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의 꿈, 엄마의 꿈.
친정에 놀러 갔던 중, 엄마에게 농담 반 진담 반이 섞인 SOS를 받았다. 친구들과 한 달 살기를 가고 싶은데, 혹시 내가 가이드 겸 함께 가 줄 수 없냐고.
아이는 어리고, 내 또래 친구라고는 하나도 없을 60대 아줌마 아저씨들과의 여행이었지만 단 번에 그러겠노라 대답했다.
사실 엄마는 내가 첫 일주일 정도만 함께 가서 숙소를 잡아주고 마트 위치랑 시장 위치, 택시 타는 법 같은 걸 알려주는 정도만 원하는 것 같았는데 내 마음대로 한 달 내내 같이 가는 걸로 결정했다. 내심 중간에 엄마랑 육아 문제로 싸워서 한 달을 못 채우고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나라고 고민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8개월 아이를 데리고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도전이었다. 과연 이 아이가 비행기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고 무사히 잘 갈 수 있을까. 가장 친한 친구, 가족들과 가도 싸우고 돌아오는 게 여행인데 잘 다녀올 수 있을까.
그 수많은 걱정에도 불구하고 가겠다고 한건,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였다. 24시간 중에 20시간을 울어대던 아이. 그 아이로 인해 산후우울증과 육아우울증에 시달리던 나. 결혼 전 약 30개국을 돌아다녔을 만큼 여행을 워낙 좋아하던 나라서, 혹 육아의 배경이라도 바뀐다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싶은 기대가 있었다. 엄마와 함께 한 달 살기를 하며 육아 도움을 받고 사람들과 부대낀다면 그것만으로도 좀 위로가 될 것 같기도 했다.
엄마 또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결혼 전 그렇게 이 나라 저 나라로 다닐 수 있던 것은, 부모님이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셨기 때문이기도 했다. 부모님은 내가 결혼을 하지 않을 거라 굳게 믿고 아빠의 은퇴 후 함께 세계 여행을 가자며 꿈에 부풀어 있기도 했었다. 결혼을 하며 그 꿈을 이뤄드리지 못해 내심 죄송한 마음도 있었는데, 이 한 달 살기가 그 꿈의 첫 시작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부모님과 부모님의 친구분들, 나와 아이의 태국 치앙마이 한 달 살기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준비 기간 동안 나는 꽤나 들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