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파수꾼이 삼킨 비밀

나의 흉터에서 찾다.

by 하히호


사람마다 마음속에
오래 묵혀둔
결핍의 조각 하나쯤은 품고 산다.

어떤 결핍은
태생적으로 주어지기도 하지만,
어떤 결핍은
나의 가장 연약한 부분이
세상의 거친 모서리에

부딪혀 깎여나가며 생기기도 한다.

나의 오래된 결핍은
부모님의 부재나 부족함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부모님을 너무나 사랑해서,
그 사랑에 흠집을 내고 싶지 않았던
'서투른지만 지킴 방법'이 그 시작이었다.

나는 우리 오빠와 달랐다.
학교에서 겪은 즐거운 일 외에는

엄마에게 입을 떼지 않았다.

사람들은
혹시 유대관계가 부족해서라고
짐작할지 모르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다.

부모님께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존재인 '나'가 밖에서 함부로 다뤄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나보다
몇 배는 더 아픈 상처를 입을 것을 자명했기 때문이다.

나는 특히 엄마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나의 아픔을 삼키는 어린 파수꾼이 되기로 했다.

나의 첫 결핍이 싹을 틔운 곳은
5학년 교실이었다.

4학년 때까지
나의 학교생활은 햇살 가득한 정원 같았다.

발표도, 친구, 선생님관계도

무탈하게 행복했다.

하지만

5학년 담임 선생님이라는

거센 가뭄을 만나며 모든 것이 변했다.

그녀는 아이들의 꿈을 키우는
교육자가 아닌,
부모의 배경을 잣대 삼아
아이의 흠집을 찾아내는 사냥꾼에 가까웠다.

원하는 '성의'가 보이지 않으면,
그녀는 어린 영혼을 공개적으로 무너뜨려 부모가 달려오게끔 만들었다.


하지만 사람 보는 눈은 부족했나 보다.

그녀는 몰랐을 것이다.

내 앞의 오빠가 뿌린 스펙터클한 에피소드들로

엄마가 마음 졸이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만은 엄마의 평온한 섬이 되겠다'라고
다짐한 12살 여아의 결심을 말이다.

선생님의 가혹한 공개 망신은 나의 자존감을 꺾는 것을 넘어, 이제 막 뻗어 나가려던 마음의 뿌리를 통째로 뽑아버렸다.

그때의 나는 나를 괴롭히는 선생님보다,

잘나지 못한 탓에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할지도 모른다는 자책감에

밤잠을 설쳤었다.

선생님의 눈에는 끝까지 버티는 독한 아이였겠지만,

사실 나는 사랑하는 나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던 작은 아이였을 뿐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
그때의 결핍은
나의 육아라는 새로운 강줄기를 만났다.

내가 뽑혔던 그 뿌리의 자리에,
나는 이제 내 아이들에게

나의 결핍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세 가지 약속을 심는다.

첫째, 어떤 순간에도 기죽지 말 것.
둘째, 세상 누구보다 본인을 먼저 사랑하고 자책하지 말 것.
셋째, 즐거운 일뿐만 아니라 힘들고 속상한 일도 언제든 엄마라는 항구에 풀어놓을 것.

나는 오늘도 나의 어린 시절을 거울삼아 비춰본다.

내가 불편했던 기억,

그때 간절히 바랐던 것들을

토대로 나만의 육아법을 정성껏 빚어낸다.

과거의 내가 겪은 결핍은

이제 아이들의 삶을 채우는

가장 풍요로운 거름이 되어가고 있다.



"그때의 나에게 건네지 못한 위로를

이제 내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