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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켠 Sep 23. 2024

사슴이 해금을 혀거를 드로라

고려가요를 인용한, 왕후-호위무사-스님이 된 왕족의 삼각관계

구름처럼 희고 연기보다 하얀 벽을 본다. 바위보다 무겁고 얼음처럼 단단한 침묵을 지킨다. 나는 이 밀폐된 암자에 유폐되었다. 하루 종일 면벽하고 묵언수행을 한다. 흰 벽은 새벽의 푸른 빛을 온몸으로 받아냈다가 저녁이면 붉은 빛을 토해낸다. 벽을 마주하면 어느새 기억도 나지 않는 어머니의 얼굴이 그려진다. 그 얼굴을 몰아내려 도리질을 하고 눈을 감아도 얼굴은 끝까지 내 눈꺼풀 안에 숨어 떨어지지 않는다. 난초처럼 청초하고 연꽃처럼 고고한 얼굴. 손끝으로 내 얼굴을 더듬어 본다. 어머니는 내 얼굴과 어디를 얼마나 닮았을까. 어머니는 어디 계실까. 어머니도 내가 보고프실까. 아니면 이미 연등을 들고 탑돌이를 하던 사람들 중에서 내 얼굴을 훔쳐보고 가셨을까.


내 어머니는 한낱 궁인이라고 했다. 폐하께서 즉위하실 적에 폐하의 형제들은 사사되거나 유배되거나 출가당했다. 나는 어머니가 호족의 딸이 아니라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젖이나 다 떼었을까 싶은 어린 나이에 가사와 장삼을 입었다. 매일 경을 읽고 명상을 한다. 파르라니 머리를 깎는다. 속세와 유리된 산 속 작은 절이 익숙해질 만도 한데 나는 아직도 산 아래 세상을 기웃거리고 암자에 앉아 대숲 속에서 사슴이 해금을 켜는 소리를 듣는다. 암자의 흰 벽에 또래의 사내들처럼 각시와 농사를 짓고 어린 것을 안아 올려 재롱을 보는 상상을 그린다. 그럴수록 고집스레 입을 꾹 다물고 흰 벽을 노려본다. 모든 게 깨끗하게 지워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노을이 내려앉던 어느 날, 주지스님이 부르셨다.


“찾아온 손님이 계시니, 모시거라.”


대웅전 앞 마당에 불꽃처럼 노을이 타올랐다. 옥으로 깎아 만든 듯 희고 고운 사람이 있었다. 손가락으로 얼굴을 만지면 차갑고 매끄러울 것 같았다.


“유비자(有非子)입니다.”


미성의 목소리가 귀에 감겼다. 족하께서 유비자라면 나는 무시옹(無是翁)인가. ‘유비자’나 ‘무시옹’이나 둘 다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 법명을 발음했다.


“’정윤’입니다.”


왕후의 아들을 의미하는 ‘정윤’과 같은 음이었다. 유비자의 시선을 따라 간 대웅전에는 여인이 있었다. 먹구름처럼 풍성한 머리채를 금으로 장식하고 수 놓은 비단옷을 입은 인형 같았다. 유비자가 가만가만 속삭였다.


“선우 씨의 따님이십니다.”


선우 씨라면 유력한 호족의 따님이었다.


"입궁하신지 오래 되셨으나 아직 회임을 못 하시어 백 일 동안 불공을 드리러 오셨습니다.”


“왜 회임을 못 하시었습니까.”


“초야 이후로 폐하께서 찾지 아니하셨습니다. 궁에는 호족의 딸이 많고 많습니다.”


“폐하께서 영영 궁주 마마를 찾지 아니 하시면 어찌 되십니까.”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끈이야 끊어지겠습니까.”(고려가요 '정석가')


“족하께서는 여기서 무얼 하십니까.”


“선우 씨 집안의 사병으로서 선우 씨의 따님을 호위하고 있습니다.”


성큼 대웅전으로 올라섰다. 부처님 앞에서 여인이 한 번 절 할 때마다 염주알을 굴렸다. 백팔, 이백십육, 삼백 이십 사…여인은 한 시진 넘게 쉬지 않고 꼬박 천 팔십 배를 했다. 이 절에 들어왔을 때부터 지니고 있던 염주 팔찌는 이제 너무 낡아서 열 바퀴를 돌리자 끈이 끊어져 버렸다. 대웅전 바닥에 염주알이 후두둑 떨어졌다. 절을 마친 여인이 염주알이 떨어져 구르는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황급히 대웅전 바닥을 기어 다니며 염주알을 주웠다. 여인의 이마에 구슬 같은 땀방울이 맺혔다. 유비자가 비단 수건으로 여인의 땀을 닦아주었다. 노을은 이제 보랏빛으로 잠들어가고 머룻빛 하늘엔 은빛 별들이 보석처럼 빛났다. 나물반찬과 된장국으로 늦은 저녁을 차려 냈다. 궁에서 드시던 음식에 비하면 초라한 밥상이었다. 절간에는 여분의 수저가 없어 분지나무로 깎은 수저를 여인 앞에 가지런히 놓았다. 유비자가 분지나무 젓가락을 가져다가 자기 밥그릇에 꽂고 봇짐에서 은수저를 꺼내 여인에게 드렸다.


“부처님의 자비가 사찰의 크기에 따라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이름난 절에서 치성을 올리시는 게 더 낫지 않습니까. 왜 굳이 이런 산골짜기에 있는 조그만 절까지 먼 걸음하셨습니까.”


“용의 후손을 낳아야 합니다.”


여인이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다 먹은 밥상을 들고 나갔다. 여인은 나를 따라 암자까지 좇아왔다. 유비자가 뒤를 따랐다. 유비자는 문 밖에 남고 여인은 암자에 들어와 요를 깔고 이불을 덮었다. 기가 차서 말을 던졌다.


“불공을 드리러 오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여인은 나를 똑바로 보며 또렷하게 말했다. 여인의 눈에 내 눈동자가 어떻게 비칠지 궁금해졌다.


“홀로 절에서 백 일간 치성을 드리면 회임을 한다는 게 뭘 의미하겠습니까.”


상의를 벗어 옆구리를 보여주었다.


“이걸 원하십니까.”


손가락으로 가리킨 자리에 비늘이 있었다. 왕 씨에게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피부였다. 이 비늘을 두고 왕 씨는 용의 후손이라고들 했다. 여인은 손을 뻗어 비늘을 하나하나 만져 보았다. 물 밖에 나온 물고기가 된 기분이었다.


“만일 백 일 내에 회임하지 못 하신다면 어찌 됩니까.”


“유비자가 저를 베고, 선우 씨의 다른 딸을 다시 궁에 들일 것입니다.”


유비자가 허리에 차고 있는 장검을 보았다. 그 검으로 이 여인도 벨 수 있을까.


“그 따님도 이 암자에 오시게 됩니까.”


“아마 그럴 겁니다.”


“제가 누군지, 어디에 있는지는 어찌 아셨습니까.”


“자당께서 본디 선우 씨 집안의 노비셨습니다.”


“제 모친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어릴 적에 입궁하셔서 알지 못 합니다.”


“지금은 어디 계시는지요.”


“출궁하신 이후로는 알지 못 합니다.”


권문세가에서 계집종의 행방을 챙길 리는 없었다. 아마 어머니도 선왕 폐하께서 돌아가신 후에 나처럼 어느 사찰에 몸을 의탁하셨겠지.


“소승을 이 암자에 은거하도록 한 것도 선우 씨 집안의 뜻이셨습니까. 이런 용도로 사용하시려고.”


“그렇습니다.”


선우 씨의 따님이 낳으실 아기는 어머니와 함께 지낼 수 있으실까. 사약을 마시고 피를 토했던 나의 이복형제들과 그 모습을 지켜보며 피눈물을 흘렸던 호족의 따님들. 유배 떠나는 아드님을 뒤따르던 궁주들. 지금의 폐하께서 서거하시고 정윤께서 용포를 입으시면 똑같이 펼쳐질 풍경이었다. 그 중에 선우 씨의 따님이 계시겠지. 선우 씨는 자신의 딸이 낳을 용의 후손이 보위에 오르리라 믿고 여기저기에 줄을 대고 함정을 놓겠지만.


“제 이름은 ‘효’입니다. 그렇게 부르시면 됩니다.”


선우 씨 가문의 여인이 한 이불을 덮고 말했다.


“’효도하다’할 때의 효 입니까.”


“새벽을 뜻하는 효 입니다.”


베개를 베고 팔 한 쪽을 효에게 베개로 내 주었다. 밖에서 산짐승인 양 유비자의 기척이 났다. 창에 유비자의 그림자가 대나무 그림자처럼 드리워졌다. 밤새 밖에 서 있을 작정인가. 남은 팔 한 쪽을 유비자에게 내 주고 싶었다.


다음날도 여느 날처럼 흰 벽을 마주했다. 효는 내 옆에 앉아 내가 보는 벽을 함께 보았다. 효의 숨결이 대숲에 부는 바람처럼 귓가에 와 닿았다. 유비자는 대나무처럼 꼿꼿하게 서서 암자를 지켰다. 설마 지난 밤을 꼬박 새운 걸까. 마음 속으로 천 팔십 배를 올렸는지 한 시진하고도 반의 반 시진이 지나서 효가 물었다.


“면벽수행을 하시면서 무엇을 깨달으셨나이까.”


“마음이 지옥이면, 세상이 다 지옥이라는 것.”


내 어미의 곤궁을 원망하고 나를 이 궁벽한 암자로 내몬 이들을 원대했다.


“묵언수행을 하시면서 무엇을 깨달으셨나이까.”


“마음이 얼음이면, 말도 묵음이라는 것.”


효는 유비자에게 물감과 붓을 청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유비자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꽃잎을 짓이기고 열매를 짓찧고 돌을 갈아서 물감을 만들었다. 묵언수행을 하듯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효는 노래를 부르며 흰 벽에 그림을 그렸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고려가요 '청산별곡')


북쪽 벽에 청산이 들어섰다. 산 속에 있는 암자 안에 산이 왔다. 효가 머루를, 유비자가 다래를 따 먹었다.


“우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 니러 우러라 새여, 널라와 시름한 나도 자고 니러 우니노라. 가던 새 가던 새 본다. 물 아래 가던 새 본다. 잉무든 장글란 가지고, 물아래 가던 새 본다.”(고려가요 '청산별곡')


남쪽 벽에 새가 날아왔다. 효가 새처럼 노래 불렀다. 새 등에 올라타 물 아래를 날았다. 손에 이끼 묻은 쟁기가 들려 있었다. 머리를 깎지 않았다면 수행 대신 쟁기질을 했겠지. 저 멀리 새참을 들고 오는 이가 있었다.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왔다. 너무 멀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두 벽에 그림을 그렸는데 낮이 지났다. 올 이도 갈 이도 없는 밤은 또 어찌하리오[5]. 유비자가 효의 노래를 받아 후렴구를 불렀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고려가요 '청산별곡')


물감이 채 마르지 않았고 밤공기도 아직 차갑지 않아 문을 열고 자기로 했다. 효는 내 비늘을 만지작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유비자는 잠을 쫓으려는 듯 암자 마당에 잔돌을 던졌다. 유비자에게 암자 안으로 돌을 던지라고 하고 싶었다. 유비자가 던지는 돌을 맞아주고 싶었다. 어디다 던지는 돌일까. 누구를 맞히려던 돌일까. 미워할 이도 사랑할 이도 없이 맞아서 울고 있는데.(고려가요 '청산별곡')


다음 날도 효는 노래를 부르며 벽에 그림을 그렸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바다에 살어리랏다. 나문재, 굴, 조개랑 먹고 바다에 살어리랏다.”(고려가요 '청산별곡')


동쪽 벽에 파도가 치고 갯벌이 드러나고 물큰 짠내가 났다. 물감을 만들던 유비자의 손이 붓을 든 효의 손과 맞닿았다가 떨어졌다. 가 본 적 없는 바다에 먹어본 적 없는 굴과 조개를 떠올리니 입 안에 짠맛이 돌았다. 환속하고 살생을 할 수 있게 되면 나무 한 그루 없는 바닷가 마을에서 썰물이면 굴과 조개를 캐고 밀물이면 고기를 잡아 바지락으로 국물을 낸 밥상에 조기를 노릇하게 구워 분지나무로 깎은 젓가락으로 생선 가시를 발라 각시의 밥 위에 얹어 줄 수 있을까.


“가다가 가다가 드로라. 에정지 가다가 드로라. 사슴이 장대에 올라서 해금을 혀거를 드로라.”(고려가요 '청산별곡')


서쪽 벽에 대나무 장대 끝에 앉아 해금을 켜는 사슴이 그려졌다. 쏴아아 대숲이 바람에 흔들렸다. 내가 달아나고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사슴이 해금을 켜는 소리를 대숲에 감춰둔 걸 아는 걸까. 불상을 칠할 금으로 사슴의 몸을 만들고 대나무로 숯을 구워 사슴의 심장에 넣고 물을 끓이면 사슴이 깽깽 해금 켜는 소리를 냈다. 대나무 장대 위에서 사슴이 해금을 켤 때마다 바랑에 이것저것 챙겨 넣었다가 풀기를 반복했다. 내가 기르고 먹인 사슴은 적토마나 한혈마보다도 빠를 것이다. 언젠가 이 암자를 떠나게 될 때 사슴을 타고 달리면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 효가 내 아이를 품지 못 한다면 유비자가 효를 추격할 때 사슴을 장대에서 내려 효에게 내줘야 하리라. 효는 사슴을 타고 멀리 저 멀리 망연히 가야 하리라.


“가다니 배 부른 독에 설진 강수를 비조라. 조롱곳 누로기 매와 잡사와니, 내 엇디 하리잇고.”(고려가요 '청산별곡')


효는 독한 술을 빚는 곳에서 사슴에서 내려 정착하리라. 산다는 건 술보다 맵다는 걸 깨달으면서. 나는 효에게 용의 후손을 안겨줄 수 있을까. 언젠가 효와 재회하게 될까. 아니면 유비자가 끝내 효를 찾아 낼까. 효를 찾아 내기도 전에 선우 씨의 다른 따님이 이미 입궁하실까. 나는 환속을 하고 평민이 되어 유비자와 함께 선우 씨의 따님을 모시게 될까.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고려가요 '청산별곡')


유비자와 효가 동기간처럼 나란히 웃으며 후렴구를 불렀다. 유비자는 배부른 독에 독한 술을 받아왔다. 합환주를 마시듯 효와 독주를 나눠 마셨다. 거푸 술을 마실수록 내가 누군지 잊혀 졌다. 유비자는 내가 권했는데도 한 모금의 술도 입에 대지 않았다. 효가 내 법복을 끌어내렸다.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효가 나를 달랬다.


“원효대사께서도 요석공주에게서 설총을 얻으시지 않았습니까.”


주지스님께서 효를 모시라고 하신 말씀은 이런 걸 의미했겠지. 주지스님이 내 손목을 쥐고 소문이 이 절 밖에 나며 들며 하면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새끼 상좌 네 말이라 하리라. 그 잠자리에 자러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고려가요 '쌍화점')


방 안으로 달빛이 들어 효의 나신이 은은하게 빛났다. 멀리 대숲에서 사슴이 대나무 장대 끝에서 해금을 켰다. 장지문에 손가락으로 구멍을 뚫었다. 유비자의 눈동자가 다가왔다. 효의 손가락이 내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훑었다. 내 몸은 효에게 눈은 유비자에게 있었다. 효가 옆구리의 비늘을 간질였다. 밖에서 돌 던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유비자의 고요한 숨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효의 숨결에서 술냄새가 났다. 물에 빠진 듯 숨이 가빠왔다. 효의 희고 고운 손이 비늘을 헤아릴 때 헉 하고 숨을 삼켰다. 유비자가 꿀꺽 침을 삼켰다. 달뜬 숨이 방 안을 가득 채울 때쯤 해가 떠올랐다.


유비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효의 세숫물을 들였다. 땀에 젖은 귀밑머리를 감겨 주었다. 효는 여상하게 유비자에게 몸을 내맡겼다. 유비자는 익숙하게 효의 손발을 닦아주고 침의를 갈아 입혀 주고 팔찌를 채워 주고 가락지를 끼워 주고 머리에 기름을 발라 주었다. 지난 밤에 아무 일도 없었고 아무 것도 듣고 보지 못 했다는 듯이. 유비자는 세숫물을 버리다가 나뭇가지에 앉은 새를 바라보았다. 우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 니러 우러라 새여, 널라와 시름한 나도 자고 니러 우니노라.(고려가요 '청산별곡')


효는 아침상을 물리고 대웅전에 나아가 백팔 배를 올렸다. 효의 옷자락이 펄럭일 때마다 마음이 일렁였다. 유비자도 나와 같은 마음일까. 곁눈질로 본 유비자에게서 면벽하고 묵언수행하던 나를 보았다. 조롱곳 누룩이 매와 잡사와니, 내 엇디 하리잇고. 엇디 하리잇고. (고려가요 '청산별곡')지난 밤 마시다 남은 독주를 유비자에게 권했다.


“백 일이 지나면 이 곳을 떠나시는 겁니까.”


유비자는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선우 씨의 따님께서 무사히 회임을 하신다면.”


“만약 따님을 낳으신다면,”


“그럼 다시 이곳에서 치성을 올리시겠지요.”


“회임을 못 하신다면 정말로 효를 베실 수 있으십니까.”


유비자는 침묵했다. 효와 유비자를 이끌고 산속을 누비며 머루랑 다래를 광주리 가득 따 왔다. 유비자는 조금이라도 크고 잘 익은 것을 효의 입에 넣어 주었다. 효는 원래부터 그랬던 듯이 새처럼 입을 벌려 받아먹었다. 유비자의 손과 효의 입술에 검게 머룻빛 물이 들었다. 효는 남은 머루와 다래를 부처님 전에 올렸다. 먹기 전에 바쳤어야지 다 먹고 난 다음에 생각이 나면 어쩌나. 그래도 아예 입을 싹 닦은 것보다는 낫겠지. 주지 스님은 나를 효에게 내주는 대가로 무엇을 받으셨을까.


홀로 대숲으로 가서 금빛 사슴에게 대나무숯으로 먹이를 주고 깡깡이 소리를 들었다. 내 어머니는 나를 빼앗긴 걸까, 보내 준 걸까, 포기한 걸까. 어머니에게도 유비자가 있었을까. 효는 무사히 옆구리에 비늘이 돋은 아기와 함께 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정말로 궁으로 돌아가고 싶을까. 효가 궁으로 돌아가면 유비자는 어찌 되나. 말없이 많은 생각을 했다.


사슴을 타고 해금 켜는 소리를 들으며 어머니 계신 곳으로 가리라. 어머니는 나를 반기실까. 나는 그곳에서 머리를 기르고 벼랑에 버린 빗을 주워 머리를 빗고 초가집에 노란 국화꽃을 피워 국화주를 마시며 보리수나무를 꺾어 지니실 한 분을 찾으리로다. 초겨울에 봉당 자리에 홑적삼을 덮고 누워 그리운 이를 그리며 살아가는 삶이란 슬프겠거니.(고려가요 '동동')


어쩌면 어머니는 내가 사슴이 장대에 올라 해금을 켜는 소리를 듣는 동안 무쇠로 황소를 만들어다가 쇠나무산에 놓아 기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소가 쇠풀을 먹어야(고려가요 '정석가') 나를 만나지이다, 소원을 빌면서.


아니면 백 일 내에 회임하지 못 한 효가 사슴을 타고 유비자를 피해 멀리멀리 배 부른 독에 설진 강수를 빚는 마을로 도망칠지 모른다. 그럼 유비자는 효를 좇아 나문재, 굴, 조개를 먹는, 아무도 찾는 이도 그리울 이도 없는 황벽한 바닷가 마을에서 벽거할 수도 있겠지. 흙벽에 그림을 그리고 마당에 진달래와 복사꽃나무를 심고. 모래에 구운 밤 닷 되를 심고. 그 밤이 움이 돋아 싹이 나야만 서로를 여의리라며 의좋게 살아가리라.(고려가요 '정석가')


암자로 가서 효의 그림을 보려는데, 한 겹 장지문이 잠겨 있었다. 발소리를 죽이며 마당을 서성이다 장지문에 뚫어 놓은 눈구멍에 눈을 댔다. 눈구멍이 숨구멍인 양 숨까지 참으며 바싹 붙었다. 지난밤의 유비자처럼. 유비자가 나를 보고 내가 유비자를 보았다. 유비자의 몸에 내 몸을 겹쳐 보았다. 길고 곧은 유비자의 팔다리가 대나무 같았다. 유비자의 옆구리는 비늘이 없이 매끈했다. 효는 유비자와 칡넝쿨처럼 얽혀 있었다. 한 쌍의 새 같았다. 물 아래 가는 새 같이 이불 아래 효와 유비자가 새처럼 소리 내어 웃었다. 유비자는 베개 밑에 장검을 둔 채 효를 안고 있었다.


암자에 불을 때지 않았는데. 바닥이 차가울 텐데 댓닢이라도 깔아 줄까. 얼음 위에 댓닢 자리를 보아 효와 유비자가 함께 안고 얼어 죽을 망정 정든 밤 더디 새오시라. 저 둘이 원대평생에 이별할 줄 모르고 지내리.(고려가요 '만전춘')


암자에 있을 수 없어 대웅전으로 가서 백팔 배에 열을 곱해 천 팔십 배를 했다. 손목이 허전했다. 염주가 끊어진 자리였다. 부처님 발치로 가서 연좌에 손을 얹었다. 옥으로 연꽃을 새겨 바위 위에 접붙여 그 꽃이 한겨울에 세 묶음 피어야만 유덕한 님을 여의어지이다. (고려가요 '정석가') 꽃이 피기 전엔 효도 유비자도 무탈하리라. 어느 새 녹색 명주로 지은 겹철릭을 입은 유비자가 아무 일 없었던 듯 검을 허리에 찬 채로 부처님께 절을 올렸다. 효와의 시간이 격렬했는지 찢어진 옷깃을 바느질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분명 효가 유비자의 옷을 한땀한땀 기웠으리라. 무쇠로 철릭을 마름질해 철사로 주름을 박아 그 옷이 다 헐어야만(고려가요 '정석가') 유비자를 여의고 싶다고 노래 불렀으리라.


체중이 없는 듯 사뿐하게 절을 올리는 유비자의 옆에서 경쟁하듯 절을 드렸다.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유비자가 효를 씻기던 모습이 떠올랐다. 유비자는 쉼 없이 이마를 바닥에 댔다. 철릭 자락이 펄럭이는 모양새가 나비의 날개짓 같았다. 유비자가 효를 감싸 안던 암자 안의 풍경이 마음을 어지럽혔다. 비늘이 없는 유비자의 몸이 감은 눈 안에 나타났다. 머루랑 다래랑 먹던 유비자의 입술을 훔치고 싶었다. 천 배가 넘어가는데도 유비자는 느려지지도 빨라지지도 않았다. 천 팔십 배가 끝나고 나서 유비자와 시선이 맞닿았다. 암자 안팎에서 서로를 봤던 때처럼.


“못이 얼면 여울도 좋나니 남산에 자리보아 옥산을 베고 누워 금수산 이불 안에 안고 누워 가슴을 맛초압사이다.”(고려가요 '만전춘')


선우 씨의 집안에서는 감히 유비자가 효와 한 이불을 덮을 마음조차 품으면 안 되었고, 효가 궁으로 돌아가면 다시는 효를 볼 일도 없으리라. 그에 반해 나는 늘 이 자리에 갇혀 있으니 충분히 효의 대체가 될 수 있지 아니한가. 효가 아직 암자에서 고운 꿈을 꾸고 있는지 유비자는 암자로 가지 못 하였다. 염주가 걸려 있지 않은 손으로 유비자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불상 뒤에 숨어서 가슴을 맞추었다.


“아소 님아, 원대평생에 여읠 일 모르고 지낼지어다.”(고려가요 '만전춘')


유비자는 근심 어린 잠자리에 잠이 오지 않는가 보았다. 나를 꽉 끌어안고 내게서 효의 체취를 찾았다. 유비자는 내 비늘을 보고도 못 본 척 했다. 나를 비늘 없는 사람처럼 대했다. 대웅전 마당에는 도화난발하여 복사꽃이 유비자의 속도 모르고 근심 없이 봄바람에 웃었다.(고려가요 '만전춘')


“효와 있을 땐 넋이라도 님과 함께 지내는 모습을 그리고, 님과 있을 땐 효와 넋이라도 함께 지내는 모습을 그리니, 소가 얼면 여울도 좋고 여울이 얼면 소도 좋으리로다.”(고려가요 '만전춘')


유비자는 주섬주섬 옷을 입고 몸을 추슬렀다. 나와 같은 마음이라는 듯 유비자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다. 유비자의 검집에 손을 댔다. 유비자가 내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효가 간절하게 빌었던 부처님께서 나와 유비자가 애절하게 몸을 섞는 모습을 감춰 주고 계셨다.


효는 회임하지 못 하였다. 달거리를 한다고 했다. 여인네들은 회임을 하지 못 하면 한 달에 닷새 간 하혈과 배앓이를 한다고 했다. 효는 이불 속에 누워 끙끙 앓았다. 내가 암자 아랫목에 불을 때고 유비자가 아궁이에 돌을 구워 천으로 감쌌다. 유비자가 미워할 이도 사랑할 이도 없이 맞아서 울라고[25] 던져 댔던 돌이었다. 유비자가 뜨거운 돌덩이가 든 천을 효의 허리와 아랫배에 얹었다. 효가 눈을 감고 몸을 웅크렸다. 백 일이면 석 달이니 앞으로 두 번의 달거리가 남았다. 그 안에 효가 용의 후손을 몸 안에 담아야 했다. 유비자는 조용히 물러나 암자 문을 닫았다.


“약이라도 지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내 근심 어린 물음에 유비자는 매달 겪는 일이라 태평하게 대꾸했다.


“안쓰러우시면 어서 용의 후손을 내려 주시지요.”


유비자는 암자 뒤 대숲에서 검을 연습했다. 대나무가 죽창처럼 잘려 나갔다. 엽렵한 바람을 따라 날렵하게 검을 잡고 찌르고 베는 태가 검무 같았다. 저 검으로 사람을 벨 수 있을까.


“백 일 내에 효가 회임하지 못 한다면 족하께서 효를 베고 선우 씨의 다른 따님을 여기로 보낼 거라고 들었습니다. 정녕 효를 베실 수 있으십니까. 효가 아닌 선우 씨의 따님을 호위하실 수 있으십니까.”


효와 유비자가 온 이후로 면벽수행과 묵언수행은 깨져 버렸다. ‘존재하지 않는 사람’ 이라는 유비자에게 대답을 재촉했다. 유비자는 내 어리석은 질문에 소상히 답해 주었다.


“저는 효 아가씨의 호위무사가 아니라 선우 씨 집안의 사병입니다. 선우 씨 가문에서 하라는 대로 할 뿐입니다.”


내가 주지스님이 하라는 대로 효와 한 이불을 덮는 것과 마찬가지일까.


“선우 씨 가문의 사병이 아닌 유비자의 마음은 어떠하십니까.”


유비자는 말없이 저멀리 울리는 금사슴 소리를 들었다.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유비자는 묻지 않았다.


“이 내 마음은 잔월효성만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나는 다시 물었다.


“백 일 내에 효가 용의 후손을 회임하면 다시는 재회하지 못 하게 됩니까.”


유비자가 검을 검집에 넣어 허리에 차고 죽순을 캐며 답했다.


“만일 용의 후손이 태어나고서도 폐하께서 선우 씨 왕후를 자주 찾지 아니하시면 또다시 이 곳에서 불공을 드릴 것입니다. 선우 씨가 낳은 용의 후손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


“그렇다면 그 때에도 지금처럼 족하께서 효와 함께 오십니까.”


“아마 그리하겠지요. 이 일을 아는 사람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으니…”


“효가 폐하의 총애를 받거나 여기에서 정윤을 충분히 많이 잉태하시면, 이 곳에 다시 오지 않겠지요.”


“아마 그리 되겠지요.”


“효가 오지 않아도 유비자께서는 여기 오실 수 있지 않습니까. 혼자서라도…”


“선우 씨 집안에서 허락해주시지 아니할 것입니다. 저의 일거수 일투족은 모두 선우 씨 집안에 속해 있습니다.”


“선우 씨가 내 어미의 행방을 알려 하지 않듯 족하의 종적도 밝히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선우 씨의 따님 없이 여기 와서 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머리를 깎을 것도 아니라면.”


“제 외로움을 위로하여 주시면 아니 됩니까.”


말해 놓고 놀랐다. 유비자도 그런 듯했다. 나에게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있었던가. 유비자에게 감정이란 게 있을까. 유비자가 앞장서서 암자로 갔다. 솥 안에서 죽순이 알맞게 쪄 졌다. 죽순찜을 요리하면서 유비자는 효가 허리와 아랫배를 덥히던 돌을 다시 데웠다. 효는 고운 얼굴을 찌푸리면서 아랫배를 따듯하게 하고 죽순을 먹었다.


“달거리하는 닷새는 백 일에 포함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럼 백오 일을 보낼 수 있을 텐데.”


유비자가 효의 숟가락에 죽순을 얹어 주었다. 효가 회임을 하면 효와 유비자를 다시 볼 수 없겠지. 아니면 서너 번 더 볼 수 있을 수도 있고. 내가 어머니의 얼굴을 모르고 어머니가 내 용모를 모르듯이 나도 효가 낳은 아이가 얼마나 나를 닮았는지 모르겠지. 그 아이도 내 존재를 모르고. 유비자와 효가 대신 나를 기억해 줄까. 효의 아이는 나를 그리워하지 않겠지. 선우 씨는 그 아이를 옥좌에 앉히겠지. 그 아이는 암자에서 면벽수행할 일도 묵언수행할 일도 깡깡이 소리를 내는 금사슴을 만들 일도 없겠지.


“정월엔 얼었다 녹았다 하는 냇물에 손을 담그고, 이월엔 만인을 비출 등불을 달고, 삼월엔 늦봄의 진달래로 화전을 부치고, 사월엔 꾀꼬리를 반기고, 오월엔 단옷날 아침 약이 천 년을 사는 약이라기에 바치고, 유월엔 벼랑에 버린 빗처럼 돌아 보실 임을 따르고, 칠월엔 여러 제물을 벌여 놓고 임과 함께 오래오래 살고자 소원을 빌고, 팔월 한가위에는 임을 모시고 지내고, 구월 구일 중앙절에는 노란 국화꽃으로 차를 마시고, 시월엔 보리수 나무 잘게 썰어 꺾어 버린 후에 지니실 임이 없으시고, 십일월엔 봉당에 홑적삼 입고 누워 임을 그리며 살아가고, 십이월엔 분지나무로 깎은 소반 이 젓가락을 임의 앞에 들어 가지런히 놓으니 손님이 가져다 물으리니, (고려가요 '동동')여기서 1년을 살면 좋으련만.”


효가 죽순을 먹으며, 암자 벽의 그림을 보며, 흥얼거렸다. 효는 누가 ‘임’인지 ‘손님’인지 언급하지 않았다. 백 일은 너무 짧고, 천 년은 너무 길고, 1년만 딱 1년만 함께할 수 있다면. 무쇠로 황소를 만들어 쇠나무 산에 놓아 그 소가 쇠풀을 먹어야 유덕하신 임을 여읠 수 있다면(고려가요 '정석가') 나는 금으로 사슴을 만들어 대나무 숲에 놓아 그 사슴이 대숯으로 피운 증기를 먹어야만 유덕하신 임을 여의어지이다. 그 임이 효인지 유비자인지는 함구했다.


“여기서 1년을 지내시면 해산까지 하고 가실 수 있으실 텐데…”


나도 모르게 속마음을 말해버렸다.


“백 일을 작정하고 오셨으니 백 일 후엔 떠나셔야지요. 인연이 있다면 후일에 만나실 날이 있겠지요.”


유비자가 나와 효를 좁은 암자 안으로 돌려 놓았다. 좁은 암자 안에 상까지 들이니 서로의 숨소리가 들리고 체온이 느껴졌다. 효가 상을 물렸다. 유비자가 상을 들고 나갔다. 효는 아픈 배와 허리를 짚었다. 효가 아픈 건 내 탓이었다. 세 번 중에 한 번이 지나가고 있다. 다음, 다다음 달거리는 하면 안 될 텐데. 효가 끙끙 앓으면서 유비자를 찾았다. 유비자가 효 옆에 누웠다. 나는 효를 떠나 대웅전으로 가서 부처님 전에 빌었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 아뢰옵나이다. 효에게 아들을 점지해 주옵소서. 효가 용의 후손을 품게 하여 주옵소서. 달거리만 해도 아파하는 효가 순산하도록 하여 주옵소서.”


부처님은 인자한 미소만 지으실 뿐 소원을 들어주실지 아닐지 답하지 않으셨다. 대웅전 바닥에서방석을 덮고 잠을 청했다. 자기 전에 부처님께 진정으로 드리고 싶은 말을 중얼거렸다.


“부디 사슴이 해금을 켜는 소리를 들을 일이 없게 하여 주옵소서.”


부처님은 여전히 빙긋이 웃기만 하셨다.


산사의 일상은 적요하고 적막했다. 아침에 일어나 백팔 배를 드리고 달거리가 끝나 생기를 되찾은 효와 유비자와 함께 계곡에 갔다. 우리는 옷을 입은 채로 물에 뛰어 들었다. 유비자는 물 속에서도 검을 허리에 차고 있었다. 셋이 서로에게 물을 뿌려 댔다. 효가 몹시 즐거운지 깔깔대고 소리내 웃었다. 물에 젖은 옷이 착 달라붙어 굴곡이 드러났다. 보살상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물을 머금은 옷이 무거웠다. 아직 물이 차가워서 시원하던 몸이 추워졌다. 너럭바위에 나란히 누워 옷을 말렸다. 눈 속으로 햇살이 들어왔다. 효의 긴 속눈썹이 눈가에 그늘을 드리웠다. 유비자는 바위에 댓잎을 깔고 효의 옷에 물기를 짜내고 효에게 팔베개를 해 주었다. 이럴 때 효는 유비자의 아기 같았고 유비자와 동기간 같았고 유비자의 정인 같았다. 이렇게 다정한 유비자가 효를 벨 수 있을까. 내가 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유비자는 내게도 댓잎을 깔고 옷의 물기를 짜 주었다. 그 손길과 눈빛이 더없이 다감하였다. 유비자 자신은 맨바닥에 축축한 옷을 입고 누웠다.


“재미난 이야기 없습니까?”


효가 어리광을 부렸다. 내가 아는 이야기라고 해 봤자 불경에 나오는 이야기였다. 유비자도 고개를 저었다.


“노래를 부르시렵니까.”


유비자가 대나무를 깎아 피리를 만들어 불었다. 이렇게 재주가 많은 유비자가 고작 선우 씨 집안의 사병이라니 마음이 아렸다.


“내 님을 그리며 울고 지내더니 산 접동새와 비슷하여이다. 옳지 않으며 거짓이라는 걸 잔월효성만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넋이라도 임을 함께 모시고 싶어라. 우기던 이, 누구입니까. 잘못도 허물도 전혀 없습니다. 뭇 사람이 참소하던 말입니다. 슬퍼라! 임께서 이미 나를 잊으셨나이까. 임이여, 내 사연 들으시고 다시 사랑해 주소서.”(고려가요 '진작')


유비자의 피리 소리에 효의 노래가 얹혔다. 옳지 않으며 거짓이라는 건 나와 유비자 중에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모시고 싶은 임은 누구고 우기던 이는 나와 유비자 중에 누구일까. 효에게는 잘못도 허물도 있을 리 없다. 효는 무조건 옳으니까. 사연을 듣고 다시 사랑해 달라는 건 폐하께 드리는 말씀일까. 효는 두 달 후에 궁으로 돌아갈 사람이니까.


어느 순간 깨달았다. 유비자는 사슴이 대나무 장대 위에서 해금을 켜는 소리를 덮으려고 피리를 불고 효에게 노래를 청했던 거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유비자가 효를 베어야 할 날이 온다면 준마보다 빠른 금빛 사슴에 효를 태워 나문재, 굴, 조개를 먹는 먼 바닷가 마을로 보내려고 하는 내 계획을 눈치챈 걸까. 그런 날이 오면 유비자는 금빛 사슴을 탄 효를 따라 불룩한 술독에 진한 술을 빚는 마을에 가서 누룩 냄새에 붙잡힐까. 둘은 얼음 위에 댓닢 자리에 금수산 이불 안에 안고 누워 가슴을 맞추고 더디게 밤을 새우고 복사꽃은 봄바람에 웃고 원대평생에 이별할 줄 모르고 지내겠지.(고려가요 '만전춘') 저렇게 희고 고운 효를 돌아보지 않는 폐하나 아무것도 소유한 게 없는 나보다는 효를 보옥처럼 아껴주는 유비자가 효 옆에 어울리겠지. 비정하게 효를 궁에 밀어 넣은 선우 씨 집안이나 많고 많은 궁주 중의 하나로 여겨질 뿐인 궁궐 말고 아침이면 빗질하고 저녁이면 발을 씻겨 주는 유비자가 있는 삼간초옥이 효에게는 더 아늑하겠지.


“궁으로 돌아가고 싶으십니까.”


내 물음에 유비자의 피리소리와 효의 노래소리가 끊겼다. 효가 차고 맑은 목소리로 답했다.


“선우 씨 가문에서 제물로 바쳐져 혼약으로 묶인 처지이니, 접동새처럼 임을 그리며 울고 지낼(고려가요 '진작') 따름입니다.”


효의 임은 유비자일까. 아니면 나일까. 혹시 폐하일까.


“유비자여, 만약 백 일이 지나도록 아이가 들어서지 않는다면 효를 벨 수 있겠습니까.”


“백 일이나 치성을 드리면 부처님도 복을 내리시겠지요. 백 일이면 용이 승천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까.”


효가 무사히 회임하면 효는 궁으로 가고, 나는 이 암자에 남고, 유비자는 선우 씨의 집으로 돌아가겠지.


“임과 이별해도 서럽지 아니하겠습니까.”


유비자의 임은 나일까 효일까. 유비자는 염주가 없는 내 손목을 바라보다가 느릿하게 말했다.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끈이야 끊어지겠습니까. 천 년을 외따로이 살아간들 믿음이야 끊어지겠습니까.”(고려가요 '정석가')


그러나 끈은 끊어지고 구슬은 법당에 떨어졌다. 우리 셋은 연정을 기묘하게 공유하고 있다. 원대평생에 이별하지 않도록 비나이다. 그러나 언젠가 구슬이 바위에 떨어지고 끈이 끊어지면 천 년이 아니라 천 일을, 아니 백 일을 외따로이 살아가도 믿음이야 끊어지리라.


내리쬐는 햇볕에 승복이 보송보송 말랐다. 효의 층층이 덧입은 비단옷과 풀어헤친 머리카락도 건조했다. 유비자의 옷엔 아직 습기가 남아 있었지만 유비자가 털고 일어났다.


“대숲은 사시사철 같은 모습이라 좋지요. 여기 있으면 백 일이 지나도 천 년이 지나도 풍경이 변하지 않지요.”


암자로 돌아가는 길에 내가 한 말에 효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봄이면 꽃 피고 여름이면 열매 열리고 가을이면 낙엽지고 겨울이면 나목이 되는 복숭아 나무가 좋습니다. 해마다 나이테가 켜켜이 쌓이는 나무가 좋습니다.”


효와 나는 복사꽃 필 때 만나서 복숭아가 열릴 때까지 한 계절을 같이 살았다. 효는 달거리를 세 번 했다. 내 비늘은 떨어지지 않았다. 효에게는 용의 후손이 깃들지 않았다. 유비자는 짐을 챙겼다. 암자 벽에는 효가 그린 그림이 남았다. 바위 위에 접 붙인 옥으로 새긴 연꽃은 피지 않았고 무쇠로 마름질해 철사로 주름 박은 철릭은 헐지 않았고 무쇠로 만든 황소는 쇠나무산의 쇠풀을 먹지 않았는데(고려가요 '정석가') 유덕한 효와 유비자를 이별할 수는 없었다.


“가시리 가시리잇고 나난 버리고 가시리잇고. 위 증즐가 태평성대. 날러는 엇디 살라 하고 버리고 가시리잇고. 위 증즐가 태평성대. 잡사와 두어리마는 션하면 아니올셰라. 위 증즐가 태평성대. 셜온님 보내옵나니 가시는 듯 다시 오소서. 위 증즐가 태평성대.”(고려가요 '가시리')


사람이 귀찮아 묵언하던 나는 이제 효처럼 노래를 부르게 되었는데. 욕망이 들끓어 면벽하던 나는 이제 유비자처럼 다정다감하게 효와 유비자를 어루만질 수 있게 되었는데. 효와 유비자는 나를 버리고 가시려는가. 가시는 듯 돌아와 다시 백 일을, 천 일을, 만 일을 여기서 보낼 수는 없을까.


“스님께서는 몸을 피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선우 씨가 저를 호위로 삼아 다른 따님을 또 스님께 보내시고, 그 분께서 정윤을 낳으시면 비밀을 알고 계시는 스님을 살려 둘 리 없습니다.”


“유비자께서는 효를 베고 저를 찌를 수 있습니까?”


유비자는 노래로 답을 대신했다.


“대동강 건너편 꽃을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배를 타면 아즐까 배를 타면 꺾으리이다.”(고려가요 '서경별곡')


“선우 씨는 족하도 제거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재주가 많으니 도망쳐서 장터를 떠돌며 잔나비처럼 재주를 보여주고 불룩한 술독에 진한 술을 얻어 마시고 살 것입니다. 떠돌다 보면 외딴 부엌을 지나가다가 사슴이 장대에 올라 해금을 켜는 소리도 들을 수 있겠지요.”(고려가요 '청산별곡')


사슴을 장대에서 내릴 때가 왔다. 유비자는 효를 사슴에 태웠다.


“사슴이 말보다 빠르니 궁주마마께서 사슴을 타시지요. 저는 있는 힘껏 박차를 가하여 추격했는데도 사슴을 좇지 못 한 것입니다.”


“저희가 떠나면 스님께서는 어찌 되십니까.”


“소승은 아마 다음 선우 씨를 맞이하겠지요.”


효가 옥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구슬이 떨어진들 인연의 끈이야 끊어지리이까. 노래하는 효는 가지 끝의 작은 새 같았었다. 울어라 울어라 새여 자고 니러 울어라 새여. 널라와 시름 한 나도 자고 니러 우니노라. 가던 새 가던 새 본다. 물 아래 가던 새 본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고려가요 '청산별곡')유비자의 말고삐를 붙잡았다.


“소가 얼면 여울도 좋고 대동강 건너편 꽃을 배를 타면 아즐가 배를 타면 꺾으리이다.”(고려가요 '만전춘', '서경별곡' )


유비자가 내 손을 잡았다.


“남산에 자리 보아 옥산에 베고 누워 원대평생에 이별할 줄 모르고 지냅시다.”(고려가요 '만전춘')


유비자에게 마지막으로 투정을 부렸다.


“이링공 하야 뎌링공 하야 낮은 지내왔손뎌 올 이도 갈 이도 없는 밤으란 또 어찌 하리라.”(고려가요 '청산별곡')


유비자가 답가를 불렀다. 나도 효도 유비자의 답가를 따라 불렀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어긔야 즌듸를 드듸올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다롱디리.”(백제가요 '정읍사')


효가 탄 사슴이 깡깡 해금소리를 내며 우는 것을 들었다. 저 사슴을 타고 멀리멀리 세상 끝까지 가 보고 싶었던 나날들이 있었다. 사슴이 인도하는 곳으로 가서 나를 낳아주고 나처럼 궁에서 쫓겨난 어머니를 찾아 덜커덩 방아나 찧어 거친 밥이나 지어 어머님께 드리옵고 남거든 내가 먹는(고려가요 '상저가') 삶을 꿈꾼 적도 있었다. 효와 유비자와 나는 각자 가고 싶은 곳을 꼽았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고려가요 '청산별곡')


“나문재, 굴, 조개랑 먹고 바다에 살어리랏다.”(고려가요 '청산별곡')


“불룩한 술독에 진한 술 빚는 곳에 살어리랏다. 조롱박꽃 모양 누룩이 매운 곳에 붙잡이리라.”(고려가요 '청산별곡')


유비자는 내게 자신의 체취가 밴 옷을 유언처럼 남겼다. 효는 내게 노잣돈인지 정표인지 자신의 팔찌를 끼워 주었다. 효는 사슴을 유비자는 말을 타고 떠났다. 사슴과 말 사이의 거리가 점점 벌어졌다. 사슴이 해금을 켜는 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주지스님이 선우 씨 집안에서 사람이 올 거라는 연통을 전해주셨다. 효일까 아니면 선우 씨의 다른 딸일까. 옆구리를 피가 나도록 긁어도 비늘은 떨어지지 않았다.


효와 유비자는 무사히 청산에, 바다에 살러 갔을까. 그곳에서도 효는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릴까. 유비자는 피리를 불고 검무를 출까. 승복을 벗고 유비자의 옷을 입고 염주 대신 효의 팔찌를 손목에 걸었다. 달이 높이 돋은 밤에 걸어서 길을 나섰다. 사슴이 해금을 켜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고요한 대숲을 헤치며 나아갔다. 효와 유비자는 진 데를 디디지 않고 무사히 소와 여울을 건넜을까.


계곡 너럭바위에 조약돌로 쌓은 돌탑이 있었다. 미워할 이도 사랑할 이도 없으니 던질 수가 없어 돌탑을 쌓아 올렸으리라. 유비자와 효가 차례차례 쌓아 올렸을 돌탑 위에 아슬아슬하게 돌 하나를 더 얹었다. 선우 씨의 사람들이 암자를 어지러이 밟고 대숲을 지나 계곡으로 오는 소리가 들렸다. 돌탑 앞에 합장을 하고 소원을 빌었다.


다음 생엔 각자 필부와 범부로 태어나 원대평생에 여읠 일 모르고 지낼지어다. 임이여, 내 사연 들으시고 날 다시 사랑하여 주소서.(고려가요 '진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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