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스위스, 안녕.
새벽 네시까지 안 잔 아이 덕분에 모두들 예민한 상태로, 우리는 공항으로 향했다.
루체른 역시, 라우터브루넨처럼 마지막 날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정말 아쉽게 하네.
언젠가는 스위스에 다시 와야지.
튀르키예는 날이 춥지 않을 것 같아서, 부모님과 나, 아기의 겨울옷을 얼추 추려 남편에게 보내기로 했다. 그래서 캐리어 하나를 가지고 왔던 남편이, 돌아갈 때는 캐리어 두 개를 들고 가게 되었다.
체크인을 할 때 혹시 캐리어 두 개를 수하물로 보내도 되냐 물어봤더니 다른 기내용 짐이 있냐고 묻는다. 기내용 짐은 백팩 하나뿐이라 하니까 두 개를 무료수하물로 보내준다고 했다.
그렇게 남편의 귀국행은 시작이 좋았는데, 우리의 튀르키예행은 처음부터 난관이었다.
튀르키예행 체크인 카운터에서 오랜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남편, 아이의 성과 나의 성이 다른 것이 문제였다. 해외에서는 흔히들 아내가 남편의 성을 따르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아서 미심쩍었나 보다.
아무리 우리나라는 그런 시스템이 아니라고 설명해도 듣지를 않고, 결국 튀르키예인 직원들이 나의 주민등록등본을 구글번역기로 돌려 본 후에야 납득을 하고 들여보내 주었다. (애초에 구글번역기가 그렇게까지 신빙성이 있는 거야?)
이 사건 때문에 우리는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이 카운터, 저 카운터로 이리저리 이동을 해야만 했고, 새로운 여행의 시작부터 조금 짜증이 났다. 쟤는 360도로 뒷구르기하면서 얼핏 봐도 내 아들인데. 아, 물론 그거랑 서류는 별개의 문제라는 건 알지만, 참 별 일을 다 겪는다.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체크인을 마치고 들어와 남편은 A게이트, 우리는 D게이트로 가야 해서 슬슬 헤어져야 했다.
남편의 비행시간이 애매해 커피 한 잔, 빵 한 조각 같이 할 시간도 없이 보내는데 그게 왜 그렇게 서글프고 아쉬웠는지 모르겠다. 헤어지는 연인들도 아니고 같이 사는 한 식구인데 그거 잠깐 떨어지는 게 뭐라고. 한국에서 나올 땐 남편 바쁘니까 얼른 가라고 떠밀어 보냈는데 해외에서 보내려니 뭐 그리 울컥하고 허전한지.
지칠 만큼 지쳐서일까, 남편도 가는 마당에 갑자기 여행을 하기가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십여 년 전, 스위스 여행을 마칠 때에도 꼭 이랬었다.
스위스가 여행 끝판왕이라 그런가.
비행 편은 취소할 수 없고, 부모님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며, 나는 이제 또 언제 다시 떠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니. 우리는 다시 제 갈 길을 가기로 한다.
안녕, 다음 여행지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