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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파즈 Feb 02. 2023

새해 첫날, 딸과 입원하다.

아빠육아 #25

 새해 첫날, 첫째 딸과 오붓하게 병원 입원실에 있었습니다. 계속 마른기침을 하고 콧물이 흐르는 딸을 데리고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B형 독감입니다. 최소 5일간 입원해야 합니다."

"보호자는 코로나 검사 결과 음성이 나온 1인만 입실가능합니다."


 엄마 품을 떠나지 않는 둘째 딸을 두고 아내가 병간호를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급히 코로나 검사를 받고 간단한 짐을 챙겨서 보호자로 입원했습니다.


 1인실 병실은 먼저 독감 결과를 받아 든 이들의 몫이었습니다. 저희는 3인실 병동에 들어갔고 5일간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첫째 딸과 함께 보냈습니다. 링거를 꽂은 딸을 보는 제 마음이 애잔할 즈음 해야 할 일이 먼저 찾아왔습니다.


 하루 일과는 단순한 반복입니다. 아침에 깨워서 물 마시고 치카치카하고 밥 먹고 약 챙겨 먹고 자동차 놀이를 하고 점심밥을 먹습니다. 몸이 힘드니 낮잠을 재우고 일어나면 영상도 보고 놉니다. 저녁 식사를 하고 간식을 챙겨줍니다. 하루 종일 병실에만 있으니 몸이 처지나 에너지는 남아도는 딸은 잠들기 전까지 할 말이 얼마나 많은지.


 딸이 잠들면 이것저것 하리라고 마음먹었는데, 이윽고 바로 저도 곯아떨어졌습니다. 좁은 침대에 밀착해서 같이 잠을 자다 보니 링거줄이 엉켜서 새벽에 몇 차례 일어나서 아이를 똑바로 눕히고 링거줄을 펴주고 잠들기를 반복하면 이내 새벽 5시에 간호사분이 오셔서 체크하면서 잠을 깹니다.


 생각해 보니 누군가를 돌보는 일은 처음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이렇게까지 맞춰가면서 지냈던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것은 수많은 것을 포기하고 희생을 감내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그렇게 2일 차부터 저희 둘은 병원 생활에 적응했고 나름대로 재미를 찾아갔습니다. 똑같은 노래를 수십 번 부르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유튜브에 의지하며 각자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매일 똑같은 장난감 자동차를 활용해서 노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병원 실내를 산책하며 기린, 호랑이 그림을 보기도 했습니다. 딸은 스스로 주사를 맞으며 조금만 울었고 약도 잘 먹었으니 선물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저와 진지한 협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지루했지만 꽤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힘든 일이 생기면 반드시 좋은 일도 생깁니다. 병원에 머무르며 몸도 마음도 힘든데 오로지 둘 밖에 없으니 서로 의지하며 따뜻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2022년 12월 31일을 지나 2023년 새해 첫날 아침을 둘이서 함께 맞이하며 아침에 눈을 뜨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조이야,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아!"

"아빠는 너를 너무너무 사랑하고 너의 인생을 너무너무 축복한다."

"2023년의 첫 순간을 조이와 함께 보내서 참 감사한 마음이야."

"아빠가 병원에서 나가면 조이가 말한 변신 자동차 선물을 꼭 사줄게!"

"아빠는 조이를 만나서 더 재미있고 더 행복해. 정말 고마워!"


 첫째 딸은 에너지가 넘치지만 섬세한 감정을 가진 친구입니다. 아빠, 엄마가 하는 말을 귀담아듣고 그것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생각하는 표정을 종종 짓습니다. 아빠가 사랑한다고 열 번 정도 말하면 꼭 한 두 번은 자기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아주 기분이 좋을 때는 먼저 와서 사랑한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따뜻한 새해 첫날 아침을 보내자마자 아침밥을 먹이느라 꽤 고생했습니다. 그것이 당연한 육아의 과정이고 일상이니깐요.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5일은 또 금방 지나갔습니다. 퇴원을 준비하는 날 아침에 5일간 담당하셨던 간호사분이 오셔서 말했습니다.


"아이가 아빠랑 씩씩하게 잘 지내네요. 보통 병원에 들어오면 부모와 아이의 관계를 숨길 수가 없는데, 평소에 시간을 많이 보내시나 봐요."


 퇴원 준비로 짐을 싸며 정신이 없었던 저는 순간 당황했습니다. 첫째 딸이 태어나고 바쁘다는 이유로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고 추억을 많이 쌓지도 못했는데.. 그저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이 좋았던 딸이 노력하고 애를 쓴 것인데, 그 덕분에 뜻하지 않게 좋은 아빠가 되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평소에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추억을 쌓아갔다면 조금은 당당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알기에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아이를 돌본 것이 아니라, 아이가 나를 받아주고 있었구나."


 딸은 바쁘고 피곤하다는 아빠를 바라보며 나를 기다리고 받아주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로서 나의 희생과 노력만 생각했는데, 나를 기다리는 자녀의 마음은 몰랐구나..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옆에서 퇴원을 기다리며 병실 침대에 앉아있는 딸을 보며 꼭 안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안겨있던 딸이 저를 안아주며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습니다. 아빠가 잠들기 전에 등을 토닥토닥해줬던 것을 따라한 겁니다.


 작은 손으로 제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는데 저도 모르게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그만큼 딸이 부쩍 성장했고 이렇게 나를 기다리고 받아주며 함께하는 시간도 무한하지 않겠구나.. 지금 이 시간은 내 삶에 찾아온 소중한 순간이겠구나 싶었습니다.


 2023년 새해 첫날, 딸과 함께 고스란히 보낸 5일을 잊기 힘들 겁니다. 지루하고 심심한 시간이었으나 저에게는 참으로 따뜻하고 충만한 시간이었습니다.


 부디 시간이 흘러 사랑하는 딸이 저와 비슷한 마음으로 이 시간을 기억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병원은 자주 오지 않아도 될 만큼 건강하게 자라기를 기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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