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우리는 한 달 동안 무엇을 했는가.
나는 원래도 여행을 다닐 때 관광 명소를 그렇게 열심히 찾는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여행을 하면서도 숙소에 머무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장기 여행을 할 때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숙소에서 조용히 쉬거나 잠만 자는 날도 숱하게 많았다.
누군가가 내 여행 일정을 물으면 나는 늘,
“음.. 자다가 일어나. 그리고 나가서 산책을 해. 현지인이 많은 식당을 보면 가서 밥을 먹어. 그리고 또 산책을 하다가 마음에 드는 카페를 만나면 커피를 마셔.”
라고 대답하고서는 완벽한 계획이라며 자화자찬했었다.
여행이 끝나고 난 후 기억에 남는 건 앙코르와트도, 베르사유도, 어느 유명 화가의 그림도 아니었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알게 된 일행, 그들과 나눈 대화, 커피 한 잔, 맥주 한 모금, 그날의 날씨와 분위기, 나의 감정.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에게 남는 건 오히려 그런 것들이었다. 그걸 깨달은 후로는 관광명소에 가는 걸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더군다나 아이와 함께 가는 거라 원래 관광은 아예 내 고려 사항에 없는 선택지였다.
대부분은 숙소의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도보 5분 거리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로컬들이 다니는 마사지샵에서 마사지를 받고, 도보 30분 거리의 동네 재래시장에서 과일을 사다 먹었다. 시장에서 팟타이나 쌀국수, 쏨땀을 사다가 나중에는 우리 입맛에 맞게 양념을 더 해먹기도 했다. 리어카에서 웬 생선을 말려 파는 생선장수도 만나 생선을 사다 구워 먹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의 여행은 부모님과 아이뿐 아니라 여행이 생전 처음이신 일행분들도 계셨기 때문에, 관광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었다.
밴을 빌려 해바라기와 라벤더가 우아하게 핀 먼쨈도 다녀오고, 수년 전 라오스 루앙프라방에서 슬리핑버스를 타고 치앙마이에 들어가며 나의 시선을 빼앗았던 백색 사원도 다녀왔다. 집 근처의 우산 마을이나 싼캄팽 온천도 갔다. 다행히 아이는 장시간의 버스 이동에도 칭얼거리지 않고 잘 견뎌주었다.
사실 이런 이런 곳들이 있다는 정도만 대략적으로 알아두었을 뿐 아이를 데리고 관광을 할 생각은 없었어서, 일행들과 다니며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었다.
일행은 일행대로 유일하게 젊은 나를 믿고 돈을 들여왔는데 관광이랄 게 하나도 없이 정말로 말 그대로 한 달 ”살기“를 하고 있으니 애가 타셨을 것 같다. 나중에는 스스로 어디를 가야 할지 알아보기까지 하셨으니.
당시에는 힘든 부분도 있었으나, 지나고 보니 감사한 부분들도 있었다. 다들 어르신 분들이라 우리 아이가 웃는 모습만 보고도 참 좋아해 주셨다. 그 작은 웃음 한 번 보겠다고 60대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모여 아이 앞에서 재롱을 떨어주셨고, 우리 가족사진을 멋지게 찍어주신 분도 계셨다.
이후 부모님과 함께 한 여행에서도 느끼게 되지만 혼자였다면 가지 않았을 곳들, 하지 않았을 일들이 때론 여행을 더 풍요롭게 만들기도 하는 것 같다. 원하지 않았던 일정 속에서도 마음을 써주는 사람들 덕에 따뜻했던 순간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