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살, 회사에서 자리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회사인으로 보낸 10년 #14
회사가 어수선한 때가 있습니다. 기관장이 불명예 사퇴한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뒤숭숭한 시간에는 이 때다 싶어 불안과 염려가 머릿속을 가득 메웁니다.
'계속 다녀야 하나?'
'나는 성장하고 있는가?'
'조직이 문제인가? 내가 문제인가?'
'나는 여기서 뭐 하고 있지?'
끊임없는 질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날이 며칠간 지속됐습니다. 물론 일은 하고 있고 전화도 받으며 분주한 일과를 보냅니다. 그렇지만 앉아있는 누구 하나 마음이 편치 않은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평소에 마음이 어지러우면 도서관에 갑니다. 수많은 책 속에 잠깐 앉아있으면 책을 읽든 읽지 않든 편안함이 다가옵니다. 가깝게 지내는 도서관 직원 분이 들려오는 소문에 기대어 대략적인 상황을 알고는 한마디 던졌습니다. 너무나도 친절하게.
자리 보존하신 거예요?
멋쩍게 웃으며 '네, 뭐 그렇죠.'라고 대답하고 빨리 자리를 뜨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그래도 계속 출근하신 것은 자리 보존하신 거잖아요?
더 멋쩍게 웃으며 '아, 네.. 그렇죠.'라고 말하고 사무실로 왔습니다.
말문이 막혔습니다. 저를 무시하는 말투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염려하고 걱정하는 말이었습니다. 말은 그렇게 마음을 타고 오는 것이니깐.
섣불리 뭐라 대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누가 무엇을 묻어도 말하는데 막힘이 없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라고 말하는데 그럼에도 할 말이 없었고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너무나도 예의 바른말 한마디가 가슴을 찔렀습니다.
자리보존.
30대 중반을 지나는 하나의 단어가 '자리보존'이라니. 얼마나 꽉 막힌 답답함이 밀려왔는지 우유 없이 고구마를 5개 정도 먹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출근해서 일을 하며 자리를 보존하고 있는 것이 더 막막했습니다.
떨쳐내고 일에 집중하고 싶어 글을 읽고 또 쓰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알 수 없었던 이 한 마디가 가슴 어딘가에 계속 남아있었던 모양입니다.
말이 쌓여 생각을 이루고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지면 과거의 시간은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어떤 과거의 시간도 해석이 불가능합니다.
지금도 '자리보존'은 저에게 하나의 고민거리입니다. 주도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아직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자리보존은 생계이기에 너무 중요하나, 또 그것만을 위해 살면 스스로에게 씁쓸할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아직 자본주의에 완전히 적응을 못했나 봅니다.
날이 꽤 흐린 아침
비가 올 듯 말 듯한
습기가 더부룩한
꽤나 흐린 그런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