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부부의 프레임.
결혼 전,
나의 유일한 도피처이자
치유는 '목적지 없는 버스 여행'이었다.
생각이 머리끝까지 차오를 때면
아무 번호의 버스에 올라타
이어폰을 꽂고 창가에 앉았다.
나에게 버스 창문은
그저 투명한 유리가 아닌
연속된 영화 필름이었다.
프레임 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은
각자의 스토리를 가진 주연 배우가 되었고,
내 귓가에 흐르는 음악은
그 장면의 완벽한 OST가 되어
분위기를 시시각각 바꾸어 놓았다.
그렇게 나만의 영화를 감상하던 어느 날,
'인생극장' 같은 찰나의 장면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어느 정류장에서 내리던 한 노부부였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기둥을 잘 잡으라며
무뚝뚝한 주의를 주셨다.
흑백 영화처럼 투박한 음률의 말투였지만,
그 속에 담긴 웃고 있는 눈과
할머니에 맞춰진 몸짓은 더없이 다정했다.
할아버지의 시선은 오로지 할머니의 발끝에 머물렀고,
어느새 먼저 내려 버스 기둥보다 더 단단하고
안전한 '손'을 내미셨다.
포개진 두 손이 버스 계단을
한 칸씩 톡, 톡...
조심스레 딛고 내려오는 모습.
그것은 먼 옛날,
왕자가 마차에서 내리는 공주의 손을 잡아주던
그 눈부신 손길이 긴 세월을 통과해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10년도 더 지난 이 장면이 왜 어제 일처럼 선명할까.
이유는 그다음 장면에 있었다.
버스에서 완전히 내려서도
두 분은 포갠 손을 놓지 않고 같은 보폭으로 길을 걸어갔다.
마침 바람은 선선했고 푸른 잎새 향이 감도는 날이었다.
아니,
어쩌면 두 분의 뒷모습이 그날의 공기를 그렇게 만드셨는지도 모른다.
푸르른 배경 속을 천천히 걷는 노부부의 뒷모습 위로,
갓 시작한 연인처럼 설렘 가득한 노래가 이어폰에서 흘러나왔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 어떤 젊은 커플도 그들만큼 완벽한 장면을 만들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생면부지의 남이 만나 가족이 된다는 것,
그리고 생의 끝까지 그 길을 함께 걷는다는 것.
나도 세월에 적당히 익어,
같이 익어버린 그 손을 맞잡고 싶다.
이제 '빠른 세월은 더 이상 우리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천천히, 아주 나란히 걷고 싶었다.
그 완벽한 프레임은
여전히 내 마음속 필름지에서 지워지지 않는
명장면으로 남아있다.
지금 우리 부부의 걸음 속도는 나란하지 않다.
언젠가 우리에게도 빠른 걸음이 숙제가 아닌 날이 올까.
그때가 되면 남편도 앞서가는 본능을 잠시 내려놓고,
그 노부부처럼 내 거친 손을 덥석 맞잡아줄까 기대해 본다.
하지만...
차를 사랑하는 남편의 미래를 상상해 보면,
우리 부부의 노후 필름은 조금 다른 장르일지도 모르겠다.
두 손 맞잡고 걷기보다,
한 손은 그토록 좋아하는 차의 운전대를 잡고,
다른 한 손은 생명수 같은 '아. 아'를 쥐고 있을 남편.
그 곁에서
나는 아마 내 왼손과 오른손을
스스로 맞잡은 채,
예나 지금이나 그저 무사고 안전 운전만을
간절히 기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노부부의 맞잡은 손보다,
어쩌면 내 두 손 모은 기도가 더 깊어지는 것.
그것 또한 우리 부부만이 써 내려갈 수 있는 투박하지만 진실한 '명장면'일 테니까.
"비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