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랑 튀르키예 여행 9.

9. 우리만의 비밀 공간.

by 모루

아빠가 과로를 했는지 코피가 났다. 조식을 먹고 다 같이 오전 산책을 나가려던 참이었는데, 할 수 없이 엄마와 나, 아이만 나왔다.


아이는 감기가 나아가고 있었지만 엄마는 여전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아픈 건 몇십 년 만에 처음이라고 했다. 나도 살면서 엄마가 앓는 소리 하는 걸 본 적이 없던 터라, 걱정이 되었다.


아이 걱정이 끝나니 엄마 걱정. 엄마이자 딸의 여행은 마음 편한 날이 드물다. 그래서 더 예민하게 굴게 된다. (변명이다.)



나는 카파도키아가 마음에 드는데, 가족들에게는 카파도키아가 온 식구가 끙끙 앓은 기억으로 남게 될 것 같다.


늘 그렇듯 ​목적지 없이 떠돌아다니다가, 커다란 사냥개 두 마리가 묶여있는 곳을 발견했다.


개들이 너무 극성스럽게 짖어대니 아이가 있어서인지 나는 괜히 겁이 났다. 그런데 엄마는 이상하게 자꾸 그쪽으로 가보고 싶어 했다. 엄마는 여행지에서 묘하게 감이 좋은 사람이라, 나도 내심 저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졌다. 용기를 내어 사냥개들이 있는 쪽으로 조심조심 발길을 돌렸다.



​ 아, 이런 곳을 발견하다니.

엄마의 촉은 늘 옳다.

도무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구름도 예쁘고, 바람도 선선하니 좋고, 게다가 사람이라고는 정말 아무도 없어서, 우리가 어디 사차원의 세계로 들어온 건 아닐까 착각을 하게 됐다.


그만큼 풍경도, 분위기도, 우연히 이런 공간을 발견한 이 상황도 너무 몽환적이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들꽃도 색색깔로 피어있었다.


​ 계속 아파서 기운이 없고 짜증 내던 엄마도, “그래, 이런 게 여행이지!”하며 살포시 웃었다.


절경을 충분히 즐기다 돌아 나오는 길에는 강아지들이 짖지 않았다. 모험가로서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시내로 나와 또 정처 없이 걷다 지쳐 아무 카페에 들어가 앉았다.


옥상에 있는 작은 카페였는데, 여러모로 친절해서 좋았다. 가게 주인이랑 손님이 아이랑 계속 놀아주고, 엄마가 한창 걷고 기는 아이에게 신경을 쓰느라 커피를 못 마시니까 다 식었겠다며 다시 준비해 주었다.




커피를 마시고 숙소로 돌아가 점심을 먹고 쉬다가 다시 집을 나섰다. 아빠에게 우리가 발견한 비밀 여행지를 소개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계속 벼르던 선셋 포인트에도 오늘은 기필코 가보기로 했다.

우리만의 장소에 도착한 아빠는, 엄마가 “그린투어보다 훨씬 좋지?” 하고 물어봤는데 대답을 회피했다. 사람이 없는 것도 불안해했다. 그러면서도 핸드폰 카메라는 쉴 틈이 없었다. 아빠는 언제쯤 여행에서 여유를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잠든 아이와 함께 커다란 바위 위에 앉아, 이 비현실적인 풍경을 구경하며 가만히 앉아있었다. 오랜만에 누리는 평화였다. 부모님은 트래킹이라도 하려는 듯 더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있나 본다며 떠났다. 적당한 길이 없어 금세 포기하고 돌아와 선셋포인트로 향했다.




입구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 먹었다. 시내에는 아이스크림만 덩그러니 있고 가게 주인이 없어서 못 사 먹고 올라왔는데, 뜻밖의 행운에 기분이 달콤해졌다.



선셋포인트에 올라오기 전에는, 그저 해 지는 걸 보는 게 전부인 곳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꽤 넓은 데다 걷기 좋은 산책로도 있었다. 오랫동안 함께 거닐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은 구름에 해가 가려 일몰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해가 지기 직전에 서둘러 내려왔다.




아이가 잘 시간이 다 됐는데도 또 안 자고 울어댔다. 나는 오늘도 밤이 늦도록 아기띠를 한채 아무것도 사지 않을 기념품샵을 돌아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