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12.
눈 내렸던 밤에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오전 내내 밖에 나갈 일이 없었다. 컴퓨터 작업을 하다 무심코 고개를 들어 창밖을 봤는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경남에서 태어나서 성장했다. 그러다 보니 어린 시절 펑펑 내리는 눈에 대한 기억은 딱 한번뿐이었다. 국민학교 시절, 그렇다 나는 국민학교 마지막세대이다. 5학년인가 6학년 어느 겨울 펑펑 눈이 내렸다. 길에는 눈이 쌓였고 교통은 마비되었다. 버스 종점으로 복잡했던 사거리에는 차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 덕분에 번잡한 사거리는 어린이들의 큰 놀이터가 되었다. 그 눈이 고향에서의 마지막 펑펑 내렸던 눈이었다. 그 이후 눈이 온다고 함은 지리산에서 눈발이 살짝 날리는 정도를 눈이 온다고 표현했었다.
강원도 홍천에서 군 생활을 했다. 무덥던 7월에 입대해서 후반기 교육을 받고 가을 끝 무렵 자대 배치되었다. 조금 적응 하니 겨울이 되었다. 군대를 다녀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꼈겠지만 군대에서의 추위는 마음의 추위도 동반하기에 사회에서의 추위보다도 유난히도 추웠다. 어느 날 단잠을 이루고 있었는데 내무실에 불이 켜졌다. 군기가 바짝 들어 있던 상태라 눈이 번쩍 뜨였고 재빨리 상황을 파악했다. 전쟁이었다. 눈과의 전쟁. 따뜻하게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삽과 빗자루로 눈을 계속 쓸었는데 눈길은 사라지지 않았다. 고참들은 자다 일어나 추운 밖에서 눈을 치운다는 것만으로도 짜증을 내고 있었다. 나도 덩달아 후임들에게 짜증난다고 이야기 했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펑펑 내리는 눈을 처음 보았다. 눈을 치우는 것은 힘들었으나 깊고 짙은 밤하늘, 펑펑 내리는 눈의 풍경이 낭만으로 다가왔다. 그 후에도 겨울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 매번 힘들다 투덜거렸지만 내리는 눈을 보며 낭만에 빠졌다.
서울에 올라온 후 얼마간은 여전히 눈 오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차를 구매하고 나서부터는 눈 오는 것이 반갑지만은 않았다. 내리는 눈을 보면 “차 막히겠다.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히 운전해야지”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좋아하는 스키장이 홍천에 있어 자주 찾곤 한다. 2년 전 동료들과 스키장을 찾았다. 한참 보드를 타는데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군대에서 봤던 것처럼 펑펑 내렸다.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보드를 타니 평소보다 훨씬 신났다. 정해진 시간까지 계속 보드를 탔고 저녁 9시 무렵 집으로 가기 위해 차를 탔다. 내비를 신봉하기에 내비만 믿고 길을 나섰는데 그날따라 큰길로 안내하지 않고 산길로 안내했다. 동료는 4륜차라 무리 없이 산길을 운행하더니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산길을 천천히 올랐다. 문제는 내려오는 길이었다. 차가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하필이면 스노우체인도 없었다. 포기할까 라는 찰나 지나가는 긴급 출동차의 도움으로 스노우체인을 구매할 수 있었고 기다시피 집으로 갔던 기억이 있다.
지난주에도 엄청난 눈이 내렸다. 아파트 커뮤니티에는 10km 거리인데 버스로 저녁8시에 출발해서 다음날 새벽 6시에 도착했다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었다. 다행히 나는 재택근무였고, 아이를 재울 때 같이 잠들어 아침에서야 눈이 왔고 수도권에 교통대란이 있음을 뒤늦게 알았다. 오늘도 내리는 눈을 보며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많은 사람들이 고생 하겠구나” 는 생각이었다. 눈을 보고 순수하게 “신난다. 밖에 나가 눈사람 만들고 눈썰매 타야지”라는 생각보다는 “출퇴근하기 힘들겠다.”라고 생각이 먼저 드는 아저씨가 되었다.
재택 퇴근시간에 맞춰 아내와 아들과 눈 맞기 위한 산책을 나섰다. 신난 강아지 마냥 뛰어놀 아들을 상상했지만 긴장해서 얼음처럼 얼어버린 아들을 안고 커피 한잔을 테이크아웃을 하며 산책을 마무리 했다. “좀 더 커서 아빠랑 눈사람도 만들고 눈썰매도 타면 펑펑 내리는 눈을 좋아하겠지? 그리고 더 크면 너도 아빠처럼 출퇴근길을 걱정하는 아이가 되겠지” 라는 생각을 하다 “아들아 넌 좀 더 오래 순수하게 눈을 즐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