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회사인으로 보낸 10년 #01

by 토파즈
2019년 12월 31일부로 퇴사했습니다.


허망했습니다. 대조적으로 제가 입사한 과정은 아이러니했습니다. 가벼운 마음에 원서를 넣었고 최종 면접을 합격하고 덜컥 입사했습니다. 처음 팀장을 만나는 자리에서 들었던 말이 '기대했던 사람이 아니라 아쉽지만 어떻게든 잘해봅시다.' 속으로 뭐 이런 미친 xxxxxx가 다 있나? 했지만 그 팀장은 3개월 뒤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려 떠났습니다. 최선을 다해 4년을 다녔고 어떤 업무든 스스로 기획자가 되어보자 라는 생각으로 일했는데 뭐 어느 곳이나 다 그렇겠지만 또라이 총질량의 법칙은 작동했고 제가 그 또라이 중에 한 명은 아닌지 자기 검열을 하듯 시간을 보냈습니다.


회사에서는 필사적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했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저의 자리는 사라졌습니다. 무턱대고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최악의 상황이 하나씩 겹쳐나갔고 그 결과로 자리가 사라진 것뿐입니다. 퇴사 전에 마음 정리는 고사하고 뒤숭숭했지만 회사에 있는 시간 동안은 필사적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했습니다. 이곳에서 제 마음의 어떤 부분도 들키고 싶지 않았고 표현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누구도 알 길 없지만 저 스스로 오기 부리며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극혐 하는 타인을 보며 제 자신을 마주했습니다.


퇴사가 확정되고 1~2주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갈 곳이 정해져 있나 봐요?',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데.. 괜찮아요~?' 등과 같은 진심과 거리가 먼 그런 말들이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일하며 내상을 입었나 봅니다. 입으로 가치를 말하고 온 몸으로 자기 이익을 항변하는 이중적인 모습에 치를 떨었고 급기야 저 자신도 뭐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미치니 정신 차리고 있기 힘들었습니다. 극혐 하는 타인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제 자신을 마주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원칙을 지킨 공정한 과정이 의미 있는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2019년은 첫 시작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부서를 이동하고 팀장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용역 업체 선정에 있어서 저는 원칙을 고집했고 팀장은 네트워크를 활용하자고 했습니다. 6개월 후 팀장이 퇴사하고 그 네트워크는 단순한 네트워크가 아니었고 팀장과 연관된 업체였다는 것을 알았을 뿐입니다. 허탈했지만 뭐 이런 일도 당연히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돈 앞에 장사가 어디 있습니까? 내가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 그렇다고 팀장과 제가 큰소리 내고 싸우지는 않았습니다. 서로를 싫어했음은 분명했지만 무시하지는 않았습니다. 게임의 룰은 지켰지만 단 한 번도 서로를 존중하거나 진심으로 대화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알 수 없는 긴장만이 존재했을 뿐.


다만, 저 스스로 쉽게 타협해서 넘어가자는 마음과 그래도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충돌하며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저는 원칙을 택했고 승자 없는 게임에서 팀에 불편함만 더했을 뿐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일만 하자고 마음먹고 바쁘게 지냈습니다. 몸소 깨달은 한 가지 사실은 공정한 과정이 의미 있는 결과를 보장하지 않고, 반대로 의미있는 결과가 공정한 과정을 지난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올바른 가치를 지향하고 행동을 하더라도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고 대충대충 했는데도 결과가 좋을 수 있다는 것이 세상사이고 그것이 주어진 한계라는 것을 절감한 1년입니다. 그래서 잘하는 것이 진심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잘하고 싶었지만 한계도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퇴사한 제가 일방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은 피해자는 아닙니다.


'조금이라도 새롭게 하자. 조금이라도 다르게 하자.'와 같은 생각으로 일했습니다. 지루함과 분노와 원망 그 어디쯤의 감정을 견디기 힘들어 스스로에게 세뇌하듯 던진 말입니다. 퇴사한 제가 일방적으로 불의한 일을 겪었고 부당한 대우를 받은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받은 상처만큼 반드시 누군가에게 어려움과 기분 나쁨을 무수히 선사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두 손이 마주쳐야 박수가 나는 것이지 혼자 허공에 손을 흔드는 것은 '안녕'이라고 인사하는 것밖에 되지 않으니깐.


2020년 새해에 완전히 새롭게 출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여튼 일이 꼬일 대로 꼬인 것이 확실한 것이 11년을 넘기고 있던 차가 한계를 넘어서 차를 샀고 전세 만기가 겹쳐서 이사를 하며 대출도 늘렸습니다. (^^;;) 염려는 내일 하라고 하셨으니깐 내일 염려로 넘기고 '어떻게 시간을 보낼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결정했습니다.


글을 쓰고 아내와 육아를 함께한다. 오늘이 또 다른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