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숨을 쉬고 있었다.

킬링곡선으로 밝혀진 지구온난화의 비밀

by 하현

# 아직은 기후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던 때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 접근은 1896년, 스웨덴 출신의 과학자 스반테 아레니우스의 연구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두 배로 증가할 경우, 지구의 평균 기온이 5도 이상 상승할 수 있다고 계산했고, 이로써 인간의 활동이 기후에 실질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개념을 처음으로 과학적으로 제안했다. 그로부터 수십 년 뒤인 1938년, 영국의 엔지니어 가이 캘린더는 석탄 사용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높이고 있으며, 이는 지구 온도 상승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을 내놓았지만, 당시에는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실제로 1970년대까지 지구 평균 기온은 점진적으로 낮아지는 추세였기 때문에, 그 시기 일부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지구 냉각’에 대한 걱정이 퍼지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인간의 산업활동이 기후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은 당분간 주요 담론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관측 기술이 발전하고 장기간 누적된 자료가 쌓이면서, 기후 시스템에 대한 인류의 영향이 점점 더 분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 지구도 숨을 쉰다, 킬링 곡선


1950년대, 찰스 데이비드 킬링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해, 시간대와 계절에 따른 변화 양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특히 하와이에 위치한 마우나로아 관측소에서 진행된 장기 측정을 통해, 식물의 광합성과 호흡에 따른 하루 주기의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가 관찰되었고, 이는 곧 ‘지구가 숨을 쉰다’는 표현으로 설명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반복적이고 일관된 수치를 기반으로 도출된 그래프는 이후 ‘킬링 곡선’으로 명명되며, 과학계에서 널리 알려졌다.


mlo_full_record.png 마누아 로아 관측소에서 측정된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 (https://keelingcurve.ucsd.edu/)


하지만 이 곡선의 진짜 의미는 그 너머에 있다. 매년 이산화탄소의 평균 농도가 조금씩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화석연료 사용이 대기 중 탄소를 지속적으로 축적시키고 있다는 분명한 근거가 되었다. 킬링 곡선은 단순한 숫자의 나열이 아니라, 지구 기후가 겪고 있는 변화의 방향성과 속도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로 자리 잡았고, 지금도 그 곡선은 멈추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 하키채 그래프


얼핏 보면 그냥 점진적으로 증가하는구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숫자를 자세히 보면 꽤나 이상한 것을 볼 수 있다. 1960년부터 2025년까지 65년간 약 100ppm 이상이 증가되었다. 선형적인 변화였다고 가정한다고 하면, 약 200년 전인 1700 년에는 지구에는 이산화탄소가 없었나? 말이 안 되는 가정이다. 그렇다면 1960년 이전에 혹은 1900년 이전의 지구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어느 수준이었을까? 산업화 이전까지 지구상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약 270 ~ 280ppm 수준에서 큰 변화 없이 유지가 되고 있었다. 산업화 이후에 급격하게 변화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그래프와 동일한 모습으로 상승하고 있는 지구 평균 기온 그래프를 놓고 '하키채 (Hocky Stick)' 그래프라고 부른다.

co2_2k_ce.png 지난 2025년간의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 (https://keelingcurve.ucsd.edu/)


# 발등에 불은 떨어졌는데, 아직 뜨겁지는 않은가 봐?


발등에 불이 붙어도 뜨겁다고 느낄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다만 눈으로 보면 그래도 발등에 불이 붙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듯이, 1970~80년대는 기후변화가 과학자들만의 주제를 넘어 국제사회 전체의 관심사로 떠오르기 시작한 시기였다. 1972년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엔 인간환경회의에서는 '오염' 문제를 중심으로 환경 의제가 다뤄졌고, 이 회의를 계기로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의 초기 형태가 등장했다. 이후 1979년 제1차 세계기후회의에서는 과학자들이 인간 활동이 기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메시지를 공식적으로 발표했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기후계획(WCP)이 수립되었다.


1985년 오스트리아 빌라흐에서 열린 회의에서는 컴퓨터 모델링을 통해 지구온난화의 가능성이 과학적으로 뚜렷해졌고, 이 논의는 결국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전 지구적 협력체계의 필요성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해서 1988년,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환경계획(UNEP)이 공동으로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를 설립하게 되었고, 이는 과학적 평가와 정책 논의가 함께 이루어지는 글로벌 기후 거버넌스의 출발점이 되었다. 신기할 정도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이렇게 과학적 사실이 1800년대 후반부터 100년간 쌓여왔는데, 2000년대에 들어서 다시 기후변화를 믿네 안 믿네 하는 것을 보면, 중세시대 화장실이 없었던 것도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다.


# 모든 것의 시작, 리우 데 자네이루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루. 거대한 예수상으로도 유명하지만, 기후변화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는 1992년 있었던 리우 지구정상회의 (Earth Summit)를 통해서 '유엔기후변화협약' (UNFCCC)가 태어났다는 점이고, 이 회의를 통해 '지속가능발전'의 개념이 정의되었다는 것이다. 이 회의를 기점으로 기후변화라는 주제는 전 지구적 협력과제로 공식화되어 그 이후 베를린에서의 첫 번째 '당사국회의' (COP)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29번의 중요한 회의가 진행되었고, 올해 11월 다시 브라질에서 서른 번째 회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24706129049_4b95c7a7d9_b.jpg 역사의 시작, 리우 데 자네이루 지구정상회의


기후변화 대응의 국제 협력은 1997년 COP3 교토 회의에서 큰 전환점을 맞는다. 이 회의에서 채택된 교토의정서는 선진국에게 법적 구속력을 가진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과한 최초의 국제 협약으로, 이후 국제기후협약의 기초가 되었다. 그러나 선진국 중심이라는 한계도 동시에 드러냈다.


이후 2009년 COP15 코펜하겐 회의는 기후협상의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회의에서는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2도 이내로 제한한다는 목표가 합의되었지만, 최종 문서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합의에 그치며 실망을 안겼다. 그럼에도 이 회의는 기후 목표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2010년 COP16 칸쿤 회의에서는 개발도상국의 기후 대응을 지원하기 위한 녹색기후기금(GCF)이 설립되며 재정 문제의 중요성이 부각되었고, 2015년 COP21 파리 회의는 모든 국가가 자발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제출하고,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한 노력에 합의하면서 국제 기후 거버넌스의 새 시대를 열었다.


이후 2021년 COP26 글래스고 회의에서는 석탄 감축이 처음으로 공식 합의문에 포함되었고, 메탄 배출 감축과 개발도상국의 피해를 보상하는 손실과 피해(Loss & Damage)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가장 최근인 2023년 COP28 두바이 회의에서는 재생에너지 발전 용량을 2030년까지 3배로 확대한다는 글로벌 목표에 합의하고, 화석연료에서의 전환이라는 문구를 역사상 처음으로 합의문에 명시했다. 아울러 손실과 피해 기금이 공식 출범하며, 기후 정의에 대한 실질적 논의가 시작되었음을 보여주었다.


# 그리고 오늘


그리고 2024년. 지그 평균 기온은 1.5도를 넘었다. 얼마 전 있었던 국제해사기구 (IMO) 회의에서 미국은 적극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정책에 반대를 했다는 소식이 있다. 석유가 경제의 중심인 중동 국가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미래 기후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무리 짧게 잡더라도 인류가 기후변화에 대해서 진지하게 논의를 하자고 시작한 1992년으로부터 33년이 지났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발등에 불은 이미 타들어갔고, 이제는 피부를 태우고 뼈까지 녹이고 있을 지경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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