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블로그 글 등에서 볼 수 있는 삶이 무너지는 것도 없었고.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일도, 병원에 실려가는 소동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을 했고. 밥을 먹었고. 책을 읽었고. 사람을 만났고. 미소를 지었다.
감정의 변화도 없었다. 슬프지도. 행복하지도. 우울하지도. 즐겁지도. 감정이 사라진 채 부서진 나무토막 마냥 파도에 휩쓸리는 대로 그냥 그렇게 있었다. 어디로 흐르지도 못하는 채. 제자리에서 파도에 휩쓸렸다.
그렇게 내 안에서는 파도가 일었다. 태풍에 휩쓸린 파도가 쉼 없이 몰아쳤다. 멀리서 보기에는 잔잔한 파도였지만, 작은 벌레에게는 목숨의 위협이 되는 나보다 수천 배는 높아 보이는 파도가 매일 같이 몰아쳤다. 그 파도 한가운데서 휩쓸리고 있었다.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가까운 시간의 기억을 먼 시간의 기억으로 덮고 있었다.
그 시간이 남긴 것은 가끔 찾아오는 그리움. 부를 때마다 저려오는 이름. 우연히 길에서 보이는 친구의 모습. 목소리. 그의 어정쩡한 걸음걸이. 비어있는 시간. 시간과 시간 사이의 공간. 비가 오는 날이면 떠오르는 커피. 대화. 사진. 음악. 와인. 모든 것들.
그렇게 몇 년이 더 지나고서야,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이 더 지나고서야, 약의 도움이 줄었고. 그렇게 몇 년이 더 지나고서야, 그 친구를 이야기하는 것이 또 다른 상처를 만들지 않게 되었다. 아픔이 배가 되지 않았다. 그 자리에 있었던 아픔 역시 공허가 되어, 빈 공간이 되었다. 감정의 한 축이 사라져 버린 것처럼.
그렇게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제 자리로 돌아오기까지. 다시 돌아온 자리에는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그 친구가 가졌던 공간, 시간, 기억은 모두 하나의 덩어리로 포장하여 문을 닫아두었다. 문을 열면 보이는 텅 빈 공허가 싫어 문을 닫아두고 열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문을 열지 않으면 공허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가끔 그리울 때면 문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들여다본다. 그 공허 안에 떠돌고 있는 시간과 기억을.
그리고 다시 돌아온다. 내 자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