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딸이 처음으로 우리 가족을 그려서 저에게 내밀며 말했습니다. 그림 속 파란색은 제가좋아하는 색깔입니다. '아빠가 좋아하는 파란색으로 그린 그림이야!'라고 말하는 딸을 바라보며 참 사랑스러웠습니다.
인간은 나를 인지하는 시기를 지나 타인과 상호작용하며 성장합니다. 성장의 시기에 '가족'의 경계를 설정하며 '가족'에 대한 개념을 갖춰갑니다.
늘 궁금했습니다. 딸이 느끼는 '가족'이라는 감정과 느낌은 무엇일까? 아직 물어보지 못했지만 조금 더 기다렸다고 꼭 묻어보고 싶습니다.
그림을 보며 딸이 생각하는 가족의 범위는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 명씩 왜 여기에 있는지 설명하는 것을 들으며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그렇지. 우린 가족이지. 깊은 인연으로 맺어진 가족이지.
아빠와 딸로 만난 우리 인연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이 가능할까? 우리는 앞으로 어떤 삶을 서로 공유하며 살아갈까? 딸이 성장하면서 계속해서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어떤 아빠가 되는 게 좋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습니다.
저는 어릴 때 그토록 '사랑한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으나 많이 듣지 못했습니다. 때때로 그것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심리적 갈증을 만들었고 그 갈증은 뜻하지 않게 자주 저를 찾아와 불필요한 감정만 만들어냈습니다. 그래서 더 인정받고 더 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무의식적인 욕망만 커져 나를 괴롭히기도 했습니다.
조용히 새근새근 잠들어있는 자녀를 바라보면 기쁨이 넘치고 감사한 마음이 저절로 생겨납니다. 그저 내 앞에 누워있는 조그만 생명이 숨을 쉬고 움직이는 것 자체가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자녀의 성장을 바라보는 과정은 즐겁고 유쾌합니다. 무엇보다 신기한 경험입니다. 딸이 나를 알아보고 부르며 달려와 안기고 웃고 함께 잠드는 시간속에 '우리만의 관계'가 쌓여갑니다. 그렇게 우리는 차츰 가족으로 이어집니다.
삶의 많은 고통은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옵니다. 반대로 큰 기쁨 또한 가족으로부터 옵니다. 시간과 공간에 속박된 인간이 결코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인연이 '가족'입니다. 윤여정 배우는 한 인터뷰를 통해서 인연에 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다.
"길 지나가는 사람하고 원수 될 일이 있니? 가까웠던 사람이 원수가 되는 거지."
가까운 관계는 그만큼 주의를 기울이고 조심하지 않으면 '독'이 됩니다. 그러니 가까워질수록 서로의 거리를 확인하고 각자의 영역을 넘지 않으려는 각별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부모가 모든 것을 개입하던 영유아기를 지나서 자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갈 딸을 보며 다시금 생각합니다
"최소한 원수는 되지 말자."
따뜻한 가정을 꾸리고 유지하는 것.
삶의 가장 중요한 소명이라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가정을 꾸리는 겁니다. 내 힘으로 가족을 건사할 능력을 갖춰서 자녀를 양육하는 것.
짧은 몇 줄로 삶의 소명을 정의하기 어렵지만 이만큼만 해내도 꽤나 괜찮은 인생입니다.
무엇보다 자녀들이 크면서내가 성장한 가정이 따스한 곳이었다고 느낀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다 나이가 들어 내 삶을 정돈하는 시기에 이르러 자녀들이 언제나 아빠를 찾아오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면.. 생각만으로도 행복할 겁니다.
파란색 크레파스로 그린 가족들이 서로 손을 맞잡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이어져있고 그 인연의 끈을 따라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어제 오후 햇살이 따스해 오랜만에 겨울 코트를 벗고 걸었습니다. 유난히 추웠던 2022년의 겨울이 지나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하나의 단락이 끝나는 시기이겠지요.
2023년 봄, 새로운 시작을 하는 다섯 딸이 조금만 좌충우돌하고 조금만 아프고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래봅니다.
아빠가 언제나 기도하고 지지한다는 것, 무엇보다 너의 가장 열렬한 팬이라는 것을 꼭 알아줬음 하는 마음도 전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