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는 “올한해도 눈 깜짝할 사이 지났습니다” 대신해주는 말은 없는 것 같다. 정말이지 눈 깜짝 했는데 올한해도 끝이다. 뒤 돌아보니 막상 많은 것을 하지는 못했다는 아쉬움은 항상 드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아쉬운 마음까지도 정리하고 내년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 인 것 같다. 시기별로 크리스마스가 주는 의미들이 다른 것 같다. 어릴 적에는 가족, 철이 든 이후는 연인,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는 아이가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인 것 같다. 이번 크리스마스 역시 아이가 주인공이었던 크리스마스였다.
방학 시작이라고 저녁 10시가 넘어서도 잠 들지 않는 아이에게 “안자면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못 주고 가신다” 반 협박하였지만 아이는 한참을 놀다 잠이 들었다. 잠든 아이 곁에 몰래 사두었던 장난감을 놓아 두었다. 아이의 기상으로부터 우리의 아침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선물, 선물 노래를 불렀지만 막상 선물을 받고 나서는 한 10분 정도 감흥을 이어가는 듯했다. 크리스마스 오전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식당 예약이 있어 서둘러 집을 나섰다. 자동차 창문 밖으로 하얀 눈송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식당에 들어서고 예약한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했다.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제각각 행복한 크리스마스의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날리던 눈 송이가 어느덧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얼마만의 화이트 크리스마스인가? 가게안의 캐롤과 맛있는 냄새, 가족들 간의 사랑이 넘쳐났고 창문 밖으로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맛있게 음식을 먹고 가벼운 겨울 산행을 나섰다. 누구도 밝지 않아 하얀 눈밭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고 눈송이를 모아 아이에게 눈덩이를 던졌다. 신난 아이와 아이보다 더 신난 아빠 덕분에 한참을 웃고 뛰어다녔다. 도망가는 아이를 향해 눈덩이를 던졌는데 아이가 화단 쪽으로 도망치다 작은 가시에 코를 찔렸다. 이런 일이 있기도 하더라. 그리곤 작은 코에서 붉은 코피가 쏟아졌다. 이렇게까지 분위기 좋은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갑자기 블러드 레드 크리스마스로 변했다. 당황하여 코를 풀게 하였는데 더 많은 선혈이 하얀 눈길위에 떨어졌다. 근처 식당으로 들어가 양해를 구하고 코를 닦였다. 다행히 코피는 멈추었지만 아들은 많이 놀랜 것 같았다. 다시 한번 아빠가 미안하다. 이정도면 집으로 귀가하는 게 당연지사이지만 우리는 하고 픈 것들이 많은 가족이라 무서워하는 아이를 앉은 체로 가벼운 산행을 나섰다.
아무도 없는, 눈이 내린 후로 아무도 오르지 않아 온 세상이 하얀 낮은 산을 올랐다. 평소 새소리가 제법 있는 곳인데 내리는 눈이 모든 소리를 먹고 있는 것 같았다. “뽀드득, 뽀드득” 소리와 우리 가족만의 대화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이런 설국에서 한 일주일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그렇게 해보고 싶다. 한 30분 정도 산을 오르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이런 것이 행복인가 싶었다. 아이에게 아내가 오늘 코피 났던 일 할머니들에게 이를까 물었다. 아이는 그래도 아빠가 좋았나 보다, 아빠가 혼날 까봐 아이는 “아니 안이를 꺼야” 답했다. 고맙다 아들아.
23년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이런 추억을 남겨주고 지나갔다. 앞으로 아이가 성장함에 따라, 우리 가족이 성장함에 따라 바뀌어지고 추억될 크리스마스가 기대된다. 늦었지만 모두 메리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