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육아# 28
부모가 되면 아이로부터 배웁니다. 내가 키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반대입니다. 자녀가 던진 한마디 말에 삶을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딸 : 아빠~ 우리 가족 그려줘.
나 : 가족? 고은이가 생각하는 우리 가족은 누구누구야?
딸 : 아빠, 엄마, 나, 동생 이렇게 네 명이야.
나 : 아, 그래? 그럼 네 명을 그릴께.
딸 : 아, 맞다. 할머니도 있잖아. 그런데, 할아버지는 왜 없어?
나 : 맞아. 할머니들도 그려야겠다. 할아버지는 아빠의 아빠인데, 아빠가 어렸을 때 먼저 돌아가셨어.
딸 : 왜 돌아가셨어?
나 : 많이 아프셔서 돌아가셨는데 우리 고은이, 나은이를 못 보고 가셔서 마음이 참 아프실 거야.
딸 : 응... 나도 보고 싶다. 할아버지.
나 : 응, 아빠도 많이 보고 싶어.
어느덧 성장한 딸은 가족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사랑받고 사랑을 나누는 과정을 겪으며 특별한 감정을 교류하는 관계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딸의 입에서 툭 나온 '우리 가족'이라는 단어가 저에게 잔잔한 감동을 줬습니다. 생명이 태어나 처음으로 경험하는 공동체 속에서 하나의 씨앗이 심겨 자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퇴근하고 저녁을 먹고 동네를 산책하고 돌아오며 딸은 말했습니다.
"엄마, 아빠랑 데이트하니깐 재미있다."
딸이 좋아하는 왕관 장난감을 사서 더욱 재미있게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요즘 들어 부쩍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에 재미를 느끼고 있나 봅니다. 무한한 사랑을 느끼는 시간임을 소중한 딸이 본능적으로 알고 있음을 느낍니다.
가족만큼 어려운 관계가 있을까요? 사랑하나 분노하는 이 복잡 미묘한 인연의 고리를 이해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사연 없는 집이 있을까요? 그만큼 가족을 형성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매번 느끼지만 아빠로서 부족함이 많은 저는 고민이 깊어집니다. 집착하고 집착하는 아비의 마음을 어떻게 내려놓을지.
그러고 보니 무심결에 뱉은 저의 말에 조금 놀랐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0여 년이 흘렀습니다. 그 시간 동안 저 스스로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물론 그렇게 말할 대상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딸에게 말했습니다. 아빠도 많이 보고 싶다고.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말하면 되는 것인데, 스쳐가듯 딸에게 마음을 전했습니다. 진심이 불쑥 제 삶에 자연스럽게 찾아왔습니다.
무더운 여름 푸른 잎의 색이 깊어가는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