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be Bryant
Mamba Mentality
2021.01.25.
25일 글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1월 26일이 시작되었다. 작년 1월 26일 나의 영웅이 하늘로 올라갔다. 나에게 코비 브라이언트는 영웅이었다.
농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아마 한번쯤 들어 보았을 이름, 농구를 좋아한다면 호불호가 확실했던 선수, 그가 바로 코비였다. 국민학교 시절은 바야흐로 농구대잔치의 시절이었다. 농구대잔치 주역을 보기 위해 연세대 체육관을 찾았었고 학창 시절 내내 농구공을 던졌다. 티비를 통해서는 농구대잔치를 열심히 시청하며 우리 팀을 응원했었다. 97년 동네에 사는 형들을 통해 NBA라는 미국농구리그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어 방송을 통해 NBA를 처음 접했다. 동네 형들은 농구 황제 마이클조던에 열광했지만 나는 골드앤 퍼플 져지를 입은 건방진 고졸 꼬마 코비에게 열광했다. 아마도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서 좋아하기 싫어 그랬던 것도 있지만 리그 최고 선수인 조던과 매치업에 있어 기죽지 않고 도전하는 모습이 멋있었다.
압도적인 샤킬오닐을 중심으로 레이커스는 매년 강해졌고 조던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챔피언이 되었다. 건방진 꼬마는 매년 성상하면서 어느덧 제2의 마이클조던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물론 이 소리를 듣게 되면서 엄청난 안티 팬들이 생겼었다. 2000년 초반 3년 연속 우승 후 리그 최고 선수가 된 코비와 이전에 팀을 이끌던 샤킬오닐과 불화가 계속 발생했고 샤킬오닐이 팀을 떠났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다시는 코비가 우승하지 못 할 것이라 했지만 09년 본인이 주연이 되어 팀을 우승시켰다. 그 우승 뒤에는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운동하고 항상 운동만 생각하는 그의 정신이 숨겨져 있었다. 그는 이것을 ‘Mamba Mentality’ 라고 했다. 커리어 동안 성추문 이슈도 있었지만 그는 진정한 프로였다.
97년부터 코비의 플레이를 보며 자란 내가 30대가 넘었고 결국 코비도 은퇴하게 되었다. 코비의 은퇴시즌 팀 상황이 좋지 않았고 본인도 부상여파로 인해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코비의 마지막 경기 날이 되었다. 커리어 내내 엄청난 득점력을 보여 줬지만 항상 패스하지 않는 욕심쟁이로 비난을 받았던 그는 마지막 경기에서 사람들이 패스하지 말고 슛하라는 응원을 보내주었고 60득점을 하며 20년 동안의 시즌을 마무리 했다. 20년 가까이 응원했던 선수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동안 마음이 찡 했다. 마지막 인터뷰에서 “what can I say mamba out” 하고 인터뷰를 마치는데 눈물이 흘렀다. 코비 다웠다.
은퇴 이후 영화감독도 되고 자신의 딸과 다른 아이들에게 농구도 가르쳐 주고 많은 활동을 했다. 현역때 날씬했던 모습이 조금 살이 쪘지만 여전히 멋있었다. 더 보기 좋았다. 그는 레이커스 감독을 하지 않을 것이라 했지만 그가 레이커스 감독이 될 시즌을 기대하고 있었다. 여전히 레이커스는 암울한 시즌을 보내고 있었지만 가끔 경기장을 찾아 팬들에게 인사하는 그의 모습을 보기 위해 레이커스 경기를 본 적도 있었다.
설 연휴 아침 비가 내렸다. 친가에 있어서 오랜만에 늦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친구들의 연락이 있었다. 코비가 헬기 사고로 죽었데. 믿을 수 없었다. 포털을 찾아 검색하니 딸과 딸의 친구들과 농구연습을 위해 연습장으로 가던 중 헬기가 추락해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눈물이 나서 아내에게 달려가 안겼다. 남들이 보면 “그냥 농구선수 죽은 일인데, 너랑 상관없는 사람인데 유별나다”라고 할 수 있지만 그는 나에게 최고의 선수이자 영웅이었다.
매일 글쓰기 하면서 이날에는 꼭 코비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보고 싶었다. 그의 열정 Mamba Mentality는 나를 포함한 그를 좋아했던 사람들을 통해 계속 이어 갈 수 있을 것이다. R.I.P Kobe Bry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