고 나니 크게 할 것이 없어 바로 하산하기로 했다. ​사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구름 덮인 리기산을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았는데, 이제 다들 피로가 쌓일 대로 쌓였기 때문에 아쉬움을 뒤로한 채 숙소로 향했다.


안녕, 리기.

왜 십 년 전에는 리기를 오지 않았던 건지, 괜스레 지난날이 후회가 되었다. 뭐, 어쨌든 여행이란 늘 선택과 집중의 연속이니까.



눈앞에 있는 기차를 아무거나 탔다. 행운이었다. 엄청 오래되어 보이는 기차였는데, 내부로 들어가니 나무 냄새가 나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기차를 타고 내려가는 길에 핀 들꽃들.

​ 그래, 우리는 이걸 보러 온 거였다.


5월의 스위스는 긴 겨울을 마치고 관광이 막 시작되려는 달이다. 그래서 트래킹의 황금기라 할 수는 없지만,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잔잔하게 아름다웠다.


기차에서 한 스위스 할머니를 만났다. 아이를 내내 예뻐해 주시다가, 기차에서 내리기 전, “행복한 아이가 되기를.”하고 인사해 주셨다.


스위스는 참 모두에게 선한 나라인 것 같다. 20대 때는 단순히 예쁘고 경치가 좋은 (하지만 학생 신분에 물가가 너무 비싼) 곳 정도로만 다가왔던 나라였는데. 애를 낳고 시야가 넓어지니 행복 지수라든가, 선진국이라든가, 하는 더 복잡한 의미들을 가지고 다가온다.


곤란해 보이는 이방인에게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어주는,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이방인 아기의 행복을 빌어주는, 서로 눈을 마주치면 마주 보고 미소 짓는, 스윗한 스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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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후 남편과 나는 특별히 둘만의 시간을 얻었다. 뭘 먹을지 고민하다가, 남편이 베른에서부터 노래를 부르던 케밥을 먹으러 갔다. 나 스위스 여행 끝나고 튀르키예 가는데…


숙소로 돌아가는 길, 스위스의 마지막 날이라 벤치에 한동안 가만히 앉아 루체른의 호수를 바라보았다.



오늘도 아이가 잠을 자지 않아 밤에 데리고 나왔다. 밖에서는 잘 자다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깨서는, 안 자겠다며 새벽 네 시까지 떼를 쓰고 소리를 질렀다. 방음도 안 되는 숙소에서 애가 몇 시간씩 우는 건 정말 당황스러웠다. 나는 얼마나 피곤했는지 아이에게 쪽쪽이를 준다는 게, 애아빠에게 쪽쪽이를 물릴 뻔했다.


이제 내일이면 남편도 한국으로 돌아갈 텐데 아이가 계속 이러면 어쩌나 걱정이 됐고, 짜증도 났다. 엄마는 애들도 다 누울 자리 보고 눕는 거라서 남편이 가면 이제 안 그럴 거라는데, 모르겠다. 제발 안 그랬으면 좋겠다.




아무튼 이렇게 스위스에서의 마지막 밤도 끝나간다.


남편은 아기를 안고 다녔던 기억밖에 없단다. (그러게 내가 유모차 가지고 가자고 했잖아.)


그래도 아기를 안고 세 식구가 여기저기 돌아다닌 기억, 스위스 놀이터에서의 기억, 기차에서 만난 할머님에 대한 기억.


좋은 기억이, 좋은 추억이 많이 남았기를. 그게 너에게, 우리에게, 주저앉았을 때 다시 일어나 웃으며 살아갈 힘이 되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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