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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파즈 Feb 13. 2022

"청춘이네. 청춘이구만."

에세이 #68

 지난 금요일 오후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꽤 가깝게 지냈던 후배 Y였습니다. 어느덧 못 본 지 2여 년이 넘었고 그야말로 오랜만에 통화를 했습니다. 그 전에도 살갑게 통화하는 사이는 아니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나..라는 생각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잘 지내고 있냐는 근황을 확인하고 요즘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지 물었습니다. 그 사이 Y는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제주도로 떠났고 새롭게 일을 배우며 독립했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책임지는 삶을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해서 배워서 자신만의 가게를 내고 싶기도 하다는 말을 지나가듯이 했습니다. 보통 지나가는 말처럼 흘리는 말에 진심이 담기기도 합니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본가에 와서 부모님과 지내니 정말 편하고 감사한 부분이 참으로 많다고 느껴진다는 말을 하길래 꽤나 홀로 지내는 삶이 고단하구나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Y는 제 생각이 문득 나서 전화를 했습니다만 저는 통화를 하며 느낄 수 있었습니다. Y에게 지지와 격려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래서 잠시 생각하고 천천히 말했습니다.



1. 순전한 선의로 친절을 베푸는 사람은 5% 미만이다. 그마저도 네가 조직에 피해를 끼치지 않고 잘했을 경우에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순수하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을 귀하게 대해야 한다. 그래야 네가 귀한 대접을 받는다.


2. 퇴사 후 아주 좋은 선택을 했다. 어차피 우리가 사는 세상에 평생직장은 없다. 스스로 배우고 창조하지 않으면 쓰임을 잃고 순식간에 퇴보한다. 정년을 보장받고 산다고 하더라고 퇴직 후 30~40년을 더 살아가야 하는데 그것만으로 삶이 충분하지 않다. 그러니 지금 힘들더라도 네 일을 찾아 나선 여정을 선택한 것은 정말 현명한 것이다. 


3. 지금 배우는 일이 성공적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시도했으니깐 충분하고 또 실패해도 괜찮다. 정말 괜찮다. 지금은 실패해도 용서받고 격려받을 수 있다. 오히려 지금까지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인생이 더 위험하다. 주변에서 잘한다는 이야기만 듣고 성장하면 진짜 자신이 잘난 줄 안다. 나중에 현타 오면 극복하기 힘들다. 진심으로 말하는데 지금은 실패해도 된다. 다시 일어서면 된다. 60세에 퇴직하고 치킨집 열어서 망하면 다시 일어서기까지 얼마나 힘들겠나? 괜찮다. 창업해서 도전하고 망해도 된다. 괜찮으니깐 꽤 열심히 했으면 한다.


4. 크든 작든 지금 들어오는 돈을 절약해라. 지금 네가 가진 100만 원이 30대에는 1,000만 원, 40대에는 1억이 될 것이다. 지금 절약해서 돈을 모으면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만들 것이다. 쉽게 말해 누군가에 의해 주어지는 기회에 의존하지 않고 나 자신이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5. 전화 줘서 고맙다. 내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는 말이 고맙다. 누군가가 생각난다고 해도 전화하기가 쉽지 않다. 건조하고 사무적인 전화가 대부분이었는데 오랜만에 다른 언어로 통화를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네가 겪고 있는 시간이 쉽지 않은데 내가 생각났다고 하니 그것만으로 내가 존중받은 느낌이었다. 동시에 너를 통해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이 말이 너를 위한 내 진심이기도 하지만 사실 내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그래서 정말 고맙다.



 그날 저녁 아내와 저녁을 먹으며 Y한테 전화가 왔고 이런 상황이더라고 말했습니다. 차분히 저의 말을 다 듣고는 아내가 말했습니다.


청춘이네. 청춘이구만.


 청춘(), 얼마나 설레는 말입니까. 만물이 푸른 봄철. 싱그럽고 아름다우며 푸르디푸른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한 20대이기도 합니다. 역설적으로 정작 청춘은 깊은 절망의 시기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되는지 하나도 손에 잡히는 것이 없는 짙은 안갯속을 걷는 기분이기에 그렇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의 20대를 돌아봤는데 잘못과 실수가 넘쳤으며 부족함을 가리기 위한 교만과 오기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꽤 건방졌으며 감사할 줄 몰랐고 주변 사람들을 함부로 대했습니다. 까불다가 터진 적도 많고 호기롭게 나섰다가 망신당한 적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리 자랑할 것이 많지 않은 청춘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춘' 그 한마디가 귓가에 남아 설렘을 느꼈습니다. 청춘.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지요. 누구나 지나가고 한 때를 보내는 시간이지만 그 의미를 알면서 지나가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후회가 많을 수밖에. 


 Y가 보내는 지금이 아름다운 청춘의 시절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 또한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이겠지만 부디 그가 청춘을 지나가는 시간에서 어느 순간에는 꼭 화양연화를 경험하기를 바래봅니다. Y가 보내는 20대의 한 시절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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