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울증과 함께한 10년의 기록
집은 따뜻하다.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모든 것이 그대로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1년, 2년 혹은 10년.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은 편하게 할 수 있을 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다시 한번 그와 함께 찍었던 사진들을 돌아본다. 수백 장이 넘는다. 한참을 고민한다. 과연 아버지 어머니가 이 사진을 보고 싶어 할지. 괜히 가슴을 더 후벼 파는 것은 아닌지. 일단 덮자. 아직은 태워버린 내 가슴의 빈 공간을 생각하기에도 너무 이르다. 그와 주고받은 문자들을 다시 돌아본다. 지난 한주 동안 수십 번은 본 문자들. 다시 봐도 새롭다. 당장이라도 말을 걸면 대답할 것만 같다. 어디서 어떻게 다시 시작하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돌아갈 수나 있을지.
집에 돌아온 것이 편하지만은 않다. 상실의 고통을 충분히 느끼고 극복하기에는 이미 일상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밀고 있다. 그에게 보내준 수많은 사진들과 그와 함께한 대화들이 집 근처의 이곳저곳에서 떠오른다. 저녁노을을 보면 그에게 보내준 사진이 떠오르고, 바다를 보면 인천 앞바다에 뿌려준 그가 여기까지 왔을까 궁금해진다. 조용히 맥주 두병을 들고 집 앞의 바다로 나간다. 한 병을 마시며 천천히 한 병을 바다에 부어준다. 함께 한다고 느끼고 싶다.
‘보고 싶다.’
어렵게 하루하루의 일상을 이어간다. 매 순간 그가 떠오를 때마다 힘들고 여전히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이 힘들다. 시간이 흐르면서 꿈이 바뀌었다. 이제 꿈에서 보는 그는 언제나 웃고 있다. 함께 이야기하고 있고, 함께 떠들고 있다. 그가 물었다.
‘나는 왜 너희들 얘기하는 게 하나도 기억이 안나지?’
‘당연하지. 누가 일찍 죽으래?’
꿈에서도 섬뜩하다.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꿈에서도 인지하기 시작했다. 꿈에서나마 한참을 그와 떠들고 나면 차라리 꿈에서까지 슬픈 것보다는 훨씬 낫다. 하지만 꿈에서 깨고 나면 그를 보낸 지난 한 해의 슬픔이 모두 더러운 악몽이었다는 착각의 안도감이 나를 미치게 한다. 그런 날이면 그의 싸이월드, 페이스북, 문자, 내가 갖고 있는 사진 전부를 뒤져보게 된다. 페이스북에 글을 남긴다.
‘어제 꿈에 널 봤어. 사실 며칠 전이었나 봐. 오랜만이네. 뭐하느라고 그렇게 바쁜 척 해 요즘은?'
‘안녕. 나 공부 다 마쳐가.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네. 기억나냐 예전에 유학 가는 것에 대해서 얘기할 때, 너도 외국에서 공부해보고 싶다 했잖아. 독일이었는데. 문득 생각이 났어. 아마 그때가 우리 스물셋 이럴 때였지 아마? 내가 막 대학교 마칠 무렵이었고. 넌 군대 갔을 때였나 보다. 그래도 너 훈련소 가는 거라도 같이 갔었다는 게 요즘 들어서 참 감사하다. 아침에 정말 일어나기 너무 힘들었는데. 감기 기운데. 전날 늦게까지 놀다가 말이야. 페이스북에 사진이 없이 니 얼굴만 있는 저 칸이 왜 이렇게 니 얼굴형이랑 닮은 것 같지. ‘
‘안녕. 나중에. 나중에. 정말 오래 지난 후에. 보자. 널 잊어버릴 때 즈음에. 가슴에 뚫린 구멍이 채워질 수 있을 때 말이야. 보고 싶다. 잘 지내.’
‘미친놈. 보고 싶다. 미치도록..... 아프다.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