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울증과 함께한 10년의 기록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여전히 잠에서 깨지 못한 채로 정신없이 지나갔다. 처음 비행기를 타고 인천에 내렸던 그 순간처럼 떠나는 그 순간에 또 다른 친구가 나와 함께 했다. 언제나 곁에서 나를 지켜주고 응원해주는 친구들을 갖고 있으면서 단 한 명의 친구에게는 힘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가슴이 아프다. 술과 악몽에 시달린 시간은 여전히 꿈을 꾸거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있게 하고 있다. 마치 약에 취해 있는 노숙자처럼 멍하게 홀린 채 비행기에서 내려 시드니 하버로 향하는 기차를 탄다.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시드니 하버 브릿지를 바라본다. 십여 년 전이었던 대학교 2학년, 그와 함께 하고자 했던 호주 여행의 종착지였다. 그곳에 홀로 서 있다. 그렇게 멀어 보이던 곳에서 내가 살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도 못했는데.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동영상을 찍어 친구들에게 보내본다. 다시 보고 싶다고. 함께 견디지 못하는 시간 잘 버틸 수 있게 기도해 달라고.
십여 년 전 함께 이곳에 왔었다면 지금의 상황을 바꿀 수 있었을까?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모든 것을 바꾸듯 내가 그에게 조금 더 따뜻한 말을 해줬다면 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었을까? 정말 모든 것이 소름 끼치도록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어버린 것 같다. 누군가를 원망하고 누군가를 탓하고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기에는 모든 상황들이 너무나도 그를 힘들게 만들었다. 모든 벽이 그를 향해 조여 가고 있었다. 내가 작은 나사가 되어 그 벽에 구멍을 내어줄 수 있었을 텐데. 내가 하지 못한 것이다. 어쨌든.
호주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몽환적인 파란 하늘 아래 서 있다. 비행기를 옮겨 타는 시간은 아직도 대여섯 시간이 남아있고 딱히 할 일도 없다. 커피를 한잔 주문해서 바다를 보고 오페라 하우스 앞에 앉았다. 함께 여행을 왔었을 기억을 떠올린다. 아마도 폼 내기를 좋아했던 우리는 저 오페라 하우스에서 분명히 공연을 보았을 것이다. 그게 뭔지도 모르고. 여행을 다녀와서 사람들에게 떠벌리고 다녔을 것이다.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 봤냐고. 아니면 호주 다녀왔다는 얘기는 하지도 말라고. 세계 최고 수준의 막귀를 갖고 있는 둘이 모여서 오페라 하우스의 음향에 대해서 근처라도 가봤던 호암아트홀, 세종문화회관, 예술의 전당과 비교하며 떠벌리고 다녔을 것이다. 그게 우리였으니까. 그렇게 잘난 척하기를 좋아하고 조금이라도 아는 척하기를 좋아하는 그런 평범한 20대 사내놈들이었으니까.
아마 둘 다 하버브릿지에는 올라가지 못했을 것이다. 높은 곳이라면 죽어라고 무서워하는 우리가 올라갔을 리가 없다. 그런 높은 곳에서 뛰어내릴 용기가 있었다는 것이 대단하다. 나는 죽었다가 깨나도 못할 것이다. 주변을 둘러본다. 또 무엇을 했을까? 아마 이렇게 둘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을 것이다. 짧은 영어로 지껄여 가며 열심히 커피를 주문해서 뭔지도 모르고 맛있다고 마시고 있었을 것이다. 맥주도 한잔 했을 것이고. 지금 나에게는 평범한 일상의 한 모습이 되어버린 것이, 이제 다시는 그와는 함께할 수 없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함께 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20대부터 꿈꿔온 시간이 꿈으로 남아버렸다.
피식. 이유를 알 수 없는 웃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