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렇게, 그 친구를 온전히 보낸 줄 알았다. 슬픔과 함께 한 작별의식, 마음속에서 수천 번 되뇌인 이별의 말들. 그 모든 것이 충분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매일 꾸던 꿈이 하루 걸러 하루로 간격을 두고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 꿈들은 모두 같은 날의 반복이었다.
언제나 같은 공간, 같은 시간, 같은 사람들. 버스 옆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는 친구. 함께 바라보는 잔잔한 바다. 그리고 하얗게 흩날리는 가루. 돌아오는 길, 문득 친구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주위를 둘러보며 그의 이름을 부른다. 사람들에게 묻는다. 하지만 아무도 그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뿌렸던 하얀 가루가 바로 그 친구였음을 깨닫는 순간—세상이 무너진다. 꿈속에서도 심장은 덜컹거리고, 가슴은 무너지듯 내려앉는다.
그렇게 눈을 뜬다. 어두운 밤, 혼자 깨어 시간을 확인한다. ‘지금도 꿈일까? 내가 깬 걸까? 아… 최악이다. 이런 악몽은 정말 최악이야.’ 그렇게 다시 이불 속으로 몸을 숨기며 되뇌인다. ‘전화를 받았던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내 또렷이 떠오른다. 그 친구는 이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꿈이 아니었다는 잔혹한 진실이 다시 심장을 덜컹이게 만든다. 사방이 검은 어둠으로 짓눌리고, 고요한 침묵 속에서 눈물이 흐른다.
그렇게 나는 여러 해를 보냈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흔들리며, 가슴 한켠의 빈자리를 끌어안은 채.
조금씩 슬픔에 익숙해졌다. 그렇게 조금씩 나아지는 줄 알았다. 오렌지 껍질이 바닥에 떨어졌다고 화가 날 때도. 귀찮게 하는 파리 한 마리 때문에 소리를 지를 때도. 나는 괜찮은 줄 알았다. 단지 새롭게 이사한 영국이라는 곳의 날씨가 우울해서. 파란 하늘을 보기가 힘들어서. 따듯한 햇살을 느낄 수가 없어서. 다들 느끼는 그런 정도의 우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북유럽이 아닌 것에 감사한다고 농담하며, 한해를 보냈다.
나는 괜찮은 줄 알았다. 다시 돌아온 호주에서 따뜻한 햇살에 파란 하늘 파란 바다를 보면서 차분하게 앉아 있으면 모든 것이 다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조금씩 운동도 하기 시작했고. 조금씩 여행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모든 것이 괜찮아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친구가 남긴 아픔은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왔다. 어느 날 갑자기 심장이 그 친구가 삶에서 사라진 무게 만큼 덜 뛰기 시작했다. 때로는 두어번에 한번. 때로는 열번에 한번. 처음 며칠은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으나. 조금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 급히 병원에 찾아갔다. 부정맥이었다. 우울증으로 인한. 우울증이 너무 오래되어 신경계가 고장났다고 했다.
그렇게 그는 7년 후 어느 날 아무 예고 없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