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고함과 나이듦
회사인으로 보낸 10년 #15
TV 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순간은 유시민 작가와 정재승 교수의 대화였습니다. 한 도시를 각자의 취향대로 여행하고 썰을 푸는 이 프로그램의 콘셉트상 다양한 의견이 쏟아집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관점을 가지고 한 마디씩 하니 대화는 참으로 풍성합니다. 상이한 분야에서 각자의 영역을 구축해왔기 때문에 의견이 다를 수 있고 또 가끔은 충돌할 수 있습니다.
냉동인간에 대해서 정재승 교수와 유시민 작가는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시민 작가는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관점에서 과학기술의 진보가 인류가 축적한 근원적인 윤리적 규범을 위협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반면에 정재승 교수는 과학기술의 진보가 인류가 믿고 있는 진리 혹은 가치관을 변화시킬 수 있는 수준까지 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유시민 : 생명 연장을 위해 자신의 몸을 300년 간 냉동인간으로 보관되었다가 이후 질병을 치료하겠다고 신청한 사람들은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정재승 : 그런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하긴 어렵다. 인생은 유한해서 의미가 있다는 현재 우리의 가치관이 과학기술의 토대가 바뀌었을 때 늘 진리가 아닐 수 있다. 만약에, 아이를 낳았는데 유전병에 걸려서 아이가 3살이면 죽는다고 가정해보자. 유전자 치료를 하면 아이가 기대수명 정도를 살 수 있다. 그러면 자연의 순리를 벗어난 일인데 우리는 치료를 하지 말 것이냐? 또, 5년만 냉동인간을 하고 치료가 가능하다면, 5년간 냉동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중략).....
유시민 : 음, 처음에 어리석음과 지혜로움 혹은 옳고 그름의 잣대로 끊을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정도를 낮추면 어디에 경계선을 그어야 될지 모르겠다. 어리석다고 표현한 것은 취소할게요. 이렇게 표현할게요. 나라면 그렇게 안 하겠다.
다음 주 방송을 보면 유시민 작가는 정재승 교수의 질문과 대화에 감탄을 하고 아래와 같이 대화를 이어갑니다.
유시민 : 지난주 냉동인간 관련 방송을 보며 처음에는 단순히 냉동인간에 대한 질문인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개인의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로 생각했다. 점차 질문을 수정하면서 과학기술의 변화 또는 발전과 우리가 가진 윤리적 명제 사이의 관계에 대한 몹시 중대한 철학적 질문이라는 생각이 막판에 들었다.
정재승 : 오우, 예~ 제가 그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저는 이게 방송에 나오면 저는 냉동인간 기술이 한국에 수입되면 제일 먼저 신청한 과학자로 나올까 봐 걱정했다. ^^
유시민 : (정재승 박사는) 얼마나 훌륭한 교사야! 저는 지난 몇 년간 이렇게 고차원적인 문답을 한 적이 없다. 그래서 우리 정 박사를 존경하게 됐어!
<사진출처 : tvN 알쓸신잡 프로그램 영상 캡처 화면>
오래전 방송이지만 기억의 뇌리에 남아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유시민 작가 개인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인격을 가졌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에게 본받고 싶은 점은 태도입니다. 손아랫사람에게 배울 준비를 하고 있으며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진짜 듣고 그 의견이 맞으면 자기 생각을 바꾸는 것.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
내 생각이 짧았다고.
"인간이 삶으로 경험하고 반복해서 굳어진 성공 방정식은 완고하다."
자기 경험에 갇혀 아랫사람과 타인을 평가하는 시간이 지속되면 어느 순간 주변에 사람은 없고 외로워집니다. 외로우면 그야말로 처절한 자기반성을 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그때에도 타인을 비평하고 비판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성공방정식이 우월하다고 믿고 그것이 통할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새로운 생각을 멀리하고 자기 경험에 기댑니다.
주변의 이야기를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 고집에 따라 살아갑니다. 완고함은 어쩌면 완전 고집 불통을 의미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이가 아니라 인격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나이가 많다고 나타나는 문제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젊은 꼰대도 못지않게 기가 막힙니다. 왜냐하면 자기 완고함을 가질 성공의 경험도 없고 생각의 깊이도 없는데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규율이 강한 대학의 학과를 보면 가관입니다.
나이 든 사람을 일컫는 말이 '꼰대'라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나이를 불문하고 자기 생각이 옳고 타인의 의견에 단 10초도 귀를 기울이지 못하는 사람이 진짜 골 때리는 '꼰대'입니다. 주변에 넘쳐납니다.
'내가 틀린 선택과 행동을 할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한다.'라고 생각하며 사안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꼰대 소리 듣지 않고 나이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선배라고 부를 이 하나 없는 곳에서
일하는 공허함
때론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는데 기댈 수 있는 좋은 어른 혹은 선배가 있었으면 합니다. 어차피 내가 선택하고 그에 따른 결과도 내 삶으로 받아내는 것이기에 후회는 남겠지만
더 나은 인간으로 해야 하는 선택이 있다면 진심으로 물어보고 싶고 의견을 구하고 싶은데 어떻게 된 일인지 꼰대라는 프레임 때문에 어른이 어른으로서 해야 할 말도 삼키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꼰대의 폐해가 이런 것은 아닌지..
사회적으로 꼰대에 대한 조롱은 그만큼 좋은 어른이 없다는 것을 뜻하는 반증이기도 하겠지만 조금 꼰대 짓을 하면 어떻습니까? 정말 좋은 어른이라면 그 정도는 애교가 될 수 있는 것인데.
꼰대라도 좋으니 더 좋은 어른이 다양한 영역과 분야에서 더 많았음 합니다. 마음을 담아 선배라고 부를 사람 하나 없이 일하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지난 몇 년간 크게 느꼈기에 더 그런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